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재벌 총수들의 신년사 가운데 지난해에 이어 LG그룹의 구광모 회장이 가장 먼저인 12월 22일 내놓으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8년째 같은 메뉴인 ‘고객’ 신년사를 내놓아 일관성이 있다는 말과 함께 변화가 없고 실체와는 다른 메시지를 낸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내년 LG그룹 신년사의 키워드는 2019년 구 회장 취임 첫 신년사와 같은 맥락의 ‘고객’이다. 그러나 구 회장의 ‘고객’ 강조 신년사들과는 달리 고객가치를 훼손하는 경영 모습을 보여 말로만 ‘고객’을 부르짖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밖에 없다.
영상을 통해 발표한 구 회장의 2026 신년사는 “올해도 고객을 향한 마음으로 도전과 변화를 위해 노력한 구성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시작했다.
이어서 고객 얘기가 전체를 도배하고 있다. “고객의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으로 도약해야만 한다”, “고객 삶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미래 고객에게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위해 우리 생각과 행동도 변해야 한다”면서 미래의 고객까지 챙기는 것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먼저 고객의 마음에 닿을 하나의 핵심가치를 선택해야 한다”, “고객이 ‘정말 다르다’고 느끼는 경험을 만들고 세상 눈높이를 바꾸는 탁월한 가치를 완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집중하자”, “10년 후 고객의 미소를 짓게 할 가치를 선택하고 오늘을 온전히 집중하는 혁신을 하자”면서 이제는 10년 후 고객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고객을 위한 좋은 말은 다 모아놓았고, 말만 들으면 고객을 엄청 챙기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과거 인화와 정도경영의 LG가 고객경영으로 완전히 바뀐 모습이다.
그러나 구 회장이 2018년 마흔의 젊은 나이에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행보를 보면 회사 쪼개기를 통해 고객인 주주가치를 훼손시키고 상대적 주가하락으로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겨줘 실상은 고객에게 고통만 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2020년 LG화학에서 미래형 사업분야인 이차전지 부문을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할시킨 것이다. 2020년 말 LG화학 분할 소식에 80~90만원 하던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해 분할 후 재상장 때인 2022년 1월 27일 61만원으로 떨어졌고, 올해 12월 22일 현재는 34만6000원까지 떨어져 있다.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1월 27일 상장 첫날 50만 5000원이었지만 올해 12월 22일 현재 38만9500원으로 떨어져 있다.
특히 올해 LG그룹의 기업 쪼개기는 더 심해졌다. 올해 2월 ㈜엘지의 100% 자회사인 LG씨앤에스를 상장시켰다. ㈜엘지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기업을 상장시키면서 이 회사에 대한 ㈜엘지의 지분은 100%에서 47.09%로 크게 줄어들었다. ㈜엘지 주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LG는 물적분할 형식이 아닌 별도 자회사이기 때문에 상장에 따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모회사인 ㈜엘지의 가치가 하락해 주주들의 손실이 예상되는 경우 미국이나 선진국에서는 별도 상장에 상당한 허들이 작용하고 주주 단체소송까지 벌어진다.
올해 10월에는 LG전자의 인도법인을 인도 증권시장에 상장시키면서 독자 회사로 만들었다. LG전자 100% 지분의 현지법인을 상장시켜 지분 15%를 시장에 풀었다. 신생 인도법인 LGEIL(LG Electronics India Limited)는 그동안 LG전자 순이익의 10% 이상을 담당해온 알짜기업이다. 이 회사를 상장과 동시에 15%의 지분을 시장에 풀었는데, 앞으로 주가가 크게 오를 경우 더 많은 주식을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LGEIL은 매년 상당한 순이익을 거두는 기업으로서 근래 LG전자의 실적 부진을 만회해주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2023년 매출 3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7% 늘어났고 순이익은 2313억원을 냈다. 2024년에는 매출 3조7910억원으로 14.8% 늘었고 영업이익은 3318억원으로 전년 비 43.8% 늘었다. 올해 1분기에만 매출은 1조2428억원을 올려 2025년 매출은 5조원에 육박하고 순이익은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모회사인 LG전자를 앞지를 가능성도 있다. 현재 이 LGEIL은 인구 14억명 이상인 인도 가전 시장의 34%를(냉장고 29%, TV 27% 등) 점유하고 있는데, 현재 이 나라 에어컨 보급률이 12%이고 냉장고와 세탁기 보급률도 20%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무궁무진한 매출과 이익을 안겨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평가받고 있다.
LG전자 주주 입장에서는 현재 가치는 물론 미래가치까지 훼손당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경영은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고객을 외면하면서 매년 신년사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을 부르짖는다. 이정도면 고객경영이 아닌 ‘호갱경영’이란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구 회장의 2019년부터 지금까지 그룹 신년사 키워드를 정리하면, “고객가치를 만들자”, “고객의 마음으로 실천하자”, “고객을 세분화해서 맞춤형으로 고객가치를 만들자”, “고객이 가치있는 경험을 하도록 하자”, “고객가치 창조자가 되자”, “고객에게 차별적인 고객가치를 느끼게 하자”, “미래 고객이 미소를 짓게 하자”였다.
그러다가 급기야 2026년 신년사에서는 “10년 후 고객을 미소짓게 할 가치를 선택해 오늘을 온전히 집중하는 혁신을 하자”고 강조했다.
구 회장이 말하는 ‘고객’이 자신을 비롯한 오너 일가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객’의 정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지를 묻고 싶다.
2006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스쿨에서 불만고객연구보고서를 냈다. 불만고객의 6%만이 기업에 직접 항의를 하지만, 31%는 주변에 험담을 최소 1명에서 6명까지는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나머지 63%는 귀찮아서인지 그냥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넘어간다고 한다.
아마 구 회장은 이 63%의 호갱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이제 세상이 바뀐 온라인 시대에서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한 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한명의 부정경험을 한 고객은 온라인에서 6000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