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제롬 파월과 미국 47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특별한 인연이다. 악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자세히 드려다 보면 케미가 맞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트럼프와 파월의 파워게임의 중심에는 미국 경기 둔화 및 침체 우려를 둘러싼 금리 논쟁이다. 트럼프는 “금리를 내려라”고 요구하고 있는 반면, 파월은 “금리를 내리기에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크다”고 맞서고 있다.

급기야 트럼프는 지난 29일(현지시간) 파월을 백악관으로 불러 두 시간여에 걸쳐 경제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자리는 사실 트럼프의 파월에 대한 금리인하 압박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파월과 연준은 올해 9월까지는 금리를 내릴 생각이 없음을 밝히고 있고, 상황에 따라 올해 연말까지도 금리인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날 트럼프는 파월을 향해 mistake라는 단어를 써가며 “금리인하를 늦추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말했고, 파월은 nonpolitical이란 단어를 들면서 “정치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맞섰다.

이번 트럼프와 파월의 만남은 트럼프 2기 들어서 첫만남이었는데, 그동안 트럼프는 자신의 SNS를 통해 파월을 끊임없이 공격해왔다. 지난번 연준 통화정책 당시 금리를 유지하자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라고 조롱하면서 미국 물가지표 등이 잡히고 있는데 금리를 내리지 않는 것을 공격하기도 했다.

백악관과 연준은 위치상 붙어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음에도 대통령과 연준 의장은 거의 만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이 그랬고, 트럼프도 1기 때 딱 한번 만났다. 연준의 독립성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파월 의장을 공격하고 나섰고,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백악관으로 불러 다그친 것이다. 최근 나온 FOMC(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 의사록에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담기면서 트럼프 입장에서는 연준이 금리를 쉽게 내리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SNS상의 공격과 직접 대면 압박에도 파월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취임 초기 트럼프는 내년 5월까지 임기인 파월 대신 그림자 연준 의장을 임명해 파월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겠다는 구상도 밝힌 바 있었지만, 파월은 매킨리 산처럼 굳건히 버티고 있다. 사실 파월의 그동안 행보는 굳건히 맞서는 항거의 역사였다.

파월은 2012년 당시 민주당 정권인 오바마 행정부에 의해 처음 연준 이사로 발을 드렸다. 파월은 공화당원이었는데, 민주당 정권에서 파월의 실력을 인정해 반대당원임에도 불구하고 연준 이사로 들인 것이다.

파월은 당시 버냉키 연준 의장의 무제한 양적완화(돈 풀기) 정책에 인플레이션 우려를 이유로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월가의 회사채 전문가들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연판장을 모아 버냉키 의장과 맞섰다. 결론은 연준이 양적완화 대신 테이퍼링(자금 회수) 정책으로 돌아섰고, 이 사건으로 파월은 연준 내에서 의장의 파워에 버금가는 지명도를 갖게 됐다.

이 후 트럼프가 2018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 해 2월 1일 파월을 연준 의장에 임명했고, 2021년 바이든이 46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재임시켜 현재까지 의장을 유지하고 있다.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트럼프 1기 때도 파월은 트럼프와 각을 세웠다. 그때도 이유는 금리인하와 관련한 대립이었다.

1기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2018년 트럼프는 파월에게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를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파월은 오히려 인플레이션 우려를 들어 금리를 인상해버렸다. 당시 화가 난 트럼프가 파월을 해고시킬 방법을 측근들과 협의했지만, 결국 측근들의 반대에 부딪혀 해고를 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그 바람에 미국 경제가 나빠지고 주가가 떨어지면서 다급해진 트럼프가 파월에게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를 요구했던 것이다.

파월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나타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총 11번의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2022년 3월 0.25%p 인상으로 당시 기준금리 0.25%~0.50%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2023년 7월 4.75%~5.0%까지 금리를 끌어올렸다.

그 결과 10%에 육박하던 미국 인플레이션은 현재 2% 대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2024년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는 파월에게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금리를 내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금리인하가 바이든 행정부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지부동이었던 파월은 2024년 9월 대통령 선거 48일 전에 기준금리를 0.5%p 내려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측으로부터 정치적인 판단이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와 파월의 관계는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각을 세우고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파월의 고집이 관세나 감세 등 트럼프 자신의 경제정책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을 때 원인제공자를 파월로 몰아갈 수 있는 빌미가 된다는 점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는 관세폭탄과 감세 정책으로 자칫 미국 경제가 망가질 수 있는 것을 파월이 중심을 잡아주면서 이를 어느정도 막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쁜 결과가 나왔을 경우에는 그 원인을 파월에게로 돌릴 수도 있다는 구상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파월은 트럼프에게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케미의 존재가 얼마든지 있다. 겉만 보고 판단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현재 미국의 트럼프 행보 이면에는 그런 보이지 않는 케미들이 다수 존재해 보인다.

우리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은 트럼프나 미국의 이러한 보이지 않는 이면의 케미를 잘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스토리를 엮으면 길이 보인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