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식 묻지마 수주의 병폐로 경쟁력을 잃고 있는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한계를 드러내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어 국내 산업 비중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한 축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국내 정부발주 공공건설 시장은 이미 밑지는 원가체계로 인해 수익성을 잃었고, 아파트 시장 역시 경기 부침에 따른 리스크가 더욱 심화된 가운데, 해외에서의 주먹구구식 수주까지 발목을 잡고 있다.
해외 건설공사에서 플랜트 분야는 최종적으로 가동이 성공한 후 발주처에게 열쇠를 인계할 때까지는 얼마나 남겼는지 아니면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주먹구구식 묻지마 수주를 했다가는 기업의 운명이 갈릴 수도 있어서 진짜로 조심해야 한다.
2024년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본 현대엔지니어링의 어닝쇼크는 그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지난 22일 현대건설은 2024년 영업손실이 1조2209억원 발생해 전년 7854억원의 영업이익에서 적자전환 했다고 잠정공시했다. 원인은 연결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플랜트 공사에서의 대규모 손실을 일시에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올해 9월 준공 예정인 수주금액 4조3700억원의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 프로젝트와 올해 8월 준공 예정인 수주금액 1조2215억원의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가스플랜트 사업에서 총 1조2000억 여원의 손실이 발생해 이를 일시에 처리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이들 공사가 최소 15개월 이상 늘어지게 되면서 수주금액 만큼의 손실이 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계약상 올해 9월 준공예정인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에서 발생한 손실이 약 1조 1000억원인데 공기가 최소 15개월 이상 연장되면서 실제 준공은 빨라야 내년 하반기가 되는데, 그때 가서 어떤 정산서가 올라올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에서는 이들 프로젝트의 경우 공기연장에 따라 비용보상 관련 발주처와의 협상 난항, 공정 난이도 상승 및 공정 순서 조정에 따른 인력 수급 악화, 원자재가 상승 등 이유를 들고 있지만, 결국 주먹구구식 수주를 했고, 잘되겠지 하는 안일함이 공사과정에 묻어 발생한 사태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021년과 2022년에도 해외 플랜트에서 대손상각 처리하면서 2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계산한 적이 있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UAE 미르파 담수복합화력발전소를 공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미청구공사를 2021년에는 1380억원, 2022년에는 500억원 반영해 총 1830억원의 대손상각을 반영한 사례가 있었다.
더 심각한 사고가 터졌다. 우리나라 원자력산업 최초 해외수출 프로젝트인 UAE바라카 원자력발전소 공사가 정산 과정에서 1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해, 2024년 말 국내 컨소시엄 기업들 간에 분쟁이 발생해 국제중재법원으로까지 가는 법정다툼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 이명박 프로젝트로 불린 UAE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가 완공을 앞두고 최종 정산하는 과정에서 한국전력(한전)이 대표로 나선 ‘팀 코리아’ 간의 비용 분배 과정에서 초과로 발생한 사업비를 어떻게 분담할 지를 두고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규모는 약 1조원이다.
특히 수주 총괄을 맡은 한전과 실제 공사를 진행한 수력원자력 간의 분쟁이지만, ‘팀 코리아’에는 건설사로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건설) 그리고 기기 납품사인 두산에너빌리티가 포함돼있다.
이미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 제소 과정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전 측에서는 이미 로펌을 선정해 1400만달러(약 200억원)의 자문료를 제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윤석열 프로젝트로 불리는 24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의 본계약이 오는 3월 눈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당연히 불안한 기류가 흐를 수 밖에 없다. 지난해 7월 프랑스전력공사(EDF)를 누르고 ‘팀 코리아’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당시 프랑스의 반값에 입찰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덤핑수주 의혹이 높았고, 그 후 원전 원천기술을 가진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 후 동반자 관계로 협상이 이뤄졌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얼마의 기술사용료를 지불하게 됐는지도 수익성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공사비 관련 자금조달에 우리나라가 개입이 되는 지도 변수다.
과거 대우건설 매각 과정에서 해외플랜트 공사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손실로 인해 우선협상 대상자인 호반이 인수를 거절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18년 2월 7일 대우건설의 2017년 4분기 실적 공시에서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에서 3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영업손실이 발생한 것이 밝혀졌는데, 대우건설을 인수하기로 한 호반건설 연간 매출의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에 해외 경험이 없는 호반 김상열 회장이 해외 우발손실 두려움으로 다음날인 2월 8일 인수포기를 선언하면서 대우건설의 새 주인 찾기는 무산된 적이 있었다.
현재 대우건설을 인수한 중흥건설 역시 해외 경험이 전무한 상황이어서 해외건설공사를 어떻게 관리할 지 우려가 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2000년 이전까지 우리나라가 해외 건설공사에서 성공한 토목과 건축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의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가 아닌 단순 플랜트 공사를 통해 돈을 벌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엔지니어링과 조달까지를 포함하는 턴키공사를 하면서 업무영역은 고도화 됐는데 기술력과 관리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사고들이라고 볼 수 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한 구태의연한 영업방식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현대건설은 해외건설 수주 과정에서의 뇌물공여 협의로 서울 중앙지검으로부터 본사 압수수색을 받는 등 수사를 받고 있다.
현대건설은 인도네시아 화력발전소를 짓는 과정에서 주민과 환경단체의 민원을 무마하기 위해 해당 관할 현직 군수에게 6억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기술력도 딸리고, 관리능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문제해결을 뇌물로 처리하는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해외건설 관행에 일대 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0년대 이전에 중동에서 대한민국 건설사들이 모래바람 속에서 벌어들인 오일달러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초석을 만든 것을 분명 무시할 수 없다. 그러한 고생을 바탕으로 지난해 말 국내 건설사 해외수주 총 누계 1조 달러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하게 따져 돈이 되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지정학적인 리스크는 얼마나 되는 지를 모두 계산하는 과학적 수주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일련의 터지고 있는 사고는 이에 대한 경고장으로 봐야 한다.
요즘은 문방구에서 물건을 사도 주먹구구로 계산하지 않는다. 모두 전자계산기가 하고, 바코드를 통해 기계가 계산해준다.
이미 구시대 유물이 된 수주방식은 박물관에 기증하고, AI시대에 맞는 유형 무형의 비용을 철저히 가려 손해를 보지 않는 수주를 해야 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