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본사인 트윈타워. 인화와 고객가치 경영을 이어온 80년 LG 역사가 오너일가의 불법 및 편법 등 일탈로 금이 갈 위기에 빠졌다. 사진=LG
LG그룹 구본무 선대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LG그룹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화와 착한 이미지를 추구해왔던 LG그룹도 “별수 없구나”하는 재벌 민낯이 드러나면서 LG그룹에 대한 고객 신뢰에 금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일 산업계에 따르면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장녀이면서 LG복지재단 대표인 구연경의 남편인 윤관 BRV 대표가 최근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종합소득세 취소청구 소송에서 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윤 대표가 단순히 세금 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것만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많은 문제점이한꺼번에 노출되면서 그의 아내인 구연경 대표에 이어 LG그룹 전체의 이미지 손상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는 등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윤 대표가 제기한 부당 세금 관련 조사 과정에서 많은 것이 드러났다. 그간 윤 대표는 BRV의 공동대표파트너이자 무한책임사원(GP)으로서 각종 국내 투자 사업을 수행했고, 자신이 지배하는 마크스앤컴퍼니 등 법인을 통해서도 자금을 운용한 것. 그리고 BRV가 지난해 매각한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지분 규모만 4500억원에 달하고, 성과 대부분이 윤관 대표 몫인 것도 밝혀졌다.
여기에 윤 대표 아내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함께 법정에 설 가능성도 높아졌다. 윤 대표가지난해 3월 윤 대표의 BRV가 코스닥 상장사인 메지온에 500억원 투자를 추진했는데 투자 발표 전에 윤 대표가 아내인 구 대표에게 이 정보를 줬고 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3만주를 취득해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밝혀졌다.
이들 부부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고, 오는 3월 18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 13부에서 첫 공판을 받을 예정이다.
이 외에도 윤 대표는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있다. 윤 대표는 2000년 과테말라 여권 등 서류를 위조해 허위로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한 데 이어 이를 이용해 2011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역 기피를 위해 국적 위조를 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윤 대표는 물론 LG그룹 전체가 국민 저항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또한 삼부토건 창업주의 손자인 조창연 씨가 2016년 르네상스호텔 매각 당시 윤대표에게 2억원을 현금으로 빌려줬지만 돌려받지 못했다면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한 사건도 있다.
여기에 더해 사망한 인기 가수의 아내에게 10년 간 금전적인 지원을 해왔다는 사실도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 사실 역시 윤 대표가 종합소득세에 불복해 국세청에 심판청구 한 과정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윤 대표는 유명 가수의 부인인 J씨에 대해 해당 가수가 사망하기 전부터인 2010년부터 사망한 이후인 2019년까지 J씨의 자녀 국제학교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했고, 성남의 한 아파트를 무상으로 쓰도록 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금액으로는 약 10억원 규모라고 밝혀졌다.
인화와 의리 그리고 고객 가치를 최우선 경영이념으로 삼고 있는 LG그룹의 추한 뒷모습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는 양상이다. LG그룹은 오랜 기간 정도경영을 추구해왔지만, 실제로는 다른 경영적인 판단으로 고객의 가치를 훼손해 편법 경영이란 손가락질을 받은 적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20년 LG화학에서 배터리 부분을 인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독립법인화 한 것이었다. 당시 LG화학 지분은 LG그룹 지주사인 ㈜LG의 지분이 30.6%였고, 일반투자자인 소액주주 지분이 54.33%였다. 그러나 주가하락을 우려하는 대부분 소액주주들의 반대에도 분할을 강행해 LG화학에서 앙꼬에 해당하는 배터리 사업을 분사시켜, LG화학의 기업가치를 추락시켰다.
이에 LG화학 주가는 폭락을 거듭해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키웠다. LG화학 주가는 배터리 사업을 분할하기로 결정한 주주총회일인 2020년 12월 1일 80만9000원에서 2025년 2월 10일 현재 20만원으로 4분의 1토막이 됐다. 물론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상장 시점인 2022년 1월 27일 50만 5000원에서 오늘 10일 현재 33만 원으로 떨어졌다. 주주가치 훼손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정도경영과 인화, 의리 등을 중시해온 LG그룹의 창업정신은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부친인 구재서 씨의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됐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25살 때인 1931년 장사를 하겠다고 하자, 아버지인 구재서 씨가 돈을 내주며 “네 생각대로 잘해보거라. 세상을 얕보지 말고, 남하고 화목하게 지내면서 신용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를 믿는다” 이 말 한마디에 겸손, 인화, 신용, 믿음 등 현재까지 LG의 경영자들이 이어 강조해온 철학이 다 담겨있고 그것이 바로 고객가치임을 강조한 것이다.
구본무 전 회장의 경영철학 맨 위에는 ‘정도경영’이 있다. 그의 정도경영은 신용과 믿음으로 고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었다.
2025년 구광모 회장의 신년사에는 ‘고객’이란 말이 10여차례 등장한다. 구 회장은 구성원들을 ‘고객가치 크리에이터’라고 명명하며 “고객가치 크리에이터 한분 한분의 노력으로 차별적 가치를 창출해 고객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자”고 강조했다.
2019년 회장에 오른 구 회장은 2025년까지 매년 신년사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고객이었다.
2019년 ‘고객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감동을 주는 것’, 2020년 ‘고객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집중’, 2021년 ‘고객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집중’, 2022년 ‘한 번 경험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고객경험을 만들자’, 2023년 ‘LG의 주인공이 되어 고객감동을 키워가자’, 2024년 ‘차별적 고객가치에 대한 몰입’이었고, 올해인 2025년은 ‘미래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기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 등이다.
구본무 선대회장의 장녀와 맏사위의 드러난 민낯으로 앞으로 LG가 더 이상 고객가치를 위한 정도경영을 내세울 수 있을 지 의문이 들게 된다.
앞으로 LG그룹의 경영권 분쟁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재 그룹 지주사인 ㈜LG에 대한 구광모 회장의 지분은 15.95%에 불과하고, 오너일가 지분 등 특수관계인 지분 41.9%의 38%에 불과하다. 장녀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가 2.92%를 비롯해 구본무 전 회장 부인인 김영석 여사가 4.20%, 그리고 아버지 구본무 선대회장 형제들과 사촌들이 대부분 나눠가지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전 회장의 아들이 아닌 아랫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인데 구본무 전 회장이 아들이 없어 양자로 입적한 상황이다. 언제든 인화문화가 깨질 경우 경영권 분쟁은 불거질 수 있다.
락희화학공업이 부산에서 창업된 1947년부터 따지면 80여 년, 허인회 창업주가 진주에서 처음 가게를 낸 1931년부터 따지면 90여년 역사를 이어온 인화와 신뢰가 깨질 경우 LG그룹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 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근래 LG그룹 오너일가에게 벌어지고 있는 우려되는 일련의 사건들로 LG의 운명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