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


나는 직장생활을 과거 뚝섬 경마장 건물을 임시사옥으로 사용하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서 시작했다. 30여년 전 뚝섬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가는 길 주변엔 퇴근길 피곤함을 달래줄 노포들이 입점되어 있는 단층 건물들과 지금은 헤이그라운드로 바뀐 에스콰이어 건물 등의 신축건물이 혼재한 거리였다.

뚝섬역 주변은 포장마차촌이 형성되고 있었지만 공장지대가 많았던 성수동 안쪽은 한 밤에 돌아다니기가 무서울 정도로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그리고 1998년에 SH공사가 개포동에 신사옥을 짓고 이주를 하게 되면서 뚝섬과 성수동 쪽은 가볼 일이 없었다. 그러던차에 얼마전 직원들과 함께 낮에 견학삼아 성수동을 가보았다.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오가고 있었고, 외국인 관광객들로 거리가 넘쳐나고 있었다.

해방 이후부터 1980~90년대에 걸쳐 성수동은 서울산업화의 현장이자 저임금 고밀도 노동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제조업 기반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수많은 영세공장과 소공인들이 폐업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쇠퇴는 이후 성수동이 새로운 방식으로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버려진 공장과 창고에 청년 문화예술인, 스타트업체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며 카페, 갤러리, 공방, 사무실 등으로 재탄생했다.

2005년 서울숲이 조성된 이후, 방문객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성수동에는 사회적 경제조직, 예술문화단체, 지식산업 스타트업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난개발을 방지하고자 뚝섬과 성수동 일대를 다섯 개의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했다.

2011년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따라 지정된 구역들로, 서울숲 활성화와 연계한 대규모 복합개발을 목표로 했다. 1.2구역은 서울숲 옆 중랑천변에, 3구역은 서울숲길과 뚝섬역 사이에, 4.5구역은 서울숲길 초입부에 위치했다. 이 구역들은 저층 단독 및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었고,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고밀도 개발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되면 구역내에는 고밀개발이 되어 서울숲은 반(半)사유화될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 성수동에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변화가 자생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구두공장과 금속 인쇄소가 즐비했던 낡은 준공업지대에서, 젊은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스스로 계획하고 추진하며, 도시 공간을 민간주도로 재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플로리다는 "기업이 있는 곳에 인재가 몰리는 것이 아니라, 인재가 있는 곳에 기업이 따라간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전통적인 도시발전방식, 즉 산업 인프라를 기반으로 인재를 유인하던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오늘날에는 창조적인 사람들과 감각적인 소비층, 그리고 활발하게 연결된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곳에 산업이 형성되며 기업은 그러한 흐름에 합류한다는 관점이다. 성수동은 이러한 이론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성수동에 입주한 기업들은 이 지역의 물리적 공간보다 '여기에서 일한다'라는 상징성이 주는 무형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성수에서 일한다"라는 표현은 또래 집단에서 자신을 차별화하고 창의성과 감각을 인정받는 일종의 상징자본이 되었다.

당시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1.2구역은 이미 지역주택 조합 방식의 재개발이 상당히 진척되어 있어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3.4.5구역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정책 재검토의 여지가 충분히 존재했다. 성동구는 이 구역들에서 기존의 재개발 계획을 기계적으로 추진하기 보다, 이미 나타나고 있던 도시의 변화 흐름을 수용하고 조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별계획구역이 유지될 경우, 이러한 자생적인 흐름이 단절될 위험에 처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획일적인 대형 아파트 단지로 채워지는 순간, 성수동의 장소성과 다양성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성동구가 뚝섬 특별계획구역 3.4.5구역을 해제하고 도시재생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구청장과 공무원들이 권역별, 동별로 나누어 동네마다 주민들을 찾아 설명하고 20여회의 간담회와 작은 설명회 등을 소규모 권역별로 세분화하여 반복적으로 진행하였다.

결국 2017년 3월 22일, 서울시 제5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뚝섬주변지역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안'이 수정 가결되면서 3.4.5구역 해제가 공식 확정되었다. 이것은 행정의 일방적인 계획 철회가 아니라, 주민과 행정, 민간과 전문가가 함께 만들어낸 합의의 결과였다.

'뚝섬주변지역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안' 수정 전과 후 비교

이후 뚝섬과 성수동은 외지인들이 일부러 찾아와 시간을 보내는 문화 소비의 무대가 되었고,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것은 거대 자본이 아닌 청년 창업가들이었다.

정미소 건물인 '대림창고'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고, 인쇄공장을 개조한 '자그마치'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독립영화가 상영되고 실험적 전시가 펼쳐지는 공간이 되었고, 낡은 화학공장은 '성수연방'으로 되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또한 붉은 벽돌을 성수의 색깔로 디자인하여 성수동을 찾는 사람들, 또는 살고 있는 사람들이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붉은 벽돌이란 요소로 130개의 다양한 건물들을 '덧칠'한 것이다. 성수동이 도시 디자인의 모범이 된 이유는 특정 건축 양식이나 시각적 통일성 때문이 아니라, 그 장소에 깃든 서사와 정서를 어떻게 읽어내고, 이를 공공 정책의 언어로 번역했는지에 있다.

특별계획구역의 해제외에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조례, 붉은벽돌 보전 조례, 성수형 사회계약, 성동안심상가, 공공팝업스토어, 타운매니지먼트 등 성동구의 노력이 오늘의 성수동을 "뜨는도시"에서 "매력도시"로 만들었다.

성수동은 "매력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행정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성수동"(정원오, 메디치, 2025)에서 대부분의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