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이 지난 12월 24일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추진방안 결정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수주전이 기존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 방식에서 경쟁입찰 방식으로 변경된 배경 관련 산업계에서는 국방부 등 관련 기관 공직자들이 대거 한화로 이직 한 점을 이유로 들고 있어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지난 12월 22일 KDDX의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에 대한 업체 선정 방식을 기존에 기본설계를 담당했던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 방식을 포기하고 한화오션과의 경쟁입찰 방식으로 변경했다.

KDDX 사업은 당초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 담당했고, 이 후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담당해 완료한 상태다. 관례에 따르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는 기본설계 업체가 수의로 수주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기본설계를 하지 않은 업체가 상세설계를 할 경우 설계오류 가능성과 공기지연 등 리스크로 인해 문제 발생 소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경쟁입찰로 계약방식을 변경한 이유는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군사기밀유출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되면서 한화 측에서 단순 직원의 문제가 아닌 임원진까지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수의계약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2024년 3월 4일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의 KDDX 개념설계 유출과 관련해 임원이 개입된 정황을 수사·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게 제출하면서 결국 수의계약 대신 지명경쟁입찰 방식으로 변경되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문제는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유출 처벌이 있었지만, 최근 열린 KDDX 기술자문위원회에서 자문위원들이 한목소리로 수의계약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방부 장관이 태클을 걸면서 지명입찰 방식으로 변경이 된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이 제시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모습. 사진=HD현대중공업

이러한 계약 방식의 변경 배경을 두고 한편에서 한화 측의 로비력이 HD현대중공업을 크게 앞선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화 측은 오래 전부터 국방부나 방위사업청 등 정부 핵심 기관의 고위 공직자를 꾸준히 영입하면서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의 정보와 움직임을 수집하고, 전관예우를 내세워 한화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는 등 결국 로비력을 강화시킨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3년간 한화로 옮겨간 공직자는 4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로 가기 위해 인사혁신처 공직자 심사를 받은 공직자 중 5명은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올 한해 2025년 1월부터 11월까지 힌사혁신처의 공직자 이직 심사 결과를 보면, 국방부 등 관련 기관에서 한화로 이직을 신청한 공직자는 총 16명인데 그 중 5명은 불가 판정을 받고 11명이 심사를 통과해 한화로 이직을 했다.

1월에 국방부 해군중령이 한화오션 책임, 국가정보원 3급이 한화시스템 부사장으로 옮겼다. 2월에 외교부 특임공관장이 한화오션 사외이사, 국방부 육군준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임원, 국방부 육군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무로 옮겼다. 3월에 국방부 공군대령이 한화시스템 부장으로 옮겼고, 방위사업청 해군대령은 한화오션 상무로 옮기기 위해 신청했으니 심사 결과 불승인됐다.

3월에 국방부 공군대령은 한화시스템 부장, 4월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상무로 옮겼다.

4월에는 국방부 공군중령이 한화시스템 부장, 국방부 공군대령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수석연구원으로 이직했다.

6월에는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이 한화시스템 상무로 가기 위해 신청했으나 심사 과정에서 불승인 받았다. 7월에 국방과학연구소 3명의 수석연구원 및 해군중령이 한화오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으로 이직을 신청했는데, 이 중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1명이 심사에서 불승인 받았고 나머지 두 명은 한화 측에 입사했다.

8월에 방위사업청 육군중령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장으로 옮겼고, 9월에는 국방부 해군준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고문으로 이직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받았다.

2024년에는 총 12명의 방위산업 관련 공직자들이 한화로 옯겨갔다. 국방부,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국가정보원, 공정거래위원회, 외교부 등 다양한 부서에 걸쳐있다. 2023년에는 무려 21명이 한화로 자리를 옮겼다. 국방 관련 부서에 더해 검찰청, 산업통상자원부 공직자들도 포함됐다.

국방과학연구소 인사들이 한화 측으로 상당수 옮겨갔는데, 보통 국방부나 방위사업청에서 민간기업으로 옮겨가기 전에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일정 기간 경력세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 이들 국방과학연구소 인사들이 전관예우 및 로비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한화로 대거 이직한 인사들과 정부 발주 사업 수수전과의 연관성을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반면, 한화에 반해 HD현대중공업 측으로 옮겨간 국방부 및 관련 기관의 인사는 심사 대상 명단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화오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가상 시운전 모습. 사진=한화오션

이미 올해 초부터 한화 측에서는 수의계약에서 지명경쟁으로 계약방식이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 2월 방위사업청에 KDDX ‘기본설계’ 열람을 공식 요청했는데,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KDDX 기본설계부터는 연구개발 단계로 기밀 유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KDDX 건조 참여가 확정되지 않은 업체엔 제공할 수 없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KDDX 발주 방식이 정해지기 10개월 전인 시점에서 한화는 어떻게 "경쟁입찰"로 변경될 것을 알고 '기본설계' 열람을 요청했는지에 대한 배경에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한화 입장에서는 실시설계 입찰을 위해 기본설계를 최대한 빨리 열람해 미리 입찰 준비를 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국방부와 한화 간의 사전 교감 부분에 대해 의심이 갈만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번 KDDX 수주전에서 기존 관례이기도 하고 방침이기도 한 수의계약 방식이 경쟁입찰 방식으로 바뀐 배경에는 한화 측으로 이동한 대규모 국방부 관련 인사들을 통한 끊임없는 정보전 및 로비전이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1년 후 있을 경쟁입찰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지에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일단 HD현대중공업이 받은 보안감점 1.2점이 올해 11월까지에서 입찰 연기에 따라 내년 12월까지 유효하게 됐는데, 향후 1년 간 두 회사에 어떤 보안 관련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화 측으로 이직한 공직자들과 국방부 측과의 이해충돌 부분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기본설계를 한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 개발 관련 유리한 입장에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입찰 과정에서 평가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가격경쟁까지 하게 될 경우 출혈경쟁으로 인해 자칫 불량 제조물을 만들고, 기업들도 손실을 보게될 가능성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이 2035년까지 앞으로 1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라서 현재 결정권자들이 10년 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면서 “입찰 시점인 내년 말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 두고두고 시끄러운 공방전과 법적인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