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이후 세계적인 불경기를 극복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두 경제 엔진은 미국과 중국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적 규칙이 지배한다고 여겨지는 세계에서 이 두 국가는 오히려 케인즈주의적 국가처럼 행동했다. 미국은 군사주의와 소비주의를 바탕으로 막대한 재정 적자에 의존했고, 중국은 부실한 은행 대출을 통해 대규모 인프라 및 고정자본 투자를 위한 부채 재정을 운용했다./186
덩샤오핑은 국유기업들간의 경쟁을 자극함으로써 혁신과 성장을 점화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경제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정치 체제는 여전히 중앙 집중적 구조로 유지하고자 했고, 시장 가격의 도입은 단지 경제 운영 방식의 변화일 뿐, 지방에 실질적인 정치·경제 권한을 주는 조치로까지 확장되지는 않았다.
미국 정부는 무모한 경제 정책들을 시행함으로써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데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오히려 사회적 동요를 억누르고, 세계적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군사력과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력은 강화하면서도, 시민들의 복지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187
그렇다면 신자유주의화는 자본축적을 고양하는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 실제로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1960년대 3.5%정도였으며, 심지어 어려웠던 1970년대도 단지 2.4%로 떨어진 정도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80년대 및 1990년대의 1.4%및 1.1%라는 성장률은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인 성장을 촉진하는데 전반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188-189
신자유주의적 '충격요법'을 받았던 구소련과 중부 유럽의 여러국가들은 극단적인 손실이 있었다. 1990년대에 러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 3.5%씩 하락했다. 국민의 상당수가 빈곤에 시달렸고, 그 결과 남성의 평균수명은 5년이나 줄었다. 다만, IMF의 조언을 비웃었던 폴란드만 현저한 개선을 보였다.
신자유주의화는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1980년대의 '잃어버린 10년'동안의) 불경기 또는 (아르헨티나에서처럼) 경제적 붕괴가 뒤따랐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단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그리고 최근 인도에서 신자유주의화가 약간의 긍정적인 성장 기록을 보였지만, 이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아니라 발전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189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리적 불균등 발전의 변동이 가속화되고,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들의 손실을 전제로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예로 1980년대 일본, 아시아의 호랑이, 서독, 1990년대는 미국과 영국의 사례로 일부 성공했다. 둘째, 이론이라기 보다 실제 과정으로서 신자유주의화는 상위계급들의 입장에서보면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지배 엘리트들에게 계급 권력을 회복시키거나 중국, 인도, 러시아에서처럼 자본가계급 형성을 위한 조건을 창출했다/191
지배계급에 의해 통제된 대중매체들은 국가들이 경쟁적이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실패했고,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전파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는 기업가적 모험과 혁신을 고취시켜 경쟁력을 부여하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했다./191
하위 계급들이 처한 빈곤은 개인적·문화적 이유들로 인해 그들 스스로가 교육을 받거나 청교도적 노동 윤리를 고취하고, 노동의 유연성에 순응하는 등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경쟁력 부족 또는 개인적·문화적·정치적 실패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주장은 다윈적 신자유주의 세계관으로 적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92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금융산업은 제너럴모터스와 같이 산업자본과 결합되어 더 커지고 있었고, 금융산업의 보수는 급격히 오르고 있었다. 투기적 이득만이 부단히 추구되었고, 각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을 이용하여 투기적 이득을 실현했다.
