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옥.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지난 3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면죄부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경영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무죄판결과 관련 재벌 봐주기 또는 대법원 판결 뒤집기 등 향후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진=수도시민경제

이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2심 판결 무죄는 위기의 삼성과 침체국면에 있는 한국 경제에는 단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GDP의 약 15%를 차지하고 직접 고용인원만 30만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이다. 세계 반도체시장의 20%를 점유한 점유율 1위 기업이기도 하다. 이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회장이 사법적인 리스크를 벗게 된 것은 우리나라 산업경쟁력 회복 차원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현재 세계는 AI(인공지능)을 비롯해 양자, 바이오 등 최첨단 기술전쟁을 치르는 속에서 언제부턴가 우리가 미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도 뒤쳐질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삼성의 경쟁력 회복은 절실한 처지이기 때문에 이 회장의 체력회복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경쟁력 제고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이유로 이 회장의 면죄부는 우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법앞의 평등이라는 공정과 정의 측면, 그리고 타 재벌들에게 따라하기 명분을 줬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그 파장이 우려된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제일모직 지분 23.2%를 가지고 그룹 지주사격인 삼성물산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일모직 주가를 부풀리고 삼성물산 주가를 떨어트려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그룹의 지배력을 헐값으로 확보하는 등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2020년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아왔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해 2월 1심에 이어 딱 1년 만에 열린 2심에서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부당하지 않고 경영권 승계만을 위한 목적도 아니었다면서 이 회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려주면서 이 회장은 면죄부를 받게 됐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이미 정해진 답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1월 11일 진행된 4번째 공판에서 서울고법 해당 재판부는 검찰의 이 회장 주도하의 포괄적 부정행위 주장에 대해, 이 회장과 관련 임원들의 부정성 및 불법성의 기준 정도에 대한 입증할 만한 수치를 통계로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이 회장 무죄 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을 보였다.

일단 이번 재판 결과는 두가지 법리해석적 측면에서도 뒷말이 이어지게 됐다. 우선 2019년 박근혜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내린 대법원의 판결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당시 대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면서 2심에서의 징역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에 대해 파기환송한 바 있고, 이 회장은 다시 열린 2심에서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 된 바 있었다.

이에 더해 국제상설증재재판소(PCA)의 2023년 판결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측면에서 국제적으로도 비난을 받게 됐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했던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두 회사의 부당한 합병비율로 손해를 봤다며 제소한 소송에서 2023년 PCA가 엘리엇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시 PCA는 한국 정부에 대해 엘리엇에 1억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결국 이번 이회장 무죄 판결은 법적으로 국내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에 더해 국제 재판 기준과도 다른 사례로서 법원 판결의 오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판결은 향후 승계작업을 진행중인 많은 재벌기업들에게는 모범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한화에너지가 그룹의 지주사인 ㈜한화의 주식 매입을 통해 그룹의 지배력을 키워 공짜 승계를 하는 과정에서 ㈜한화 주식을 싸게 매입하는 것 역시 용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한화그룹의 지주사격인 ㈜한화의 지분은 김승연 회장 22.65%, 장남 김동관 부회장 4.9%, 차남 김동원 사장 2.1%, 셋째 김동선 부사장 2.1% 등으로 나눠져 있는데, 김 회장의 지분 22.65%를 상속할 경우 상속세 60%를 물어야 한다.

한화그룹은 상속세 대신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 지분을 확보해 공짜승계를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한화에너지는 김동관 부회장이 50%,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각각 25%씩 가지고 있다.

한화에너지가 ㈜한화의 지배력을 확보할 경우 그룹 승계는 자연스럽게 김동관 장남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화에 대한 주가 저평가로 일반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받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진행된 ㈜한화 지분 공개매수에서 적용된 할증률은 일반적인 할증률 평균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연 회장은 20여 년 전인 2005년에도 한화시스템(한화S&C) 지분을 아들들에게 헐값으로 매각해 증여한 전력도 있다. 당시 ㈜한화가 가지고 있던 한화S&C의 지분 66.7%를 장남 김동관에게 주당 5100원에 매각했는데 시장에서는 한화S&C의 주당 가치를 적게는 1만1669원 많게는 3만308원으로 평가했었다.

김 회장이 이 건으로 검찰로부터 고발돼 재판을 받은 바 있지만, 결국 대법원이 김 회장의 손으 들어준 적이 있었다.

이번 이 회장 면죄부는 앞으로 한화그룹을 비롯해 현대차그룹, 두산그룹, 부영그룹 등등 승계를 앞둔 재벌그룹들의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거대 법무법인을 통한 법원 로비의 승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김앤장 매출은 1조5000억원을 넘겼고, 나머지 거대 법무법인 9개의 매출 합계도 역대 처음 2조원을 넘겼다고 한다.

행정과 입법이 엉망이 된 상황에서 법원의 공정성마저 의심받는다면 대한민국의 공정성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법원이 이제 강자의 편에서 벗어나 법조카르텔의 고리를 끊어야 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