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설명절 연휴가 지나고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와 출근한 이튿날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자손들 서울로 보내고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민화투 점당 10원짜리 치시다가 3번 연속 잃고 힘들다고 하시면서 누워계시다 돌아가셨다.
같이 화투를 치셨던 작은 할머니가 오셔서 "한번 잃어 드렸어야 했는데 형님...." 하면서 곡을 하셨던 웃지 못할 기억이 있다. 당시 연세가 84세였는데 장수하셨고, 병치레 없이 돌아가셔서 호상이라고 고향집이 떠들석하게 초상을 치른 기억이 있다.
지인의 어머니는 올해 89세인데 아침에 헬스장 가셔서 운동후 반신목욕,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급식봉사(시간당 1만원)를 3시간 하고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물론 85세이신 내 어머니와도 많이 다른 신체적 활동을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6년의 장수개념과 2024년의 장수개념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2024년과 내가 노인이 될 2040년의 장수개념이 다를 것이다.
2024.1월 현재 65세이상 고령인구비율은 19%인데 전남은 26%, 강원도,전북,경북은 24%정도 된다. 인구 5명중 1명이 노인이고, 2030년 25%, 2040년에는 40%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초고령사회가 성큼 다가왔다. 이와함께 회자되는 용어가 AIP와 AIC이다.
AlP(aging in place)는 자신이 익숙한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핵심은 기존거주지, 사람, 수요자 중심의 개념이다.
AIC(aging in community)는 기존 거주지에서 계속 거주하는 의미의 AIP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특정한 지역이나 도시와 연계한 더 큰 차원의 공동체 속에서 거주하는 개념으로 핵심은 새로운 주거공간에 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로 확대된 개념이다.
우리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처럼 이웃주민들이 모내기, 추수를 돕고 경조사를 챙기는 등 마을 자체가 공동체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태어난 집에서 자라고 청·장년이 노인이 되어서도 한 마을에 계속 살면서 희로애락을 공유했다.
집이 좀 낡았더라도 함께하는 이웃사촌이 있으면 그만이었다.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일종의 AIP, AIC기능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고 노인들만 남게 되면서 청년부터 노인까지 어울려 살던 마을은 점점 소멸되어 가고 있다.
요즈음 지방의 소멸도시에 대한 기사들이 종종 나오고 있다. 5년 단위로 2021년 10월 최초 지정된 소멸 시·군·구는 89개다.
마을이 모여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여 국가가 된다. 소멸 또는 축소도시를 논하기 전에 소멸 또는 축소되는 마을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출산율의 감소에 따른 마을 소멸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인구유출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AIP, AIC를 고령자의 주거문제로만 인식하면 안될 것이다. 또한 인위적인 AIP, AIC 단지를 만들어 노인들을 이주시키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젊은이들도 계속 머무르게 하는 공간복지시설로 상징되는 공공카페, 공공스터디룸 등 편의시설,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들을 마을이라는 공동체에 수요자맞춤으로 다양하게 주입하여 더 이상 마을이 축소 또는 소멸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
수도권에서도 유이하게 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지역으로 가평군과 연천군이 있다. 가평군(인구 6만 3235명)과 연천군(4만 1950명)이 인구밀도가 1㎢당 75명(경기도 1㎢당 3976명)을 밑돌아 지난 2021년부터 인구감소지역으로 분류됐다.
소멸되는 마을의 문제는 이제 지방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똑같이 고민하여야 할 때가 됐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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