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 지난 25일 신임법관 임명식에서 “헌법은 재판의 독립을 천명하고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원전 485년경 아테네의 탁월한 장군이자 정치가인 아리스티데스는 ‘공정한 사람’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균형 있는 정치를 한 인물이었다. 고대 민주주의의 효시로 불리는 아테네는 당시 클레이스테네스와 테미스토클레스가 권력을 나눠서 지배하고 있었는데, 아리스티데스는 클레이스테네스 쪽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날 도편추방 대상이 돼 아테네를 떠나게 됐다. 도편추방자를 선정하는 도편투표는매년 초에 독제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아테테 시민들이 도자기 조각에 적어 비밀투표를 하는 것인데, 거기에서 6000표 이상을 받으면 추방이 되는데 그가 거기에 뽑힌 것이다.
당시 도편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글을 쓸 줄 모르는 농부가 지나가는 한 시민에게 도자기 조각을 내밀며 “아리스티데스란 이름을 써주세요”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요청을 받은 시민이 “아리스티데스가 당신에게 무슨 피해라도 입혔소?”라고 물었는데 농부는 “아니오 그 사람 잘 알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정의로운 사람으로 부르는 것이 짜증이 난단 말이오”라고 답했다.
그 시민은 농부의 도자기 조각에 아리스티데스란 이름을 적어주고 자리를 떴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다른 시민이 그 농부에게 “지금 그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라면서 “그 사람이 바로 아리스티데스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농부는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대쪽 성향을 가지 농부였을 것이다.
도편추방자는 10년 안에는 아테네에 돌아올 수 없고, 만일 10년 안에 돌아올 경우 사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아리스티데스는 추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침공하자 아테네 요청으로 돌아와 살라미스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아테네를 구했다.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기 스스로가 무식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로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내용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싸여 무조건적으로 투표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인하고 젊은이들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해 독약을 마시는 처형을 당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무지한 사람들이 내용도 모르고 투표에 참여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망치는 것을 두고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라는 의미로 중우정치(衆愚政治)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중은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 이익에 집중하며, 지혜로운 사람보다는 멋있는 광대탈을 쓴 지도자를 선택하려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중우정치는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잠재적 독약”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중우정치가 아테네를 몰락시키고 있다면서 “중우정치는 대중인기에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개인의 능력과 자질은 무시되고, 절제 대신 방종으로 치닫고, 엘리트주의를 부정하는 특징을 가진다”고 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중우정치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민주주의를 다수의 빈민들이 이끄는 ‘빈민정치(貧民政治)’라고 했다. 빈민정치는 올바른 민주제가 시행되지 못하고, 하나 또는 몇몇 집단이 수를 앞세워 정치를 이끌어가는 형태인 중우정치의 단점이 부각되고 심해지면서 생겨난다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는 중우정치 또는 빈민정치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민주주의는 표를 배경으로 권력을 가지는 것인데 표의 구성이 중우이기도 하고 빈민이기도 할 경우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대표성은 훼손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출권력의 우위성을 강조하고, 여당의 대표는 대통령도 탄핵을 당하는데 대법원장 탄핵이 뭐가 문제냐는 발언까지 하고 있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재판권은 중우정치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만일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도 국민투표를 통해 선임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2400여년 전 아테네의 아리스티데스 사례와 같은 도편추방이라는 재판이 지금도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중우정치나 빈민정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다보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민주주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글을 통해 여러 번 강조했지만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기본 틀인데 이 삼권분립의 기본 요건으로 재판권의 독립을 강조한 몽테스키외를 다시 소환하겠다. 그는 재판권은 선출권력의 부패와 권력이 중우정치에 빠지는 것을 막는 유일한 안전장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진보세력은 개혁의 딸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개딸로 대표되는 중우들의, 보수세력은 극우유튜버들과 일부 종교세력으로 대표되는 중우들의 힘을 배경으로 군림하고 있다. 참으로 위험한 구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극우 유튜버들의 논리에 빠져 계엄선포라는 오판을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 여당 역시 정치개혁의 배경에 개딸들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국민 인식이 있다.
개딸들은 현재 대법원장까지 끌어내리려고 하고, 극보수들은 이에 맞서고 있다. 참으로 위험한 풍경이다. 결국 재판권마저 중우정치의 범주에 집어넣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개딸들이나 극우보수의 투표권을 뺏을 수 없다면, 재판권만이라도 진정하게 독립시켜야 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