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양자컴퓨터 산업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 2025년 노벨물리학상에 양자컴퓨터 기술 연구자들이 선정되면서 양자컴퓨터 기술의 상용화가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2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AI(인공지능) 관련 산업이 채 완성되기도 전인 2025년, 스웨덴한림원은 지난 8일 노벨물리학상에 양자컴퓨터 기술 성과를 선정해 양자컴퓨터 기술이 AI시대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게 됐다.
먼 미래의 기술로만 여겨졌던 양자기술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데 의미가 큰데, 현재까지의 양자 기술 대부분을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양자기술의 변방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산업구조의 개편이 시급해 보인다. AI기술에서 뒤지다 보니 양자기술에서는 더 크게 낙오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AI와 양자컴퓨터는 서로 보완관계이기도 하고 적대관계이기도 하다. 양자컴퓨터가 발달하게 되면 AI의 속도와 정보 처리 양은 엄청나게 늘어나 도움이 되는데 반해, 엔비디아 등 AI용 반도체 산업을 순식간에 구식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AI 기술이 노벨화학상을 받으면서 관련 산업 특히 엔비디아의 경쟁력은 산업 전반을 지배하게 됐고, 엔비디아는 값비싼 GPU로 인해 연간 50% 이상의 영업이익 상승률을 기록했다.
비상장 기업인 오픈AI는 2025년 10월 기준 860억~870억 달러(약 122조~124조 원)로서 현재 기준 세계에서 3번째로 가치 있는 비상장 기업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양자컴퓨터 산업 역시 양자컴퓨터 기술의 상업화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면서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물리학상 선정과 관련 “조전도체로 만든 전자회로에 절연막으로 분리된 접합 구조를 설계해 실험을 진행해 전류가 흐르지 않는 상태에서도 회로 전체가 입자 하나처럼 행동하며 장벽을 뚫고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양자 터널링 현상을 확인했다. 회로가 특정한 양의 에너지만 흡수•방출하는 에너지 양자화도 관측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또한 "미래 양자기술의 초석"이라며 "양자 컴퓨터•양자 암호•양자 센서 같은 차세대 기술로 이어질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미국 예일대 드보레 교수는 구글 양자AI(Google Quantum AI)의 수석 과학자이기도 한데, 그는 지난해 ‘윌로우(Willow)’라는 양자칩으로 구동되는 컴퓨터를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윌로우가 세계 최첨단 슈퍼컴퓨터로 10의 25제곱년(年) 걸리는 문제를 5분 만에 해결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공동 수상자인 UC샌타바버라 마티니스 명예교수는 2014년에 구글에 합류해 2020년 구글을 떠날 때까지 ‘양자우위(Quantum Supremacy)’ 달성을 목표로 유용한 양자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양자컴퓨터 기술은 특히 올해 초부터 세계 학계·산업계의 중심에서 관심을 끌었다. 올해 1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양자컴퓨팅이 유용한 수준에 도달하려면 20년은 있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양자컴퓨터 관련 주가를 40~50%가량 폭락시킨 바 있었다. 그러나 한달 뒤인 2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향후 5년 안에 의미 있는 양자컴퓨터가 나올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 양자컴퓨터 개발 시계는 다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양자컴퓨터 기술이 이번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빌게이츠의 분석과 예상이 맞아 들어가게 됐고, 세계 산업을 이끌 게임체인저로서 양자기술이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AI 기술보다도 양자기술은 국가 편중 현상이 더욱 크다는 점이다. AI처럼 미국이 가장 앞서가고 중국이 따라가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국가별 경쟁력 차이가 AI에 비해 훨씬 커서 기술양극화로 인한 기술 종속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한민국의 양자기술에 대한 경쟁력이 지나치게 낮아 미래 산업구조 재편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양자기술은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서 등 3개의 분야로 나눠지는데 현재 양자컴퓨터 관련 시장은 미국과 중국이 거의 양분해서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선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완전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빌게이츠의 예상대로 향후 5년 내에 의미 있는 양자컴퓨터 시장이 열린다면 우리로서는 당장 양자 시장의 변방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현재 양자 관련 미국과 중국의 기업이 내놓은 성과를 보면, 미국은 구글의 ‘윌로우’, IBM의 ‘퀀텀헤론’을 비롯해 엔비디아는 구글과 시뮬레이션을 협력하고 있고, 오리진퀀텀은 양자컴 기반 의학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이 외 아이온큐를 비롯한 순수 양자컴퓨팅 기업들이 관련 기술력을 입증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가 주도해 연구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은 중국과학원과 퀀텀시텍 등이 504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출시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평가한 주요국이 양자기술 수준을 보면,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이라고 할 때 중국은 35, 한국은 2.3으로 나타났다. 양자통신은 미국이 84.8이고 중국이 82.5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9, 양자센서 분야는 미국 100, 중국 40.9, 한국 2.9 등 기술격차가 심각할 정도로 벌어져있다.
양자컴퓨팅 기술의 선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술차별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수많은 분야에서 양자기술이 이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AI 관련 기술에 국가가 나서서 투자를 서두르겠다고 하는 마당에, 이미 글로벌 기술은 양자컴퓨터에서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자칫 첫 단추도 꿰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AI나 양자컴퓨터 기초 기술에 대한 투자규모나 준비가 미흡한 상황이라면 응용 분야에서의 경쟁력 확보라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양자컴퓨터 분야에 대한 투자는 이미 연간 수백조원 수준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연간 1조원도 안되는 투자를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응용분야에 대한 완성도를 높여 경쟁력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편으로는 미래형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통해 게임체인저가 될 만한 우리만의 기술경쟁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