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장교동 사옥. 올 상반기 퇴직공직자 13명이 한화그룹으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벌그룹 중 가장 많은 퇴직공직자를 영입한 것이다. 사진=한화
공직자들의 민간기업행에 따른 전관예우 폐단과 불법 및 편법 관행을 막기 위해 심사를 하는 공직자윤리법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대한 인허가 및 감독이나 발주처 입장에 있는 기관의 공직자가 민간기업으로 갈 경우 비리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엄격하게 관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들 공직자들이 민간기업으로 이동해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사례가 많아, 많은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퇴직 공직자가 가장 많이 이동한 민간기업은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을 제외한 재벌기업 가운데 한화가 13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는 올해에만 13명의 퇴직공직자가 이동했는데, 주로 방위산업 관련 국방부 소속 공무원이 많았다. 다음으로는 삼성이 10명, 쿠팡 7명, Sk 5명, 현대차 4명, LG 1명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화는 방위산업 관련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한화시스템등 3개사와 한화생명에 퇴직 공무원이 집중적으로 영입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4명, 한화시스템에 4명, 한화오션에 3명 한화생명에 2명 등 총 13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간 공직자는 국방부 소속이 3명에 금융위원회 공무원 출신이 1명이고, 한화시스템은 국방부 3명, 국가정보원(국정원) 1명이다. 한화오션은 외교부, 생산성본부, 국방부 각 1명씩이었다. 여기에 한화생명은 금융위원회(금융위) 공무원 출신 2명이 이동했다.
한화가 영입한 공직자 수를 지난해로 확대해보면 인원은 더 크게 늘어난다. 지난해에만 18명의 공직자가 한화에 영입됐다. 역시 올해와 마찬가지로 방위산업 3사로의 이동이 대부분이었다. 이 중에는 한화손보로 이동한 경찰청 공무원 3명이 들어있고, 국정원 고위 간부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사장으로, 국무조정실 고위공무원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비상근고문으로 이동한 것이 눈에 띈다.
기업의 규모에 비해 7명이라는 많은 인원의 퇴직공무원이 영입된 쿠팡의 경우는 검찰청, 경찰청,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고용노동부 등 감사 및 감시기관과,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상자원부 등 사업 인허가 관련 부처 출신들이 주로 영입됐다.
쿠팡 역시 지난해에도 4명의 퇴직공직자들이 영입됐는데, 경찰청과 대통령비서실 출신들이 들어갔다.
사업 관련 인허가와 정부공사 발주와 관련이 깊은 건설회사로도 적지 않은 인원이 이동했다. 건설사로 이동한 퇴직공무원은 올해 상반기에만 22명이었는데, 특히 설계와 감리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링사들이 많았다.
5월 검찰청 5급 공무원이 DL이앤씨 컴플라이언스 부서 담당임원으로, 6월 경찰청 경감이 롯데건설 재건축사업장 관리담당으로,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임원 2명이 2월과 3월에 HJ중공업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이동한 것 외 대부분은 중소건설사나 엔지니어링 회사로의 이동이었는데 주로 공사 발주기관에서 이동했다.
도화엔지니어링은 한국수력원자력 시니어전문직을 전무로, 무림하우징은 LH 직원 3명을 아파트관리소장으로, 희림종합건축은 국방부 육군대령 2명을 수석으로, 경동엔지니어링은 국방부 대령을 전무로, ㈜삼안은 한국전력기술 2급 공무원을 부사장으로, 도원엔지니어링은 대전시 2급공무원을 전문위원으로, 선진엔지니어링은 국가철도공단 2급 직원을 이사로, 정림개발은 경찰청 경감은 보안과장으로 각각 영입했다.
금융회사들 역시 감시감독 기관 공무원 영입에 열을 올렸다. 총 19명의 공직자가 금융기업으로 이동했다. 국민은행이 국세청 직원을 팀장으로, KB금융지주는 국정원 3급을 경영연구소부소장으로, 모아저축은행은 국세청 고위급 공무원 2명을 사회이사로, 키움증권은 금감원 2급을 전무로, 경남은행은 금감원 2급을 상무로, 부산은행은 금감원 2급을 상무로, 삼성생명은 국무조정실 정무직 2명을 사외이사로, 아이비케이캐피탈은 국무조정실 고위공무원을 부사장으로, 티머니는 국무조정실 고위공무원을 사외이사로, 신한금융지주는 금감원 2급을 팀장으로, 롯데손해보험은 관세청 정무직을 사외이사로, 신한라이프생명은 금감원 4급을 차장으로 각각 영입했다. 특히 농협금융지주는 금감원 임원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한 데 이어 검찰청 검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러한 퇴직 공직자들의 민간기업 이동은 업무연관성만 없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 업무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특히 이동 전에 관련 부서 경력을 세탁하기 위해 관련 없는 부서에서 경력을 쌓은 다음에 옮기는 꼼수이동이 대부분이어서 인사혁신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가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심사 결과 대부분 승인이나 이동 가능 판정을 받고, 불승인이나 제한 판정은 일년에 1~2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교체기에 민간기업으로 이동하는 퇴직공무원이 대거 발생하는데.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에 따라 500여 명의 공직자가 민간기업행을 택했다. 올해도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간기업으로 이동하는 공직자가 대거 나올 것으로 보여, 심사과정을 엄격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고객의 돈을 운영하는 금융기관으로 해당 감독기관 임직원이 이동하는 것은 금융기관 건전성을 떨어트리는 심각한 원인이 되고 있는 만큼, 철저한 단속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인사혁신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구성원이 모두 공무원이라는 것도 개선 대상이다. 미국이나 선진국의 경우 전관예우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심사기관 구성원을 모두 민간 전문가들로 꾸려 심사의 공정성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에서는 ‘관피아’란 말이 있다. 후배가 선배를 챙기는 대를 물려 전관예우를 받는 문화를 일컷는 말이다. 전관예우를 하지 않은 후배는 나중에 전관예우에서 제외시키기도 한다. 그들 전직 공무원들이 기업의 방패막이를 하면서 사회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악의 고리가 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공무원의 인허가 권한이 너무 강해 공무원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면서 “특히 금융기관의 경우 금감원이나 금융위의 권력이 막강해 말 한마디에 감사가 진행되고 그러면 업무가 마비되기 때문에 대관 기능을 키워 별도의 피해갈 방도를 마련해놓아야 하는 구조다”고 말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