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대행

“대통령 권한은 불가침인가?” 갑자기 세상에 불가침 권력이 있을 수 있는지 찾아보게 됐다. 김정은이나 푸틴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내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한 불가침은 있을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선출권력이 임명권력 위에 있다”는 식으로 읽혀지는 발언에 대해 삼권분립을 무시한 것이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며칠 전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그러한 논란과 관련 “헌법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한 말을 두고 민주당에서는 대통령에 맞서는 발언이라면서 반발이 심하다.

논란이 증폭되자 문 전 헌재소장 대행은 며칠이 지나서 “그 발언은 대통령을 향한 발언이 아니라 국회에서 논의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데 막연하게 싸우지 말고 헌법 몇 조에 근거해서 주장을 펼치면 논의가 훨씬 생산적일 것이란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명은 그렇게 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판결을 내린 전 헌재소장 대행의 그 발언은 국민들에게 무게감 있게 다가갔다고 할 수 있고, 법치국가에서 법을 수호해온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적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 어디에도 선출권력이란 말과 임명권력이란 말 자체가 없다. 헌법에는 선출직 공직자와 임명직 공직자란 의미의 표현이 있을 뿐이다. 더구나 선출직이 임명직 위에 있다는 말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이 대통령이 말한 임명권력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배경은 헌법 제104조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과 판사는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일 것이다.

헌법 표현상으로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역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대법관 및 판사들 역시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기는 했지만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이니 모양 상으로는 국민이 선출한 국회나 행정부 수반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헌법은 국민 주권의 원칙에 따라 권력을 나누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 각 권력기관의 독립성과 권혁 행사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우위 열위의 개념이 있을 수 없고, 문 전 헌재소장 대행은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일 뿐이다.

문 전 헌재소장 대행은 “논의의 출발점은 헌법이어야 하고, 헌법 몇 조에 근거해서 주장을 펼치면 논의가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면서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 헌법에 따라 만든 기관으로서 당연히 사법부의 판결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사법부의 권한은 헌법에서 주어진 권한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삼권분립이 보장된 법치국가의 국민으로서 상식적인 생각이고 발언이다.

임명권력이 선출권력의 하위에 있다면, 과연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할 자격이 있었을까? 그런 논리라면 사법부는 필요 없고 입법부와 행정부가 각각 사법기관을 거느리고 정치를 하는 이권분립 정치체제를 갖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대통령과 여당이 선출권력 우위론을 내세워 임명권력 사법부를 공격하는 배경엔 분명 정치적 성향을 보여왔던 사법부도 책임이 있다.

대법원장 추천 과정부터 임명 모두 대통령과 여당의 입김이 작용하다 보니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보수성향의 인물이,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진보성형의 인물이 대법원장에 선임되고 그 성향에 맞는 법관인사를 하면서 색깔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색깔이 있다고 해도 헌법을 무시해서 판결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헌법정신이 박근혜 정부에서 박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에서 윤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던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지금 이 대통령과 여당이 사법부를 공격하는 배경에는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고 유보된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1일 이 대통령(당시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의 과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내린 것을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하고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면서 무죄가 확정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이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대선으로 인해 고등법원이 재판을 보류했을 뿐이지 여전히 진행중인 상황이고,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면 고등법원 재판은 다시 재개된다.

대통령과 여당의 선출권력 우위론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한 파기환송 결정이 정치적인 판결이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그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삼권분립이라는 법치국가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

삼권분립 이론을 정립한 몽테스키위는 ‘법의 정신’에서 재판권이 입법권과 집행권에서 분리돼있지 않으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권이 입법권에 결합되어 있다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력은 자의적이 될 것이고, 집행권에 결합되어 있다면 재판관은 압제자의 힘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우리는 민주주의 앞에 항상 ‘자유’란 말을 붙인다. 민주주의 국가의 최대 장점은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수결이 가져다 준 자유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라도 자유는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하고 목숨도 내놓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권력 구도는 이미 행정과 입법이 한 몸이 됐다. 그 힘이 사법권까지 가져갈 경우 몽테스키외 우려대로 재판권력은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압제자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려고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그리고 과거 독재를 몰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독재의 끝은 비극이었음을 안다면 스스로 독재가 될 요소를 배제하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고 자신과 나라를 지키는 길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