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 큐텐 대표가 29일 전격적으로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시간 끌기용 '꼰수'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9일 구영배 큐텐 대표가 위메프 사태와 관련 사재를 털어서 빚을 갚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 몇시간 만에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시간끌기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큐텐의 자회사인 티몬·위메프는 결국 소비자 환불도, 판매자(셀러) 미정산금 결제도 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도의 구제도 요원해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인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아야 하는데, 제조업과는 달리 플랫폼 업체의 경우 고정자산 없이 신용과 시스템만 가지고 있어서 존속가치 산정이 어려워 회생절차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용이 무너진 티몬·위메프를 비롯해, 이미 자본잠식이 이뤄진 큐텐의 경우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어, 회생보다는 바로 청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신뢰를 잃은 플랫폼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가 기업을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공장, 토지, 설비, 재고자산 등의 고정자산이 있는 제조업과는 달리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플랫폼 기업은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운영시스템이 자산의 전부이기 때문에 신용을 상실했을 경우에는 인정받을 수 있는 존속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대도 구 대표가 회생절차를 신청한 것은 전형적인 시간 끌기용 ‘꼼수’라는 지적이다. 일단 회생절차를 신청하면 법원이 검토를 하는 동안의 시간을 벌 수 있고 그 동안에는 자산이 동결되는 등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파산은 채무 면제 절차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회생은 3년, 5년 분할 상환 등 길게 잡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채권을 장기간 유예하는 효과가 크다”며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파산이 아니라 회생을 신청한 것은 ‘시간 끌기’ 의도가 충분히 의심된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든 파산이든 셀러들이 미정산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티몬과 위메프는 자본잠식 상태에 대규모 누적손실로 내부 현금이 바닥난 상태다. 모기업 큐텐 또한 재무 상황이 엉망이다. 2021년 기준 1년 내 갚아야 할 유동부채(5177억원)가 유동자산(1454억원)의 3.5배에 이른다. 누적 결손금도 4316억원에 달했다. 핵심 자회사로 꼽히는 물류기업 큐익스프레스도 2022년 기준 매출 5126억원을 거두고도 영업손실이 537억원에 달했다.

최대 1조원의 피해액이 예상되는 이번 사태를 두고 늑장대응에 나선 정부에 대해서도 비난의 화살이 날아가고 있다. 이미 손실규모가 커지고 있고, 티메프 사태가 터지기 전에 큐텐의 움직임이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고객의 돈으로 운영하는 일종의 준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이 너무 허술했다는 것이다.

사후약방문 꼴이지만 늦게나마 정부는 29일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2차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티몬·위메프의 미정산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정산금을 제때 받지 못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5600억원+α’의 유동성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외에 여행사·카드사·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의 협조를 통해 신속한 환불 처리를 지원하는 소비자 대책도 내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1개 PG사 중 8곳(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NICE페이먼츠·다날·토스페이먼츠·NHNKCP·NHN페이코·스마트로)은 소비자에게 카드 결제 취소 요청 접수를 안내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네이버페이는 환불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 하루 만인 이날부터 일부 소비자에게 결제액을 돌려주고 있다. 나머지 3곳(KG이니시스·한국정보통신·헥토파이낸셜)도 관련 절차를 이른 시일 안에 진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판매자 관련해서는 결국 ‘빚으로 빚 돌려막기’식으로 근본적인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파산 관련 법조분야 관계자는 “잔존가치가 없는 기업을 억지로 회생절차에 넣을 경우 그 후유증이 심각해질 것이고, 장기적으로 피해자가 더 양산된다는 측면에서 빠른 시간 내에 청산을 시켜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면서 “당장은 채권자들이나 피해자들의 민원이 부담이 되지만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문제 확산을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