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또래의 남자들은 고등학교때 기술과 공업시간에 귀가 따갑도록 듣고 배웠던 용어 중에 분업, 컨베이어벨트로 상징되는 포드시스템, 과학적 생산관리방법이라고 배운 테일러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노동자가 한가지 전문적인 일에만 집중함으로써 노동의 숙련성을 높이고 전문화하여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분업이다.

포드시스템은 컨베이어벨트가 돌면서 내가 조립할 부분만 조립함으로써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작업 속도가 빨라져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테일러시스템은 노동자의 모든 동작들을 분석해서 표준동작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표준생산량을 산출해서 노동자의 성과를 평가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성과관리시스템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노동자를 기계처럼 다루겠다는 무시무시한 용어들을 전문, 숙련, 과학, 시스템, 성과관리 등 고상한 단어들을 동원해서 만들어 냈고 이를 주입식으로 배우고 외웠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어쩌면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수인 우리 아버지 세대는 당연히 기계처럼 일을 하셨을 것이다.

산업혁명이후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은 대량생산과 생산비용을 낮춘 제품을 생산하여 이윤을 극대화하기만 하면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야간노동을 강요하는 등 노동자의 인권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까지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많은 자본가들이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저임금 국가로 공장시설을 옮겨 규격화된 제품을 기계로 찍어내듯이 생산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해당제품이 어떤 환경에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비과시적 생산이라 하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이러한 생산방법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싸게 만들 수만 있다면 아동 및 여성 노동자 착취, 저임금, 열악한 근무환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벨만 붙어있으면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들었건 소비자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마치 본국에서 만든 것처럼 표시해 두곤 했다.

한 때 volvo s90이 중국에서 만들어졌으나 made by sweden 이라고 하여 마치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표시 했던 것도 그 한 예라 할 것이다. 많은 미국, 프랑스 제품들이 동남아시아의 저임금 국가에서 만들고는 designed by USA 또는 designed by France 등으로 표시하는 꼼수를 사용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소비자들은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made in china 보다 made in USA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0~70%이며 이러한 현상이 비과시적 소비를 하는 계층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p231).

잉글하트(Ronald Inglehart)가 세계 각지 수천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세대에게는 여전히 물질적 재화가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번영을 누리며 자란 전후 세대에게는 자기표현과 소속감 같은 비물질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p236).

made in USA의 소비자들은 제2차세계대전 전 출생 세대와는 달리 대부분 경제적 풍요와 평화의 시기에 자랐기 때문에 공정한 노동과 환경주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포스트모던적 가치관(개성·자율성·다양성·대중성과 절대이념을 거부하고 탈이념 중시)을 가지고,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돈을 쓰고, 겸손하고 비과시적인 소비재를 선호한다. 이들이 하고 있는 유기농, 농민 직거래, 슬로푸드 운동은 크고 작은 방식으로 21세기 과시적 생산의 본질을 이룬다.

그들이 환경주의와 포스트모던적 가치의 영향을 받아 라벨없는 가죽가방, 라벨 없는 티셔츠 등을 선호하는 자발적 소박함을 선호하고, 이윤이나 경제성장 보다 제품의 스토리를 중시하는 과시적 생산은 전통적인 주류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면에서 오늘날의 패션은 인도산 차나 페르시아산 실크처럼 원산지가 중요한 대량생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다. H&M이나 포에버21의 여성용 패스트패션과 중국 및 베트남, 멕시코 등지에서 대량, 익명으로 생산되는 표준화된 제품으로 인해서 서구 소비자들은 대형 글로벌 브랜드, 특히 미국 라벨만 붙인 채 세계 구석진 곳에서 생산되는 브랜드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p222).

이제 제품이 만들어진 지역과 누가 만들었는지 생산과정 전체가 체계적으로 투명하게 관리되고 구체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로컬 생산자들과 손을 잡고 진짜 스토리가 담긴 제품, 그 지역 고유의 원료를 가지고 특별한 품질을 갖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p225)

이처럼 거의 산업혁명 이전의 생산으로 복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구상에서부터 생산, 소비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스토리와 로드맵을 갖추고 장인 정신이 담긴 제품을 원산지에서 소량으로 제작, 포장, 판매하는 생산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제품 자체의 품질만 따졌지만, 지금은 그 제품이 원산지는 어디인 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누가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과시적 소비와 달리 오늘날 많은 재화는 과시적 생산을 통해 그 지위를 획득한다.

지금 우리는 알리, 테무로 상징되는 근본도 모르는 초저가 제품이 홍수인 시대에 살고 있다. 과연 그러한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해한 화학물질은 없는지, 노동자의 인권은 보장 되었는지, 공장환경은 어떠한지 , 임금은 공정하게 지불된 제품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제품을 소비함에 있어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고, 노동환경은 어떤지 등 생산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조금 더 비싸더라도 made in korea가 프린트된 스토리가 있는 [과시적 생산제품]을 구매하는 [비과시적 소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 우리나라에 "야망계급론"이라고 번역 출간된 Elizabeth Currid-Halkett의 'The sum of small things: A Theory of the Aspirational Class, 2017'의 내용을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기회경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