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으로 지난 13일부터 시작돼 오는 16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제약·바이오 축제인 ‘JPM 2025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들의 성과가 이어지면서 이들 기업은 물론 세계 최대 바이오 쇼인 이 행사에도 관심도 모아지고 있다.
■SK바이오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주 및 합작 발표
컨퍼런스 첫날 이 행사에 참여한 SK바이오팜 이동훈 사장은 남미의 유로파마와 디지털 헬스케어 조인트 벤처를 설립해 뇌전증 조기발견 및 예방하는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뇌전증은 손상된 뇌세포에서 전기신호가 폭증할 경우 근육경련이 유발돼 제때 치료받지 못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병이다.
이 사장은 “현재 회사가 개발중인 AI뇌전증 관리 플랫폼 제로 시스템을 탑재한 웨어러블(wearable 착용형) 기기로 환자의 뇌파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발작 여부를 체크하는 방식으로서 5년 내에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SK바이오팜은 남미 최대 제약사이자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경험이 많은 유로파마(Eurofarma)와 미국 합작회사(JV)를 설립해 북미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SK바이오팜에 따르면 이번 JV의 주요 사업인 원격 뇌전증 치료 시장은 오는 2032년까지 18억 달러(한화 2조63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북미 지역은 전 세계 시장의 약 47%를 차지하는 최대 규모의 단일 시장으로 알려져있다.
한편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도 이 행사에 참여해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 처음 명함을 내밀었다.
같은 날 세계 최대규모의 위탁개발생산업체(CDMO)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 수주 계약 사실을 밝혔다.
유럽 소재의 제약사와 2조747억원(14억1011만달러) 규모의 CDMO 계약으로서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총 수주금액인 5조4035억원의 38%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이며 계약기간은 2030년 12월 31일까지다.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제품명과 고객사를 밝히지는 않지만, 근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완성한 ADC(항체약물접합항암제)에 대한 위탁생산 수주로 예상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글로벌 상위 제약사 20곳 중 17곳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는데,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국민의 유전자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에서 의회의 통과를 받았지만, 최종 상원에서 예산지속결의안이 통과하지 못해 폐기된 법이다. 그러나 트럼프 역시 이를 지지하는 입장이어서 트럼프 정부 우선 추진정책으로 생물보안법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경우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가 세계 2~3위 CDMO인 우시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우시앱텍, BGI 등 중국의 CDMO 업체들에 위탁생산을 맡길 수 없게 되면서, 세계 최대규모의 CDMO가 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물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오는 4월 제5공장이 완성되면 총 78만4000리터의 생산능력을 확보하면서 CDMO 세계 1위에 올라서게 된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기지개, 셀트리온의 신 시장 개척
이 외에도 2022년 설립했지만 현재까지 수주가 없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JPM 행보도 관심이다.
회사 설립 이후 수주실적이 전무해 지난해 회사를 떠난 원직리차드 리 대표에 이어 새 대표로 취임한 제임스 박의 첫 무대이면서, 지난해 말 부사장으로 승진한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부사장의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 대한 신고식 의미가 있다.
전 대표인 원직리차드 리가 내부에서 승진한 국내용이라면, 제임스 박 대표는 풍부한 글로벌 제약사 경험으로 그동안 여러 CDMO 사업 수주를 성사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 컨퍼런스를 분기점으로 향후 어떠한 성과를 낼 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 머크(Merck),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영업센터장(부사장)을 거쳐 최근까지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전문 기업 지씨셀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또한 후계구도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기존 바이오시밀러(유사 복제약품) 시장의 세계 최고 강자인 셀트리온이 CDMO 및 신약개발 진출을 선언하고 나서 역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정진 회장이 그의 장남인 서진석 셀트리온 경영사업부 대표와 함께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난해 이어 두 번째 스피치에 나서는 서진석 대표는 JPM 헬스케어 컨퍼런스의 메인트랙 스피치에 아버지 서 회장과 함께 신약 관련 주제를 가지고 연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컨퍼런스의 메인트랙 스피치에는 우리나라 바이오기업 중 3곳만 초청돼있는데, 삼성바이오로직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셀트리온 등이다.
서 대표는 이 자리에서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ADC 신약 파이프라인 등에 대한 구체적 개발 계획을 소개하면서, 이와 관련해 2029년 첫 제품 상용화를 목표로 ADC 신약 3종과 다중항체 신약 3종 등 개발하고 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것으로 보인다.
■JPM 헬스케어 컨퍼런스란?
이번 JPM 헬스케어 컨퍼런스에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50여 곳이 참여하고 있는데, 지난해보다 1.5배 많은 수준이다. 누구나 신청만 하면 참석이 가능한 CES(미국 라스베이거스 IT·가전 전시회)와는 달리 JPM은 일단 초청을 받아야 공식적으로 참석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신청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 참석할 수 있는 참가자격을 따지는 글로벌 행사라는 측면에서 차별성이 있는 행사다.
JPM 헬스케어 컨퍼런스는 1983년부터 시작된 42년 된 글로벌 제약·바이오 쇼인데, 특이하게도 글로벌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이 주최를 한다.
처음 1983년 당시에는 미국 투자전문은행인 H&Q가 이 행사를 열기 시작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비즈니스를 하는 장이었는데, 2004년 JP모건이 이 행사를 주최하기 H&Q 회사를 고가에 인수하면서 행사명이 JPM 헬스케어 컨퍼런스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투자은행이 글로벌 헬스케어 행사를 주관하는 것이 이색적이지만,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신약개발비가 들어가는 바이오 시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통해 투자가이드를 정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자본과 기술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큰 행사다.
또한 신약 개발이나 위탁생산기업들 입장에서도 투자금을 조달하는 것에 더해 적당한 파트너사를 찾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측면에서 이 행사를 통해 이뤄지는 비즈니스가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JPM 2025의 주요 주제는 우선 ADC(Antibody Drug Conjugate 항체약물접합항암제)다.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 외의 정상세포까지 공격해 이로 인해 환자의 몸 상태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반면, ADC는 암세포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핀셋공격 항암제로 전세계 관심의 중심에 서있는 신약으로서 개발 완성도와 이 신약을 위탁생산할 CDMO가 어디가 될 지도 큰 관심사다.
다음으로는 현재 주사용으로만 나와있는 비만치료제를 대신할 경구용 치료제다. 현재 세계 1위의 덴마크 제약회사인 노보노디스크와 미국의 일라이릴리가 개발중에 있는데, 출시시기와, 부작용 및 효과 등에 대한 검증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AI신약 분야로, 이미 구글 딥마인드의 존 점퍼 선임연구원과 데미스 허사비스 CEO가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만큼, AI를 이용한 신약개발이 가시화됐다. 현재 제약사들의 관심이 어느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이번 JPM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도 참여했다.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 바이오정책의 변화도 중요한 주제다. 전세계 신약 시장의 90% 이상을 미국이 장악하고 있고, 특히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생물보안법이 확정될 경우 세계 CDMO 시장은 일대 변화가 일어나면서, 제약·바이오 기업들 간의 M&A가 어느때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의 CDMO 기업들 상당수가 미국 시장 관련 기업이나 공장을 처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트럼프가 자신이 대선 공약대로 신약 개발 관련 서류비용을 50% 감액해 줄 경우 미국에서의 신약개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 중심의 신약개발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부분도 관전포인트다.
이주연 기자
저작권자 ⓒ 수도시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