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용인시장이 9일 신년 언론브리핑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이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용인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 문제가 용인시와 청와대의 다툼으로까지 번졌다. 6월 지방선거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판에 커다란 이슈로 등장하게 됐다.

이 문제는 연임을 노리는 이상일 용인시장에게는 어려운 싸움이 될 수 있는 6.3지방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갖게 되는 반전효과가 있지만, 정부나 전북 정치인들에게는 이기든 지든 별로 소득이 없는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용인지역의 이번 지방선거 판도는 그동안의 추세를 보면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당선된 것을 고려할 때 진보세력인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이상일 시장 이전의 백군기 시장이 더불어민주당, 그 이전 정찬민 시장은 국민의힘, 그 전 김학규 시장은 민주당이었다.

여기에 지난 총선의 분위기를 보면 지역구 국회의원 4명 모두가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 한 지역이다. 이상식, 이언주, 손명수, 부승찬 의원 모두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용인시의회 구성을 봐도 더불어민주당이 우세한 상황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는 대통령 선거 직후 치른 선거여서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국민의힘이 휩쓸 때였지만, 용인시의회 구성은 시의원 총 32명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17명으로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여기에 이번 지방선거는 이재명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된 지 딱 1년 만에 치르는 선거여서 이 대통령 지지세가 압도적인 상황인데다 지금까지 이 대통령 지지도가 60% 안팎의 높은 지지율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지지도가 10%p 이상 높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등 여러모로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한 상황이 겹쳐 용인시의 정치지형 상 이상일 시장이 연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이 시장 입장에서는 대통령, 장관, 정치인들이 나서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북 지역으로의 이전 요구는 울고 싶은데 적기에 뺨 때려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처음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는데, 2023년 3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사업을 확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반도체 클러스터다. 당시 사업 내용은 정부가 총 622조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해 생산유발효과 650조원과 고용창출 346만명을 계획했었다.

그런 엄청난 사업을 용인에서 이미 첫삽을 떴고 일부는 공사가 들어간 상황인데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고 하면 아무리 정치적 성향이 다른 시민이 많더라도 이전을 막는 시장에 대한 지지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현재 싸움의 승자는 이 시장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이 시장 당선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정부나 호남 정치인들은 이 시장 당선에 들러리 역할을 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싸움이 길어지고 판이 커질수록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 시장은 연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이전을 주장하거나 방관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시비를 걸면서 판을 키우고 있다.

이 시장은 지난 9일 신년 언론브리핑에서 역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지난 1월 5일 오후 5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에게 직격탄을 날린 지 불과 나흘 만에 이번에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이날 이 시장은 용인의 반도체 산업단지를 새만금 등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여당 측에서 나와 초래된 혼란과 혼선을 이재명 대통령이 명확한 입장 표명을 통해 직접 수습해야 한다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했다.

이 시장은 전날 있었던 청와대 대변인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방이전은 기업이 판단할 몫이라는 청와대 대변인 발언 정도로는 논란이나 혼란이 가라앉지 않을 터, 이제는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본심은 무엇인가. 국민 앞에 명확하게 밝히시기 바란다”면서 “8일 청와대 대변인이 '클러스터 대상기업의 이전을 검토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업 이전은 기업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했는데, 여기엔 국가전략사업 지원이란 정부 책임이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대변인 발언 국가 책임을 망각한 발언이고, 그 정도의 발언으로 호남 쪽에서 나오는 용인 반도체 산단 지방이전론이 불식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싸움은 결국 이상일 용인시장과 이재명 대통령 간의 싸움으로 번졌고, 이 대통령이 어떠한 해명을 해도 이 시장이 승기를 잡는 계기가 될 뿐인 상황이 됐다. 만일 이 상황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다른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움직임이 나올 경우 그 바람은 전국 지방선거에 태풍으로 몰아닥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한 발 빼서 용인을 그대로 둘 경우 이 시장은 엄청난 전리품을 얻는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잡는 식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은 엄청나게 발생하게 된다. 현재 용인 원삼면에 조성하고 있는 SK하이닉스 공장은 총 투자비용이 9조4000억원인데 현재까지 공정율이 77%로 알려져 이것을 포기하고 이전할 경우 7조2400억원을 날리는 셈이다. 이동 남사에 조성중인 삼성전자 공장은 토지보상 협의가 진행중이지만 이미 향후 20년 간 360조 투자계획을 결정한 상황에서 초기 설계가 완료됐고, 공공인프라 등에 이미 16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손실은 직접 투자된 매몰비용보다 이전에 따른 기회비용은 산정 조차 어렵다. 이전을 위한 부지 선정과 인허가 등에 최소 5~6년이 추가로 소요되는데, 하루가 다르게 전선이 급변하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자칫 주도권을 뺏길 경우 그 손실은 우리나라 1년 국가예산 이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전 대상지가 새만금일 경우는 더 큰 문제가 예상된다. 새만금 지역은 매립지여서 지반이 연약지반이다. 작은 진동도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 산업에 지각 불안은 치명적인 약점이고, 이를 보완하려면 엄청난 보강 공사와 그에 따른 공사비 추가와 공기지연이 발생한다.

새만금 지역에 전기가 풍부하다는 논리도 맞지 않는다. 현재 새만금지역의 전기 공급량은 5GW(기가와트)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확보한 6GW보다 적은 상황이고, 전기의 질 측면에서도 역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는 반도체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

추가로 필요한 전기량은 용인의 경우는 9GW이고 새만금은 10GW다. 도긴개긴이다. 전기를 가지고는 이유가 전혀 안된단 말이다.

지방세수 측면에서도 용인시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 현재 인근 화성시가 삼성전자 공장에서 거둬들이는 법인세가 연간 2000억원에 달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규모는 화성 공장의 두 배 이상이 되기 때문에 연간 5000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용인시 2026년 예산 3조 5000억원의 7분의 1 수준이다. 시민들 입장에서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나.

싸움 중에 가장 끝이 좋지 않고 지저분한 싸움이 밥그릇 싸움이다. 파이를 키워서 배당을 각자 더 많이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고 이미 주인이 정해진 밥그릇을 뺏는데 총칼을 든다면 그 싸움의 결과는 뻔하다는 것이다.

끝이 이미 보이는 싸움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이 싸움을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더 이상 논란이 지속될수록 싸움은 진흙탕으로 빨려들고 옷만 버리는 것이 아니고 서로 몸 전체가 상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이빨 드러내고 달려드는 이리떼가 도사리고 있는데 우리끼리 이러면 안되지 않나?

손자의 병법이나 솔로몬의 지혜까지도 필요치 않다. 상식적 판단만으로도 해결될 문제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