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난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들어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자가 말한 양금택목(良禽擇木)은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앉는다는 뜻으로 훌륭한 사람은 좋은 지도자를 가려서 섬긴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양금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자가 좋은 나무를 찾아 고향인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갔을 때 위나라의 실세인 공문자가 그를 반기며 나라 걱정이 아닌 자신의 사소한 문제를 상의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면서 더이상 위나라에 머물 명분이 없어졌다면서 위나라를 떠나면서 한 말이 바로 양금택목이다.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면서 “‘똑똑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벼슬살이를 하려면 훌륭한 군주를 찾아 섬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새로 생기는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지명한 것을 두고 연일 시끄럽다. 국민의힘에서는 지명 소식이 나오자 즉각 제명했고, 민주당 내에서도 ‘윤어게인’의 대표적인 인물을 내각에 임명한 이 대통령의 결정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내란세력을 청산하는 마당에 내란에 앞장선 인물 중 대표적인 사람을 어떻게 선택했냐는 시비다.
당연히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결정이겠지만, 국민의힘 상황이 웬만해서 둥지 틀기 어렵게 됐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이혜훈 전 의원을 똑똑한 새로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을 좋은 나무로 생각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국민의힘이 더 이상 새들이 둥지를 틀기 어려운 상황이 됐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전 의원에 대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배신은 배고향신(背故向新) 즉 옛 친구를 배반하고 새로운 사람과 사귄다는 한자성어의 줄임말이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나 의리를 저버리고 새로운 이익을 좇는 태도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 전 의원이 배신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국민의힘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장관 제의를 받았을 때 거부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나 싶다. 어쩌면 이번 배신이 봇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 당내 핵심 인사도 떠나는데 국민들이야 어떻겠는지를 따져보고 반성부터 해야 하는데 배신자 타령만 하고 있다.
다만 이 전 의원이 이재명 정부의 예산을 짜고 관리하는 기획예산처 장관에 지명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 걸맞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줘야 하는데 과연 그런지가 의문이다. 현재까지 발언을 보면 별로 소신도 없고 특별한 전문성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다. 청와대는 경제적 전문성을 높이 평가해 특별히 모셔가는 것처럼 해명을 하고 있지만, 정작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들만 늘어놔, 이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나무가 새를 부른 격으로 보인다.
이 전 의원은 어제(29일) 기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걱정하면서 “갑자기 어느 날 불쑥 튀어나와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드는 ‘블랙스완’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모두 알고 있고 오랫동안 많은 경보가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방관했을 때 치명적 위협에 빠지게 되는 ‘회색 코뿔소’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회색 코뿔소의 사례로 인구위기, 기후위기, 극심한 양극화, 산업과 기술의 대격변, 지방소멸 등 5가지를 꼽았다. 기획예산처 장관이 아닌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챙길 회색 코뿔소가 아닐까?
이 전 의원은 과거 이재명 정부의 확장예산을 두고 앞장서 공격해온 인물이다. 재정매파 입장에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국가부채 급증에 대해 경고장도 날렸다.
이 대통령의 민생회복 지원금 관련해서는 “포퓰리즘의 전형으로서 결국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고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대선 때는 이재명 후보의 서민에 대한 지원의 승수효과 주장에 대해 “반쪽짜리 얘기”라며 “단기적 효과에 그치고 장기적인 국가 재정 건전성이나 실질적인 경제 체질 개선에 한계를 맞게 될 것이다”고 반박했다.
충분히 일리 있고 공감이 가는 말들이다. 이혜훈이 걱정하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할 회색 코뿔소는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인구위기, 기후위기, 극심한 양극화, 산업과 기술의 대격변, 지방소멸 같은 누구나 다 아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들고나온다는 것 자체가 본질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이재명 정부에 벌써부터 코드를 맞추는 것인지 아쉬운 부분이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가 고민해야 할 회색 코뿔소는 내년 확장재정으로 인한 부채증가, 그로 인한 국채 발행 증가, 그로 인한 통화량 증가, 그로 인한 물가상승과 환률 상승 등 아닐까 한다. 그런 측면이라면 상호 보완 측면에서 이재명 정부와 케미가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금택목이란 말도 어울릴 수 있을것이다.
이재명 정부에는 쓴소리가 될 수 있지만 결국 국가 경제에 필요한 전문가로서의 할소리를 한다면 이혜훈도 빛나고 대통령도 빛날 것인데...
많이 아쉬운 장면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