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경제부총리가 17일 국회에서 국회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18일 정부가 발표한 2025년 세제개편안에 배당소득세 감면 방안을 포함시키면서 주주가치 실현이란 측면에서 증권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반면, 오히려 대주주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대표적인 부자감세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려 국가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는 경고도 나온다.
현재는 연간 배당과 이자 등 금융소득의 합계가 2000만원이 넘을 경우 다른 소득과 합쳐서 종합소득세율로 세금을 내도록 돼있어서 최고 45% 세율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돼있다.
이번 소득세법개정안은 2000만원이 넘는 배당소득이라도 배당성향이 40%가 넘은 기업이나 25%가 넘는 기업 중 직전 3년 평균 대비 5% 이상 배당이 늘어난 기업에 대해서는 종합소득세율 적용을 받지 않고 분리해 과세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배당소득 3억원 이하는 20%, 3억원 초과는 35%의 세율을 적용 받아, 종합소득세율 적용 45%에 비해 최소한 10%의 낮은 세율을 적용 받게 된다.
즉 기업들에게 배당성향을 높여서 주주가치를 제고해 주식시장을 활성화시켜달라는 정부와 여당의 주문이다. 배당성향은 배당금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이다.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적용되면 당연히 주식투자도 확대되면서 증권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맞지만, 결국 대주주나 지주회사가 가져가는 이익도 더 늘어나게 된다. 정부에서 권장하니 배당성향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고, 배당에 대해서도 낮은 세금을 물게 되니 한편으로는 대주주 배 불리는 부자감세란 말도 나오는 것이다.
현재 재벌기업들 가운데 고배당 대상 기업을 보면, 삼성그룹이 17개 기업 가운데 8개, 현대차그룹 12개 중 4개, LG그룹 11개 중 3개 롯데그룹 11개 중 2개이고, 한화그룹은 고배당기업이 하나도 없다. 즉 한화그룹은 배당성향이 25%를 넘는 기업이 한 개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따라 당장 내년에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260억원의 세금을 덜 내게 됐고, 대이업 오너들이 받을 배당소득세 감면 규모가 1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명단에 한화그룹 오너들의 이름은 없다.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나 김동관 부회장은 세금감면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현재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 전체 중 배당성향이 25% 이상인 기업은 519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들 519개 기업의 주식을 가진 투자자들은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기존 종합소득세 합산 과세보다 최대 10%의 세금을 절세할 수 있다.
과거 배당성향이 높은 기업들은 대주주 배만 불린다면서 공격의 대상이 됐었다. 대주주들이 회사의 이익을 재투자나 유보를 통해 회사의 건전성을 키우는데 쓰는 데는 소홀하고 대주주들이 배당을 지나치게 가져가면서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었다.
과거 금호산업이 대우건설을 6조 3000억원에 인수한 후 매년 배당성향을 60% 이상으로 정하고 박삼구 회장을 비롯해 금호산업이 대우건설의 이익을 대부분 빼내갔다. 금호산업은 많은 빚을 져서 인수한 만큼 빠른 시간 내에 자금을 회수해 빚을 갚아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대우건설은 결국 껍데기만 남아 다시 산업은행 손에 넘어가는 신세가 됐었다.
빚잔치로 무리하게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산업 역시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결국 워크아웃이 됐다.
이재명 정부가 기업들의 높은 배당성향을 유도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고 하고 관련 법안도 마련하고 있지만, 금호산업의 사례를 보면 자칫 기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높다는 말이다.
한화그룹에 고배당 기업이 없다는 것은 그동안 계열사들이 남긴 이익을 기업 경쟁력을 위해 재투자하거나 유보하면서 대주주가 덜 챙겨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화그룹은 그동안 방위산업과 조선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게 됐다. 지금에 와서는 한미무역협상에서 미국이 취약한 조선산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꼬일 대로 꼬인 한미무역협상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한화가 이익의 상당부분을 투자가 아닌 배당으로 가져갔다면, 김 회장 일가의 곳간은 가득 채웠겠지만 오늘날의 기술경쟁력을 갖추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수 있다.
반도체 리스크에 빠진 삼성은 비교적 배당성향이 높은 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미 대만의 엔비디아에게 추월됐고, 올해 2분기 메모리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에게도 밀렸다. 올해 2분기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매출은 21조8000억원으로 21조2000억원 매출을 올린 삼성전자보다 6000억원 더 많아 시장 1위 자리에 등극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배당보다 투자가 시급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순이익에서 배당비중을 높이고 이재용 회장은 배당성향 높인 공으로 세금을 감면 받는 것이 과연 옳은 지를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을 일정부분 사회가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기업들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고, 고용을 통해 이익을 나누고 있다. 많은 양의 구매를 통해 관련 산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 하나의 스타 기업이 탄생하면 국가가 먹고 살게 돼있다.
20여년만에 대한민국이 대만보다 1인당 GDP에서 밀린다고 한다. 대만의 부가가치 상당부분은 TSMC가 벌어들인 이익이다.
현재 벌어들인 이익을 당장 다 나눠먹으면 당분간 주머니는 넉넉할 수 있겠지만 투자를 못한 기업이 망하게 되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눠먹는 거 좋아하다 망한 나라들이 부지기수다.
황금알 낳는 닭의 배를 갈라 당장 몇 개의 황금알을 나누면 더 이상 황금알을 구경할 수 없게 된다는 이치와 같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