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정면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 향후 트럼프와 파월 간의 파워싸움이 볼만하게 됐다.

관세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학자들이 구체적인 문제점을 들면서 끊임없이 경고를 해왔고, 과거 미국이 관세부과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보니 독립기관인 미국 중앙은행을 책임지고 있는 파월이 트럼프와 맞서서라도 미국 경제를 정상적으로 유지시켜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지난 1월 29일 제롬 파월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동결을 결정한 바 있는데,그와 관련한 연준의 의사록이 최근 공개되면서 연준이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대해 얼마나 우려하는 지를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결국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회의 참석자들은 지금 금리를 내릴 경우 향후 물가상승에 따라 다시 금리를 올려야 할 우려가 있다고 입을 모은 것이다.

FOMC는 지난해 9월 0.5%p 빅컷을 시작으로 11월과 12월 연이어 0.25%p씩 베이비컷을 밟아 현재 기준금리 상단을 4.5%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총 1% 금리를 인하한 배경으로는 물가 앞자리가 2%대를 유지하면서 머지않아 2.0%에 다다를 것이라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0%로 나타나 지난해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의 관세가 본격화 되기 전부터 물가가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관세폭탄으로 인한 미국 물가상승 예상치도 속속 나오고 있다. 관세로 인해 애플의 아이폰 미국내 가격이 9% 인상할 것이라는 주장, 캐나다와 멕시코 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생산 자동차들이 평균 6260달러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치도 나와있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철강에 대해 25% 관세가 적용될 경우 당장 미국산 철강이 가격을 올릴 것이고, 그에 따라 철강을 원료로 사용하는 제품들의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제약·바이오에 대해서도 25% 이상의 관세가 예고돼있는데, 병원 이용 비용이 높은 미국의 경우 약값 상승은 미국 서민들의 건강도 해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FOMC와 여러 경제학자들의 인플레이션 경고가 잇따르자,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언론에 등장해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낮다는 식의 발언을 했지만, 시장은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도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갖게됐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들이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으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중기적으로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이 디스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지면서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이 석유와 천연가스 등을 대규모 개발해 에너지 비용을 줄여 물가를 안정시킬 것이라는 측면을 강조한 것인데, 에너지 이외의 모든 부분에 대한 물가상승 압력이 훨씬 크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살펴볼 때 트럼프의 낙관보다는 파월의 우려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관세폭탄 시행에 있어 트럼프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큰 산은 미 의회의 동의 절차다. 트럼프가 관세 관련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국회가 이를 부결시킬 경우 행정명령은 곧바로 취소가 된다. 2018년 트럼프 1기 때도 미 의회는 관세부과에 대한 행정명령을 거부했고, 결국 철강 등에 대해 쿼터제를 시행한 바 있는데 이번에도 의회의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과거 1929년 미국의 대공황 재현이다. 1929년 10월 24일 블랙먼데이가 발생하기 전까지 미국 경제는 엄청난 호황 속에 폭등 증권시장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블랙먼데이 하룻동안 미국 주식은 평균 85% 떨어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20일 취임 첫날부터 다수의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있다. 근래는 관세폭탄 행정명령을 연속으로 내놓고 있는데, 많은 경제학자들을 비롯해 의회에서의 반대 목소리, 그리고 연준의 견제 등으로 머지 않아 정책수정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1차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의 기업들은 넘쳐나는 자금으로 주식투자를 하면서 돈을 벌다가 급작스런 수요위축에 따른 과잉공급과 금융시장 불안이 대공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31대 후버였는데,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1930년 6월 관세폭탄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후버는 공화당 소속이었는데 공화당 상원의원인 스무트와 할리 두명이 공동발의 한 관세법이라고 해서 ‘스무트-할리 관세법’이라고 칭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출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물렸다.

결국 블랙먼데이 이후 진정되던 대공황은 관세로 인해 3년간 더 늘어지면서 미국 실업률은 1929년 3.2%에서 1932년 23.6%까지 치솟았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은 독립적인 지위가 아닌,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어서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후버 대통령은 1932년 재선에 나섰지만,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패배했고, 대통령에 오른 루즈벨트는 관세를 원위치 시키는 대신 수요창출 정책인 ‘뉴딜정책’으로 미국 경기를 되살렸다.

그래서 이러한 과거를 기억하는 많은 경제학자들과 미 의회 의원들이 트럼프의 관세폭탄에 찬성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인다.

트럼프 관세폭탄이 실제 적용될 경우 미국의 거품이 한꺼번에 꺼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현재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GDP는 세계 GDP의 25% 정도인데, 미국 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은 전 세계 시가총액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 주식시장에 두 배 이상 거품이 껴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 FOMC가 트럼프를 적절히 제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파월의 자세는 매우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당장 4월 2일부터 자동차에 25% 관세가 적용될 차례여서 현대기아차와 자동차 관련 부품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자동차에 이어 반도체, 석유화학, 제약바이오 등등 대미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미국 내의 여론이나 앞에서 거론한 여러가지 미국의 이해득실 측면을 고려해볼 때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근 반세기 동안 40도 안된 나이 때부터 칼럼을 써온 조지 윌은 보수 성향의 공화당원이었지만 지난 1월 20일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신문에 ‘흥분할 것도 절망할 것도 없다, 트럼프도 역시 흘러갈 것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트럼프 리스크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시각이 많은 만큼, 섣불리 나서지 말고 시간이 가져오는 치유책에 기대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