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15광복절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민국대통령실

이재명 정권이 출범한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더불어민주당이 매번 정권교체기 때마다 행해진 ‘알박기 인사’를 근절시키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에 공공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국정의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맞서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에도 새 대통령이 새로운 인사들로 채우는 것이 관례인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국정 효율성 확보 측면에서 그럴 필요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보통 공공기관 임명직 공무원 임기는 3년이다 보니, 3년 임기 후 연임을 하든지 새로 선임할 경우 새로운 대통령과 최소 1년이 겹치게 돼있다. 여기다 전 정권이 임기 막판에 알박기를 할 경우 최소 2년 이상을 새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하게 되면서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방송통신위원장인 이진숙 위원장 임기는 내년 8월 24일까지이고, KBS 박장범 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선포하기 직전에 임명돼 2027년 12월까지가 임기다. 현재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한수원이 불평등 계약을 맺었다고 공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전력을 책임지는 한국전력 김동철 사장 임기도 내년 9월까지다.

이들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이 새 정부 들어서면서 임명된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등과 호흡을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이 결과는 고스란히 이들 기업의 비효율성으로 이어지고 국력 소모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정권의 기간과 맞지 않는 공공기관의 임명직 공무원 임기를 대통령과 맞춰 국정의 효율성을 갖고 가겠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생각으로 보인다.

현재 이재명 정부의 구상은 344개의 공공기관장과 감사 등 임명직 공무원 모두의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맞추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는 정치보복의 일환이라면서 공공기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전문성을 떨어트린다고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정권 말기 행태를 볼 때 ‘알박기 인사’로 인한 국력 소모를 이제는 막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탄핵으로 대통령 직을 잃고 현재 형무소에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3계엄사태 이후에만도 53명의 알박기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이 7개로 가장 많았고,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5명씩, 해양수산부 4명을 비롯해 전 부처에 걸쳐 공공기관장 알박기 인사가 있었다.

심지어 탄핵이 결정된 지난 4월 4일 이후에도 22명의 공공기관장을 추가로 임명된 것으로 밝혀져 당시 큰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말에도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가 대거 발생했다. 기관장급 13명, (비)상임이사 및 감사 46명 등 56명으로 알려졌다.

후임인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2022년 3월부터 시작됐는데, 이들 문재인 알박기 인사들의 임기는 2024년까지 28명, 2025년까지 14명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파면될 때까지 불편한 동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현희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었다. 전임 대통령의 알박기 인사의 임기가 상당기간 현 대통령과 겹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임기 말 알박기 인사로 이어지는 구도가 형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미국은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임명직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인사들은 모두 사표를 내고 물러나는 것이 관행으로 돼있다. 새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불편한 관계 속에 국력의 낭비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소신껏 일 할 수 있게 하고 그 책임은 모두 대통령이 지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신껏 일 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주되 그 책임은 다음 대통령 선거 때 표로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즉 대통령에게 핑계거리를 만들어주지 않겠다는 의미도 포함돼있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그런 측면에서 전임자의 사람들 중 대부분을 교체하지만, 꼭 필요한 사람은 계속 쓰기도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우 지난 8월 2일 노동부 노동통계국장인 맥엔타퍼 국장이 발표한 노동 통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전격 해고하고 자신의 측근을 그 자리에 앉힌 바 있다. 미국에서 연방준비위원회 의장과 함께 대통령이 선임은 하지만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자리인 노동통계국장마저 해임통보를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만일 새로 선임된 노동통계국장이 마사지 된 고용통계를 내놔서 그것을 바탕으로 잘못된 통화정책을 편 결과 시장이 망가질 경우 국민들은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때 자신이 임명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바이든 정부를 거쳐 내년 6월이 임기 만기지만, 트럼프는 금리인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체하겠다고 압박을 가하면서도 실제 교체를 단행하지 않고 있다. 파월을 해임한 이후 발생할 금융시장 혼란을 잡을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불편한 동거이지만 현재로서는 파월의 판단이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 기관장의 임기를 맞추는 것은 큰 틀에서 매우 필요한 대책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임명할 수 있는 공기업이나 공공성 있는 포스코, KT, 시중은행 등의 수장들도 모두 이 범주에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철강, 알루미늄에 대해 미국이 품목별 관세를 50% 부과하는 등 한미 무역의 주요 쟁점에 포스코가 있고, 국내 통신 정책의 실무인 KT가 정부와 엇박자를 낼 경우 보이지 않는 국가적 낭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 정부부처 산하의 수많은 협회 등도 마찬가지다.

어느 조직이나 상 줄 사람은 넘쳐나고 벌 줄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책임 져야 할 사람이 빠져나갈 핑계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사람을 충분히 쓸 수 있게 힘을 모아주는 대신에 빠져나갈 구멍도 막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그에 대한 결과를 엄격히 책임 지우는 상벌이 뚜렷한 문화를 정치권에 세울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성과가 나빴다면 대통령을 보좌한 모든 사람들도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