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세라 창업주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정치판이든 기업이든 상당수 패배와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이 측근의 잘못이다. 혈연이나 지연을 포함해 패거리문화가 형성되면서 조직이 경쟁력을 잃게 되고, 치열한 생존 싸움에서 밀려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측근들의 가장 큰 위협요소는 ‘우리’만을 강조하다 보니 배타적인 태도로 인해 실력 있는 인재를 멀리해 조직 전체를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것이다.

예술가들을 보면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 참 많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고집을 넘어 아집(我執)의 경지를 보여주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렇지만 진짜 대가(大家)의 경지에 이르면 조금 달라진다.

과거 A 화백과 B 화백이 있었는데, 서로 계파가 다르다 보니 매번 앙숙의 모습으로 부딪혔는데 사석에서 상대 화백 얘기가 나오면 욕설을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미술계에서는 유명했다.

어느 해 그림 전람회가 열려 A 화백이 심사위원장이 됐는데 마지막 후보 2점에 B 화백 그림이 올라왔다. 많은 사람들은 B 화백 그림이 떨어질 것을 예상했지만, 최종적으로 A 화백은 B 화백의 그림을 최종 대상으로 선정했다.

선정 후 A 화백은 “역시 실력은 인정해줘야 해”라고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상을 받은 B 화백도 대단하지만, 그 실력을 알아보고 평소의 감정보다 실력을 우선으로 인정해준 A 화백의 진정한 실력에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진정한 실력은 내 편에게만 후한 점수를 주고 상대편은 무조건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실력 그 자체는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나모리가즈오(1932~2022)는 일본 교세라의 창업주이자 일본항공의 회장을 지냈다. 육종학자인 우장춘 선생의 넷째 딸 아사코가 그의 부인으로 한국인의 사위로 한국인들도 좋아하는 경영자다.

그는 2010년 일본항공이 파산하자 일본 정부의 간청을 받았다. 제발 일본항공을 살려달라고. 그는 70세가 넘은 나이에 단 3명의 측근만 데리고 투입되어 2년8개월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일본항공의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하면서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 때 그는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기업의 생존은 대선에 해당하므로 '인력 구조조정'과 같은 비정한 행동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직원들이 불쌍하다고 그대로 데리고 가는 소선(小善)을 행한다면 결국 기업은 파산해 모든 직원이 직장을 잃는 사태 즉 대악(大惡)의 결말로 간다는 것이다.

정치의 실종, 기업의 추락 등을 보면 한결같이 소선(小善)에 연연하는 행위가 엿보인다. 즉 실력과 성품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지 않고, 혈연 지연 학연에 연연하다 보니 무능한 사람들만 판을 치게 되고 결국 망가진다는 것이다. 특히 혈연 지연 학연은 공정의 가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결과적으로 부패를 조장하면서 민주주의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삼성그룹이 위기를 맞고 있는 원인에 대해 다양한 원인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미래전략실 출신들이 인의장막을 친 관료주의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 올해 1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 미국 관세폭탄을 피하기 위한 대안으로 생산공장을 다변화하겠다고 하면서, 트럼프로 하여금 삼성전자가 미국에 대규모 공장건설 투자를 할 것이라고 자랑하는 빌미를 준 박순철 CFO도 미래전략실 출신이다.

그 외 주요 경영진에 미래전략실 출신들이 포진돼있다. 자칫 삼성이 그들만의 관료주의에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런저런 빅텐트가 거론되면서 이사람 저사람 모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연 그 사람이 왜 텐트에 들어가야 하는 지 명분이 없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의 역할이 뭔지 헷갈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검증도 없고 생각도 없는 판단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빅텐트가 아닌 부상병들을 수용하는 백텐트라는 느낌까지 받는다.

허황되게 그려놓은 그림 앞에서 이념도 명분도 실력과 인품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표 몇 개만 생각하는 모습이다. 사람을 구별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눈이 실력인데, 실력 있는 사람들 찾기가 쉽지않다.

혈연 지연 학연이 없고 직장연이 없더라도 실력 있는 사람은 인정해주고 등용해주는 'A 화백의 기상과 용기'가 정말 필요한 시대다.

실력있는 사람, 공적을 세운 사람을 우대하는 올바른 신상필벌이야말로 공정한 사회, 공정한 나라의 기반이다. 대체로 선진국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

코라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