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고용노동부 에리카 노동통계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지난 5월과 6월의 비농업고용 수치를 대폭 하향 조정한 것을 두고 통계조작이라면서 해고통보를 한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말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고용통계를 내놨다는 이유로 노동부 고용통계국장을 전격 해임한 데 대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신뢰를 잃는 행동을 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경제 관련 통계는 세계 어느 통계보다 정확하다는 국제사회의 신뢰가 있었던 만큼 이번 트럼프의 조치가 가져올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고, 향후 통계 조작까지 의심받게 됐다.
미국 고용노동부의 에리카 맥엔타퍼 노동통계국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7월 비농업분야 고용이 7만3000명 늘어났다고 발표하면서, 지난 5월과 6월의 고용현황 수치를 대폭 하향 수정했다.
7월 고용증가 수치도 전망치인 10만명에 크게 미치지 못했지만, 6월 14만7000명을 1만4000명으로, 5월 14만4000명을 1만 9000명으로 각각 줄여서 조정 발표한 것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는 5월과 6월 두 달간 고용이 29만1000명 증가했던 것을 25만 8000명 줄여 3만3000명으로 조정 발표한 것은 자신이 미국을 무역적자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펼치고 있는 관세정책을 폄하시키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것이라면서 해당 국장을 해고한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EU 등 대규모 무역대상국을 상대로 관세협상을 끝내고 승리감에 도취된 시점에 찬물을 끼얹었다면서 격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고용 수치 조정을 접한 트럼프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5~6월고용 증가가 총 3만3000명에 그칠 정도로 고용시장이 나빴다면, 충분히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자신의 정책 실패로 인한 고용악화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자신이 펼친 정책들이 시장을 교란시킨 결과를 낳았고, 경기 침체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을 수 있다.
고용 증가가 두 달간 3만3000명에 그친 것은 바로 트럼프의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첫째는 트럼프는 취임 초기 국가효율부(DOGE)를 만들어 공무원들을 대거 해고했고, 일부 충원에 대해서는 계획만 있었지 실제 충원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충원계획 취소가 한두달 후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이민자 단속을 대대적으로 하면서, 취업 예정인 이민자들의 취업이 무산돼 고용수치에 영향을 미친 것이고, 가장 중요한 세번째는 관세폭탄의 역풍이 걱정되는 기업들이 당초 채용계획을 최종적으로 축소 또는 포기하면서 고용수치를 크게 수정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
이미 미국 소비재 중심의 기업들은 관세 불확실성으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가격인상에 본격 돌입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관세로 인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용에 신경 쓸 여력이 없게 된 것이다.
월마트를 비롯해 생활과 밀접한 소비재 생산기업들 대부분이 이달부터 가격인상을 발표했고, 지속적인 인상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수입 원자재에 의존하는 제조기업들이나 마진이 적은 의류업체들 일부는 사업축소나 폐업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예일대 예산연구실은 관세 인상에 따라 미국 물가가 단기적으로 1.8% 상승하고 이는 가구당 수입이 2400달러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중국 등 아시아에서 수입되는 신발과 의류는 단기적으로 40%, 38% 폭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황이 이런데 트럼프는 시장의 정확한 상황을 알려주는 통계를 두고 조작 운운하며 담당 책임자를 해고시킨 것이다.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 한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여론이 점차 악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에서까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대통령이든 누구든 수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국장을 해고했다면 그들은 철 좀 들어야 할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제 공은 파월 연준 의장에게로 넘어갔다. 그동안 발표된 양호한 고용지표를 기준으로 인플레이션만 2.0%에 근접하면 금리를 내릴 수 있었는데, 악화된 고용수치가 나오고, 한편으로 물가는 관세로 인해 인상분위기가 연출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일면서 금리정책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물가상승과 고용악화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속에서 트럼프는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데,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인상을, 고용을 늘리려면 금리인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1970년대 말 미국은 실업률 10%에 물가는 14%를 웃도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면서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경제상황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연준 의장은 ‘철의 볼커’란 별명이 붙은 폴 폴커였는데, 고용을 포기하고 물가잡기를 선택해 금리를 한꺼번에 4%p 올려 기준금리를 15.5%로 인상했다. 이어서 3년 간 21.5%까지 금리를 끌어올렸다.
그 결과 물가는 1981년 9%, 1982년 4%, 1982년 2.36%으로 잡히면서 경제상황이 정상화 됐다.
그 후 미국은 안정된 물가를 바탕으로 경기부양책을 펴 뉴욕 증권시장은 미국 역사상 가장 강세장이 이어졌고, 1987년 다우지수 2000선을 돌파하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당시 폴 볼커가 고용을 포기하고 고금리를 선택하면서 미국민들이 당시 카터 대통령에게 등을 돌려 카터는 연임에 실패했고, 이어서 당선된 레이건 대통령도 볼커의 고금리로 인해 자신도 연임을 걱정했지만, 끝까지 연준 의장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한마디도 간섭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당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한 배경은 바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터와 레이건의 폴 볼커에 대한 독립성 보장이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때만 되면 파월 의장에게 금리인하를 요구하면서 사임을 압박하고, 심지어 연준 의장처럼 독립성이 보장된 고용통계국장을 해임하는 트럼프의 태도가 미국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 미국의 통계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그것은 글로벌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엉터리 통계를 가지고 미국이 경제정책을 펼 경우의 파장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할 수 있다.
관세폭탄으로 세계의 무역질서를 엉망으로 만든 트럼프가 어쩌면 세계 경제를 끝없는 수렁으로 끌고 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앞선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