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수석이 지난 31일 한미 무역협상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한미 무역협상이 일차 마무리 됐다. 8월(7일 예상)부터는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에 대해 기본적으로 15%의 관세를 물게 됐는데, 우리는 그동안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고 있어서 상호 관세가 없었기 때문에 15% 관세만큼 그대로 수출가격이 올라가게 됐다.
문제는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협상단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고, 여기에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우리 협상단들의 말이 너무 많고, 꼭 전쟁에서 승리한 듯한 태도를 드러내놓고 있어서 상대국인 미국을 자극할 것이 우려된다.
우선 한미 무역협상 직후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 투자를 제공하는데, 이는 미국이 소유·통제하며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투자처를 직접 선정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1000억달러 규모의 LNG 또는 다른 에너지 제품도 구매하기로 했고, 나아가 한국은 그들의 투자 목적으로 거액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문맥으로 보면,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는 3500억달러에 대한 운영 주체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인 것이고, 각 기업별로 투자하는 것은 3500억달러와는 다른 별도의 투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서 트럼프는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 완전히 개방할 것이고 자동차, 트럭, 농업 등을 포함 미국산 제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리 협상단과 대통령실이 밝힌 쌀과 소고기에 대한 추가 개방은 없다는 내용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 농업 분야는 99.7%가 개방돼있다. 10개 내외 종목만 유보돼 있고, 미국 소고기도 제1수입국"이라며 "미국 통상국에서 공감을 많이 해줬다. 그쪽 분야에 대해서는 특별히 문제 되지 않는 딜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분명 트럼프가 SNS에 올린 내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미국 농민들이 오래 전부터 한국으로 쌀과 30개월 이상 된 소고기 수출을 원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양 측의 이견은 앞으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보면, 대한민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품목에 그동안 제로(0%)였던 관세가 15% 생긴 것이고, 특히 철강 관세는 0%에서 50%로 늘어났다.
특히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의 51.4%인 143만대(2024년 기준)가 미국으로 수출되는데, 없던 관세 15%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수출 최대 경쟁국인 일본은 그동안 2.5%의 관세를 물다가 이번에 15%가 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미국시장에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더구나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미국 내 생산량이 더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 자동차들보다 최소 15% 더 비싼 가격으로 싸우는 형편이 됐다.
도요타는 미국 판매량의 55%, 혼다는 72%를 미국 현지생산하고 있다. 이들 자동차들은 관세가 없고 일본에서 만들어져 수출하는 자동차에 대해서만 기존 2.5%에서 12.5% 올라간 15% 관세가 부과된다.
우리나라 대표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기아차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8.13%였다.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에 대해 15% 관세가 부과되면 판매가를 최소 10% 이상 올려야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이 된다는 계산이다. 현재 가격을 유지할 경우 미국 영업에서 단순 계산으로 7%가량 손해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 대미 수출품 중 비중이 가장 큰 자동차 산업이 이런 지경에 빠졌는데, 승리감에 빠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고 국민을 향한 지나친 쇼잉 느낌마저 든다.
더 큰 문제는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큰 골격만 정해지고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한 협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대통령실이 마치 성공적인 협상결과를 얻어낸 듯한 자화자찬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우리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두 주 앞에 있을 양국 정상회담에서 대형 폭탄이 터지지 않을지도 걱정이다. 우리 정부와 대통령실이 마치 쌀과 소고기 수입을 막은 것을 큰 전리품을 가져온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변덕이 죽 끓듯 하는 트럼프가 느닷없이 농축산물 시장 전면 개방을 들고나오면서, 쌀과 소고기를 지키려면 방위비도 올리고, 디지털규제도 다 풀고, 중국과도 거리를 두고 등등을 요구하면 어쩔 것인지 우려가 될 수밖에 없다.
승리감에 도취된 한국에게 약 2주 후에 정해질 반도체와 바이오에 대해 트럼프가 그동안 엄포를 늘어놓은 대로 50%~200%의 관세를 부과하면 또 어쩔 것인가.
그동안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마친 나라들 중에 이렇게 승리감에 도취된 나라를 보지 못했고, 그 과정이 언론을 통해 화려하게 노출된 것도 보지 못했다. 일본의 예가 그렇고, EU도 그랬다.
당초 미국의 주요 타깃인 중국은 협상과 관련해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고 있다. 전략이 노출돼서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되기 하루 전인 지난 7월 29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이 90일 간 더 유예한다는 보도만 나왔을 뿐 어떤 부분에서 이견이 있는지, 어느 부분은 의견을 좁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현재 미국은 중국에 끌려가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시장에서는 ‘중국 승’을 점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협상 막전막후라면서 트럼프 면담 전에 러트닉 상무장관으로부터 코치까지 받고 리허설을 했다는 것까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트럼프가 ‘respect(존경)’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하라는 코치를 받고 그대로 하려고 리허설까지 했다는 보도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처신이다. 그런 내용이 언론을 통해 트럼프와 미국 정부에 전달돼서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 과연 하나라도 있을까 싶다.
실력이 부족해 포커페이스까지는 못하더라도 신중하고, 전략적이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정부가 보이는 태도는 애써 국민들에게 화장한 얼굴을 보이는데 전념하는 모습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기업들 실적으로 나타나고, 트럼프 입맛에 맞는 투자계획서를 받아들 텐데 그때는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미국 트럼프 정부와 앞으로도 약 4년 간 함께 할 우리 정부와 대통령실은 지금부터라도 한미 무역협상과 관련해서 입을 다물어줄 필요가 있다.
협상의 달인인 트럼프를 상대로 속내를 드러내고, 섣불리 판단해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느 누가 봐도 현재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자신들의 힘을 앞세운 비정상적이고 일방적인 폭력 행사이기 때문에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게임이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졌다고 해서 크게 욕먹을 일도 아니다. 다만 속내를 드러내서 10대 0으로 질 것을 100대 0으로 지는 어처구니 없는 짓은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