이른바 금융산업을 선도하는 세계도시들은 부와 특권의 장엄한 섬이 되었으며, 금융기관들은 고층빌딩과 사무공간을 마련하였고, 투기적 도시 부동산시장은 자본축적의 주요한 엔진이 되었다. 맨해튼, 도쿄, 런던, 파리, 홍콩, 도쿄, 상하이의 빠르게 변화하는 스카이라인은 경이로울 지경이다/192
이와 더불어 정보기술(IT) 부문에 엄청난 폭발이 있었다. 1970년경 투자는 25%였지만, 2000년에는 총투자의 45%를 차지 했으며, 생산 및 물리적 인프라에의 투자는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193
IT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특혜를 받은 기술이다. 이는 생산 활동보다는 투기 활동이나 단기 시장에서의 계약 건수를 극대화하는 데 더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영역은 영화, 비디오, 게임, 음악, 광고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산업이었으며, 이들은 IT를 혁신과 신제품 시장화의 기반으로 삼았다. 이러한 신흥 산업들에 대한 과도한 선전은 오히려 기본적인 물리적·사회적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켰다. 동시에 '세계화' 역시 과장되게 홍보되었고, 이는 상이한 지역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하나의 통합된 경제 체제로 구축되고 있다는 가정 위에 이루어졌다. /194
그러나 신자유주의화의 본질적인 성과는 부와 소득의 창출보다는 불평등한 재분배에 있었다. 첫째, 공공자원의 사유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토지의 상품화와 소농민의 추방, 공유지의 민영화, 노동력의 완전한 상품화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식민적·신식민적 구조가 재생산되며 자원과 부의 독점이 심화되었다. 토지 강탈, 조세의 화폐화, 고리대금, 심지어 인신매매까지 포함된 '탈취에 의한 축적'이 일반화된 것이다.
또한 사회적 안전망의 후퇴도 두드러져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을 통한 지대 추출이 활성화된 반면, 국가연금, 유급휴가, 공교육, 공공의료 등 사회복지 제도는 약화되거나 사라졌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부와 권력을 소수에게 집중시키는 재분배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194-195
신자유주의화에 따른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은 다음과 같은 주요 양상들을 포함한다.
1. 민영화(사유재산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공적 자산의 상품화와 민영화를 통해 새로운 자본축적 영역을 개척하는 데 있다. 기존에 공공 영역으로 남아있던 다양한 분야인 공공서비스(상수도, 통신, 교통), 사회복지(임대주택, 교육, 의료, 연금), 공공기관, 심지어 전쟁 수행(이라크 전쟁 시 민간 용병기업 활용)에 이르기까지 사유화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는 자본주의 국가뿐 아니라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부분적으로 추진되었다.
더 나아가 자연의 대규모 상품화는 글로벌 차원의 환경 위기를 가속화했다. 토지·물·공기 등 공유 자원의 급격한 고갈, 친환경 농업의 쇠퇴 대신 자본집약적 농업의 확산은 자연을 시장 논리에 종속시킨 결과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공공성'을 해체하며 이윤 창출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해 왔다.
2. 금융화(서민 → 자본가계급)
1980년대 이후 확산된 금융화의 흐름은 투기적이고 약탈적인 양상으로 특징지어진다. 금융 규제의 완화는 금융체계를 투기, 강탈, 사기, 도둑질을 통한 부의 재분배 수단으로 변화시켰다. 주식 상장, 폰지형 사기(Ponzi schemes), 인플레이션을 통한 부의 구조조정, 흡수합병 및 인수에 의한 자산 박탈, 과도한 부채 부담, 기업 차원의 사기는 물론, 신용과 주식 조작을 통한 자산 탈취(예: 연기금의 투매와 주식 및 기업 붕괴로 인한 자산 강제 처분) 등이 자본주의 금융체계의 핵심적인 양상이 되었다. 또한, 주식매입선택권(stock option) 제도를 통해 자본 관리자에게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자본 소유자와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고, 소수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시장 조작을 유도했다. 이는 결국 다수의 희생을 전제로 한 소수의 이익 추구로 이어졌다.
3. 위기를 이용한 국가간 부의 이동(개도국 → 선진국)
세계 무대에서 위기의 창출, 관리, 조작은 가난한 나라의 자원을 부유한 나라로 신중하게 이전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1960년대에는 드물었던 개별 국가들의 부채 위기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들어서는 매우 빈번해졌다. 개발도상국들 가운데 이러한 위기를 겪지 않은 국가는 거의 없으며,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위기가 만성화되었다.
