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요크타운하이츠의 IBM 토머스 J 왓슨 연구센터의 양자 컴퓨터 연구소 내부 모습. IBM이 값비싼 GPU 반도체 대신에 값싼 AMD의 일반 반도체를 양자컴퓨터에 사용하게 되면서 상용화의 길을 열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수억 배 빠른 계산 속도를 목표로 하는 꿈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상용화될 경우 인간의 삶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즉 인간이 하는 생각의 속도보다 더 빠른 연산으로 시간을 압축시켜 먼 미래를 가까운 곳으로 이동시켜줄 수 있게 된다.

양자컴퓨터의 엄청난 연산 속도는 2019년 10월 구글이 '시카모어'라는 53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기존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릴 복잡한 계산을 200초 만에 해결했다고 밝히면서 가시화됐다. 이것이 특정 문제에서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증명한 '양자 우위'의 첫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연산속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양자컴퓨터의 가장 큰 문제는 확률적으로는 극히 낮지만 오류의 가능성이다. 양자컴퓨터의 오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디코히런스(Decoherence, 결어긋남) 오류로서 양자상태의 일시 붕괴로 인한 잘못된 계산 결과를 내놓는 것이다. 확률은 약 100만분의 1이지만, 중요한 연산에서 오류가 나올 경우 그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에 상용화의 한계로 지적 받아왔다.

그러던 양자컴퓨터 세계가 2025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급물살의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일단 양자컴퓨터의 가장 취약점으로 대두됐던 오류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잡혔고,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2025년은 1925년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을 발표하면서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운 지 100년이 되는 해로서 유엔이 올해를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정하고 지난 6월 독일 헬골란트에서 국제기념학회를 개최했다.

급기야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양자컴퓨터 기술 관련 연구 과학자 3명이 공동으로 수상하면서 양자기술이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기술임이 공인 받게 됐다.

양자컴퓨터 기술이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그동안 실험실 속에서만 존재했던 양자역학 이론이 이제는 실험실 밖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는, 즉 상용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인정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양자컴퓨터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오류를 잡기 위해 설계된 엄청난 고가의 GPU반도체에서 일반 상용 반도체로도 가능한 길이 열리면서 상용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게 돼 드디어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산업계에서까지 나오게 됐고, 이러한 단계에까지 이르면서 미국과 중국 간에 양자기술 패권전쟁이 시작됐다.

최근 IBM은 양자컴퓨팅 오류 수정(error correction) 알고리즘을 AMD가 만든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 칩에서 실시간으로 구동할 수 있음을 입증해냈다.

IBM 관계자는 "고가의 GPU 클러스터 없이도 규모를 키울 수 있는 방식을 설계하고 실행한 것은 유용한 양자 컴퓨터를 확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제 양자컴퓨터 기술은 치명적인 약점들을 대부분 해결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오류를 해결했고, 기존 -273도에서만 구현되던 환경을 상온에서도 작동이 될 수 있게 됐고, 거기에다 고가의 반도체가 아닌 일반 상용반도체로도 가능하게 돼 사업성 측면에서도 상용화의 가능성을 훨씬 높여놨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미래의 게임체인저가 될 양자기술을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의 패권전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기업 간에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이어 양자컴퓨터 전문 기업인 아이온큐, 리게티컴퓨팅, 디웨이브 퀀텀, 퀀텀컴퓨팅 등 기업들이 기술과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간의 선점 경쟁도 본격화됐다. 미국이 먼저 주먹을 날렸다. 현재의 양자기술 역시 미국이 단연 세계 1위인데, 중국이 그 뒤를 상당부분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가 아이온큐, 리게티컴퓨팅, 디웨이브 퀀텀 등 양자컴퓨터 전문기업들과 혁신기술 기업지원 자금 확보를 위해 정부가 주주로 참여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같은 날 CNBC가 미국 상무부에 사실여부를 확인한 결과, 상무부가 “지분 취득을 협의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면서 “협상 중이라는 보도는 과장됐다”고 보도를 했지만, 미국 시장에 대한 전문가들은 뉘앙스가 잘못 전달된 것이고 실제 미국 행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양자컴퓨터 기업에 자금지원을 하는 대신 양자기술을 전략자산화 해 국외 유출을 막으려는 데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평했다. 자금 지원 방식은 인텔이나 MP머티리얼스의 최대주주가 된 것과 같은 지분취득 방식이거나 아니면 반도체 보조금 같은 지원금 형식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이 희토류에서 중국에게 휘둘리자 이러한 구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래 기술의 핵심인 양자기술의 우위를 점해 세계 산업의 중심세력을 이어가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 역시 양자컴퓨터 기술을 미래 핵심기술로 선정했다. 최근 막을 내린 4중전회에서는 AI, 반도체, 양자컴퓨팅 등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 봉쇄를 극복하겠다는 국정 운영기조를 공식화했다.

양자기술은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서 등으로 나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분석한 기술경쟁력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기술수준은 평균 94.9, 중국이 52.8 로 미국이 단연 우위지만, 양자통신 분야에서는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은 세계 5위 정도인데, 평균 기술력은 2.7 정도로 미국이나 중국에 상대도 되지 못한다.

양자컴 시장규모는 2023년 기준 9조5415억원에서 2030년 101조2414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돼있다.

시장규모의 차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양자기술에서 파생되는 산업의 변화다. 신약개발은 물론이고 AI, 로봇, 국방, 우주개발, 보안, 자동차(자율주행), 금융 알고리즘 등등 모든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오류를 해결하고, 상온에서 구동이 되고, 값싼 반도체를 쓰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 될 경우 세상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로 돌입하게 될 것이다. 양자기술의 차이가 바로 국가 경쟁력의 기준이 될 것이고, 그 기술의 양극화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 경제학자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될 경우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기들에 엄청난 용량과 속도가 붙어서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가 열릴 것이다”면서 “결국 양자시대를 준비한 미국과 중국의 힘은 더욱 막강해지는 반면, 그 외 나라들은 더 큰 격차 속에 기술 종속화 정도가 심해질 것인데, 그 와중에서도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추고 흉내라도 내려면 양자기술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