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선보인 제미나이3.0. 사진=구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를 뜨겁게 달군 장본인은 구글이 내놓은 챗봇인 제미나이3.0이었다. 근래 AI거품론으로 인해 뉴욕 증권시장은 구글 지주사인 알파벳의 주가가 6.31%, 구글과 협력 관계에 있는 브로드컴 주가 역시 11.10% 오르면서 근래 싸늘한 증시 분위기에서 벗어나 기술주 중심으로 시장을 이끌었다.
제미나이 효과로 나스닥종합지수는 2.69% 올라 지난 5월 12일(4.35%)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르며 최근 부진을 만회했다. 알파벳은 장마감 이후에도 2.63%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그동안 챗GPT의 오픈AI에 AI용 반도체를 독점적으로 공급해온 엔비디아는 장 초반에는 하락으로 시작했다가, 막판에 2.05% 상승으로 마감했다. 기술주 중심의 열기 덕분으로 보이는데, 장 마감 후 장외에서 –1.52%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구글이 지난 18일 발표한 제미나이3.0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원조 AI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구글이 내놓은 딥마인드 인공지능(AI)인 알파고가 우리나라의 이세돌 바둑 9단을 이겼던 사건이 사실상 인공지능의 탄생으로 봐야 하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 제미나이3.0으로 현재 챗GPT를 뛰어넘는 챗봇을 선보이면서 AI 생태계의 흐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현재 AI생태계는 2022년 11월 30일 샘 올트먼의 오픈AI가 발표한 챗GPT가 지배하고 있는데, 이번에 구글이 성능은 더 뛰어나고 비용은 적게 드는 새로운 수준의 챗봇을 내놓으면서 AI 시장에 독점구조가 본격적으로 깨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검색엔진과 운영체제(OS) 공룡인 구글이 제미나이의 성능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면서 AI 혁명의 후발 주자에서 선두로 올라설 조짐을 보이면서 AI반도체인 GPU를 독점적으로 공급해온 엔비디아의 아성 역시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제미나이30.에 대해 이미 전문가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고, 심지어 오픈AI의 올트먼 CEO도 제미나이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올트먼은 “구글 제미나이3.0이 놀랍다. 이제 우리가 쫒아가야 하는 입장”이라는 반응을 내놓았고, 오픈AI의 공동창업자였던 테슬라의 일론 머스트도 “구글 제미나이3.0의 놀라운 성과에 축하를 보낸다”고 소셜미디에 엑스에 밝혔다.
세일즈포스 창업자인 마크 베니오프는 “추론, 속도, 이미지, 비디오 등 모든 면에서 엄청난 진전이다. (챗GPT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니오프는 지난 3년 동안 챗GPT를 사용하다가 며칠 전부터 제미나이3.0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 성능에 감탄한 의견을 밝힌 것이다.
구글 역시 제미나이3.0에 대한 자신감을 공개적으로 보여줬다. 구글은 출시 첫날부터 제미나이3.0을 자사 검색 서비스에 곧바로 적용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용자들이 구글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한 뒤 ‘AI 모드’ 탭을 누르기만 하면 손쉽게 제미나이3.0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구글은 그동안 핵심 매출원인 검색광고 부분의 손해를 회피하기 위해 AI 도입에 소극적이었는데, 이번에 구글 검색의 AI 모드를 미국 시장부터 먼저 적용하고 한국 등 다른 국가에는 순차적으로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18일 제미나이3.0을 공개하며 “전례 없는 수준의 깊이와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최첨단 추론 능력을 갖췄다”며 “출시 첫날부터 제미나이 모델을 검색에 적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구글은 제미나이3.0을 인간의 과제를 대신하는 AI 에이전트로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구글 안티그래비티’도 이날 함께 선보였다.
구글에 대한 기대는 제미나이3.0 출시에 따른 일회성 이슈로 그치지 않았다. 이 회사가 광범위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기반으로 이미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투자 여력과 기술 협업 생태계 조성 측면에서 경쟁사를 앞설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번 제미나이 돌풍은 앞으로 더 확고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그동안 오픈AI 중심의 AI 시장이 구글 중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졌다. 구글 클라우드의 아민 바흐다흐 부사장은 ‘AI 인프라’ 보고서를 통해 “구글은 경쟁사를 따돌리기 위해 컴퓨팅 능력 향상에 사활을 걸면서 6개월마다 컴퓨팅 용량을 두 배 늘려 4~5년 뒤에는 1000배까지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엄청난 투자금에도 불구하고 적자에 허덕이며 투자유치를 위해 구걸하고 다니고 있는 오픈AI의 올트먼 CEO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제미나이3.0의 경쟁력은 성능적인 측면 외에도 구글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AI용 반도체인 TPU(Tensor Processing Unit)의 경쟁력이 엔비디아의 GPU를 압도하고 있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제미나이3.0에는 엔비디아의 GPU 대신 구글이 자체 개발한 반도체 칩인 TPU를 탑재하는데 가격은 엔비디아 GPU의 7분의 1 수준인데다가 에너지효율성마저 월등하게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AI 데이터센터의 가장 큰 문제는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소요하는데 구글의 TPU가 이 에너지 부분의 해법까지 내놓은 것이다.
앞으로 AI생태계 변화에 따라 엔비디아 제국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IBM, 알리바바, 메타 등 하이퍼 스케일러들이 데이터센터나 클라우드 인프라에 비싼 GPU 대신에 싸고 효율성 높은 TPU를 사용하게 될 경우 반도체 전체 시장의 변혁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오픈AI와 하이퍼 스케일러-엔비디아GPU-TSMC-SK하이닉스·삼성전자로 이어지는 AI반도체 생태계가 구글이 자체 생산하는 TPU-브로드컴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현재까지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지 않아 하이퍼 스케일러들에게 충분히 공급할 물량은 없지만, 구글의 엄청난 자금력과 기술력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엔비디아가 GPU 독점 체제로 글로벌 AI시장에서 엄청난 이익을 거뒀는데, 정작 GPU를 공급받는 하이퍼 스케일러들은 클라우드 영역에서 이익을 보지 못해 AI거품론이 나와 시장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면서 “구글의 TPU가 가격과 성능 면에서 월등하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 AI 생태계는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서 “현재 엔비디아 향 HBM 반도체 중심으로 상당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대만의 TSMC와 우리나라 SK하이닉스의 이익구조에도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