와드와 베네로소(R. Wade & F. Veneroso)는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선진 자본국가의 금융자본에 소유권과 권력이 이전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서구와 일본의 기업들이 이 위기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극심한 통화 평가절하, IMF가 강제한 금융 자유화, 그리고 IMF 주도의 금융 구조조정은 지난 5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외국 자본으로 이전된 자산 규모를 능가했다. 이는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나 1994년 이후 멕시코에서 미국 금융자본으로 이전된 자산보다도 훨씬 컸다./198
4. 국가내 부의 재분배(하위계급 → 상위계급)
신자유주의화된 국가는, 착근된 자유주의 시기에 이루어졌던 상위 계급에서 하위 계급으로의 부의 흐름을 역전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 국가는 민영화 전략을 추진하고, 사회복지와 임금 지출을 축소했다. 민영화가 단기적으로 하위 계층에 유리하게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사회주택(임대주택)의 민영화는 런던 대도시권에서 투기를 유발하여 저소득층이 도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결과를 낳았다.
* 착근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는 1945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유지된 체제로, 국제적으로는 자유무역과 시장 개방을 지향하면서도, 국내적으로는 정부의 규제, 사회복지 정책, 노동 보호 등 국가 개입을 병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국제적 자유주의와 국내적 복지국가 모델이 결합된 형태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기업의 법인세율이 점차 인하되었으며, 기업에 대한 각종 보조금은 공적 자금의 대규모 재배분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방식은 모기지 이자 감면이 고소득층 주택 소유자와 건설 산업에 대한 간접 보조금으로 기능하는 구조와 매우 유사했다./200
5. 모든 것의 상품화
시장 신호가 모든 배분적 결정을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모든 것이 원칙적으로 상품으로 취급될 수 있음을 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203
신자유주의화는 착근된 자유주의가 허용하고 때로 육성했던 국내에서의 사회복지와 노동조합에 대하여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여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실현됐다. 지리적 이동성을 가진 자본은 지리적 이동성이 제한된 세계의 노동력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의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보고는 매우 많다. 여성과 때로 어린이들은 대부분 저급하고(degrading), 쇠약케하며(debilitating), 위험한(dangerous)일들을 해야만 했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낳는 사회적 결과는 극단적이다. 탈취에 의한 축적은 여성의 가정 및 사회적 지위를 저하시키고, 남성 지배적 사회를 더욱더 강화시킨다./205-206
6. 환경파괴
환경에 대한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적 국가 정책은 지리적으로 불균등했고 시기적으로 불안정했다(미국에서는 레이건과 부시행정부가 특히 퇴행적이었다). 신자유주의화의 환경적 결과에 관한 전반적인 대차대조표는 거의 확실히 부정적이다. 논란은 있지만 환경적 퇴락의 비용을 포함한 인간 복리 지표를 만들려던 진지한 노력은 1970년대 이후 부정적 경향이 가속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열대우림의 지속적인 파괴가 기후변화 및 생물다양성 상실과 심각하게 관련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화 시대는 최근의 지구 역사상 생물종이 가장 빠른 대량 소멸의 시대이기도 하다. 만약 전세계 환경, 특히 기후의 변화로 지구에서 인간이 살기가 부적합해진다면, 신자유주의적 윤리와 신자유주의화를 추가적으로 포용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드러날 것이다/209
지난10년 사이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 자전거를 대체해 놀랍게 증가한 자동차 소유 및 이용은 세계에서 대기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은 20개의 도시 중 중국의 도시가 16개나 포함되도록 했다. 이는 분명 지구 온난화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210
IMF가 요구한 긴축과 이로 인한 실업이 발생하면, 문제는 더욱 악화되어 유휴국민들은 토지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마구잡이로 산림을 개간하게 된다/212
※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의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David Harvey, 2017, 한울)'를 참고로 작성했습니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