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한남4구역에 호텔식 출입구로 디자인한 드롭오프존. 삼성물산은 지난달 한남4구역 수주와 관련 손해를 감수하고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경쟁자인 현대건설을 물리치고 시공사로 선정됐다. 그 배경으로 삼성물산의 주택 수주잔고 급감과 삼성전자의 가전부문 살리기 특명이 거론되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지난달 막을 내린 한남뉴타운 4구역 재개발 수주전에서 삼성물산이 래미안을 내세워 현대건설을 꺾고 수주를 확정지었지만, 뒷 배경을 두고 삼성물산이 반드시 수주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무리하게 수주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현대건설 역시 파격적인 조건들을 내세워 수주전에 나선 만큼, 그에 맞대응 하는 삼성물산으로서도 수주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조건들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해석이지만 그동안 출혈수주는 하지 않았던 삼성물산이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 그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이번 한남4구역 수주전에서 현대건설은 공사비 부분에서는 삼성물산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삼성이 제시한 다른 부대조건은 거의 파격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단지내 상가를 특화시켜 한강변 대표적인 명품상가를 만들고, 최고 수준의 병원, 학원 등을 유치해 한남4구역을 강북 랜드마크로 만들어 집값에서도 대장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조합원 분담금 상환을 입주 후 4년까지 연기해주고, 파격적인 조합원 이주비, 공사비 청구에 있어서도 ‘분양수입금 이내의 기성 청구’ 등 공사 진행 과정에서의 갈등요소도 사전에 줄여놨다.
이 외에도 환경과 어울리는 동 배치로 조합원 100% 한강뷰 확보, 단지 내에 5개의 대형 공원 조성 등 단지 설계에서도 최고 수준을 제시했다.
조합원들이야 좋지만, 과연 이런 조건을 내걸고 손해를 보지 않고 공사를 마칠 수 있을 지에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무리한 수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이 무리해서라도 수주를 해야 하는 이유는 지난 수년간 주택사업을 수주하지 않으면서 주택사업에서의 수주잔고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우선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물산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주택사업 계약 누계 실적은 6조6065억원이고 공사가 진행된 부분을 제외한 주택 수주잔고액은 5조366억원이다. 지난 5년 내 주택수주잔고는 적어도 6조원 안팎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들어 갑자기 20%가량 줄어들었다.
지난해 4분기에 공사가 진행된 부분을 제외하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더욱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주해 놓은 공사들 역시 공사기간이 늘어지면서 공사비 상승 등의 부담으로 실적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대표적인 공사가 반포1단지 3주구인데 이 공사는 2022년 6월에 시작해 2026년 7월 준공예정인데 계약액 9464억원 중 6653억원이 아직 잔고로 남아있다. 잠실재건축은 올해 6월 준공예정이지만 7765억원 계약액 중 아직도 4279억원이 잔고로 남아있다. 이문1 재개발의 경우 이미 완공기간이 2024년 12월로 끝났지만, 계약액 9154억원 중 아직도 1779억원이 잔고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그 외에 양평 13구역 단지 외 5개 현장 3조2095억원은 아직 착공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택 수주잔고는 급격하게 줄고 있는 상황에서 계약해 놓은 공사들 역시 사업 추진일정과 사업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삼성물산이 한남4구역에 전사적인 역량을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건설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여기에 삼성전자 가전부분의 실적악화가 삼성그룹 차원의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중심으로 최악의 실적 속에 적자행진을 벌이는 가운데 가전 부분에서는 그동안 LG전자에 앞서왔지만, 지난해 LG전자에 밀리면서 삼성 가전부문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부문은 매출에 있어서는 삼성이 다소 앞섰지만 수익성 면에서 크게 떨어졌다.
2024년 LG전자 가전분야는 매출 48조4324억원에 영업이익은 2조3605억원을 거둔데 반해, 삼성전자 가전분야는 매출 56조5000억원에 영업이익 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가전분야가 LG전자에 비해 덤핑장사를 했다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전제품은 아파트 공급 물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동안 삼성물산이 아파트 수주와 공급을 줄이면서 삼성전자 가전제품 경영성적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삼성물산이 공급하는 아파트에 공급되는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은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익성과 직결된다.
이에 그룹 차원에서 삼성물산에 아파트 공사 수주 확대를 요구하면서 삼성이 아파트 공사 수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남4구역은 당초에 삼성물산이 공을 들여온 만큼, 수월하게 수주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중간에 현대건설 윤영준 전 사장이 수주전에 뛰어들면서 과열경쟁이 됐다는 것도 삼성물산으로서는 수익성 측면에서 악재가 됐다.
현재 한남4구역 바로 옆의 한남3구역을 현대건설이 수주해 공사중인데, 일반적으로 인접 단지를 시공하는 경우 민원이 많아 추가 단지 공사 수주는 거의 불가능 한 것이 관례화 돼있다.
그런 이유로 한남2구역을 수주한 대우건설과, 오래 전부터 한남5구역 수주를 준비해온 DL이앤씨는 애초부터 한남4구역 수주전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공을 들여온 한남4구역 수주전에 주택 최강자인 현대건설이 도전장을 냈으니 수주특명을 받은 삼성물산은 모든 화력을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물산 내부적으로는 주택 수주잔고가 바닥날 처지가 됐고, 그룹 차원에서는 삼성전자 가전분야를 살려야 하는 특명 속에 앞으로 진행될 한남4구역의 향후 경영성적표에 관심이 모아진다.
건설사 한 임원은 “앞으로 삼성물산이 수도권의 정비사업 수주전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면서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디스플레이 등 계열사로부터 양질의 수주를 수조원씩 수주하면서 수익성을 보장받기 때문에 출혈을 하면서라도 공격적으로 수주전에 나설 것이다. 특히 이번에 이재용 회장이 무죄를 받으면서 더욱 적극적인 수주행보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