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 중반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1500원대 돌파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경제가 산업 역량 외의 금융시장 취약성으로 인해 환율 리스크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정부가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금융통화 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한국은행이 남탓만 하고 있어서 머지않은 시점에 금융위기나 외환위기의 가능성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4일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 실질실효환율((Real effective exchange rate) 지수는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89.09를 기록해 9월 말보다 1.44p 하락했다.

실질실효환율은 통상 화폐 교환비율인 명목환율과는 별도로 BIS가 그 나라의 물가와 무역 상황을 감안해 화폐가치를 정하는 쉽게 말해서 국제 결제 시장에서 화폐에 대한 실질적 구매력을 지수로 나타낸 것이다. 이 기준으로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BIS가 발표하는 실질실효환율지수는 64개국 화폐 가운데 지난달 한국의 원화는 일본 70.41, 중국 87.94에 이어 3번째로 저평가됐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프랑스도 96.80이고, 미국 108.73이었다. 가장 고평가된 화폐는 미국과 관세 및 이민자추방 전쟁을 치르고 있는 멕시코로서 130.14였다.

유독 화폐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의 89.09는 올해 3월 말 비상계엄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인 89.29보다도 낮은 수치로서 금융위기 때인 2009년 8월 88.88 이후 16년 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외환위기(IMF사태)인 1998년 11월 86.63보다 2.46p 높은 수준에 불과한 매우 위험한 수준에까지 육박하고 있다.

원화 가치는 최근 들어서 하락폭이 확대되고 있는데, 10월 한 달간 실질실효환율 하락폭은 –1.44p로 뉴질랜드 –1.54p에 이어 64개국 중 두 번째로 컸다.

더 큰 문제는 11월 들어서 원화 가치 하락세는 더 카팔라지고 있는데, 이달 들어서 원화 가치는 24일 오전 현재 2.62% 하락해 일본보다도 1.7배 하락했고, 캐나다 달러, 스위스 프랑에 비해 5배 가량 하락폭이 컸다. 유로에 비해서는 14배 가량 통화가치가 떨어졌다.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0월 실질실효환율지수가 우리보다 저평가돼있는 중국 위안화는 0.24% 상승해 오히려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 11월 말 기준으로는 원화 실질실효환율지수가 64개국 가운데 가장 저평가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와중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원화가치의 하락 원인을 굳이 글로벌 변수에서 찾고 있어 원인분석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자신의 잘못을 외면하려는 것 이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율은 돈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여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인은 돈의 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화량(M2)는 4400조에 이르러 GDP 대비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의 기준이 되는 기축통화인 미국의 달러 양이 GDP의 93% 수준인 것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양이다.

원화가 넘쳐나는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돈에 대한 이용료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금리가 이창용 총재가 취임한 2022년 4월 21일 이후 지금까지 미국보다 낮은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3년 6개월이란 긴 기간 동안 일관되게 낮았던 것은 건국 이래 한 번도 없었다. 돈의 흐름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는데, 달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머물 이유가 기본적으로 없는 상황이 오랜기간 유지되면서 원화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 청책 당국자들은 기업들이 역대급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에 들여오지 않고 원화로 환전을 하지 않아 원화가치를 떨어트린다고 지적하지만, 환율 전망이 어두운데 환차손을 걱정하는 기업들이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는 것은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학개미들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에 더해 원화가치가 자꾸 떨어지게 되니 안전자산인 달러로 바꿔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내년부터 미국에 매년 200억달러씩 현금투자를 해야 하는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에 기업과 개인 모두 지금보다 더 달러를 선호하게 될 것이고, 결국 달러 유입보다 유출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내년 환율은 우려대로 1500원대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상황이 이런데, 그동안 돈을 있는 대로 찍어내고 저금리 정책으로 달러 엑소더스를 조장한 이창용 총재는 환율폭등의 원인으로 일본의 엔화약세정책, 유럽 재정위기, 달러인덱스(강달러 정책)을 꼽고 있다.

이 총재가 거론하는 원인들은 우리나라 원화에만 해당하는 변수들이 아니라 글로벌 화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그런 이유로 유독 우리나라 원화만 가장 많이 떨어지는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원화의 폭락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찾아야 하고, 가장 큰 원인인 통화량을 줄이고 미국과의 금리차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엉뚱한 대답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내년 728조원의 재정적자 정부예산 편성 역시 통화량 증가로 이어져 환율을 불안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는 27일 열리는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재의 2.50%에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 환율의 상황을 고려하면 전격적으로 금리를 올려 원화를 회수하고 달러의 유입 요인을 만들 필요도 있다.

12월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의 금리 결정 향방과도 관련이 있지만, 현재 한미 금리차를 감안하면 미국의 12월 금리 결정과 별도로 통화긴축 정책을 깊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며칠 남겨두고 선임된 사람으로서 보통 다음 대통령이 정해지면 한은 총재 정도의 금융정책 수장은 다음 대통령이 선임하도록 남겨두는데 문 전 대통령이 굳이 강행한 속내가 있는 것 같다”면서 “결과적으로 이 총재가 통화팽창과 저금리 정책을 쓰면서 한국의 유동성이 넘쳐나 환율폭등과 부채증가 등으로 제2 외환위기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