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면서 3년 이내에 헌법개정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덕수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서 2028년에 총선과 대선을 같이 치르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현 상황에서 개헌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현실성이 없고, 그가 과연 어떤 동기에서 대선과 총선을 같이 하자고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선과 총선을 같이 치르자는 주장 그 자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1948년 제헌헌법은 총선으로 구성된 국회가 제정했다. 공화국을 새로 여는 당연한 과정이었고, 그래서 헌법 전문에 국회의장 이승만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런 탓인지 국회의 권한이 막강했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가 선출하고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를 임명하도록 했으며, 헌법을 선포한 이승만 국회의장이 대통령이 됐다. 4.19 후에는 기존의 국회가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자진해산한 후 양원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을 하고 하원인 민의원이 내각을 구성했다.

5.16 후 새로 생긴 대통령제 헌법(3공 헌법)은 독특한 과정을 거쳤다. 5.16 후 국회는 해산됐고 입법권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행사했다. 최고회의는 헌법안을 만들어서 국민투표를 통해 새 헌법으로 확정시켰다. 그 때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던 서울법대 황산덕 교수가 ‘국민투표는 만능이 아니다’라는 논설을 동아일보에 게재해서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이 동아일보 필화(筆禍) 사건인데, 황산덕은 서울대 교수에서 해직되고 얼마 후 성균관대학 교수가 됐다. 황산덕 교수가 지적했던 ‘국민투표 만능’은 유신헌법과 5공헌법(전두환 헌법) 제정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 황산덕은 유신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내더니 그가 장관을 할 때 인혁당 피고인들이 사형을 당했다.)

국민투표를 거쳐 1962년 12월에 선포된 헌법에 의해 1963년 가을에 대선과 총선이 치러졌다. 대선은 10월 15일에, 그리고 총선은 11월 26일에 치러졌는데, 대선에서 박정희는 윤보선을 15만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최고회의 의장으로 박정희는 농민들과 모내기를 같이 하고 해군이 홍보단을 조직해서 낙도(落島)에 생필품과 군의관을 보낸 덕분에 박정희는 농어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명문귀족 윤(尹)씨 가문’의 윤보선 후보를 누를 수 있었다. 1963년 대선은 선거 자체는 부정이 없었다고 평가되지만 일단 대통령 당선자가 정해지고 치러지는 총선은 당연히 관권(官權)선거였다. 3공 헌법에서 대통령과 국회는 임기가 6월 30일에 같이 끝나게 되어 있었지만 이처럼 대선을 치른 후 한달 반 후에 총선을 치르게 되어 있어서 관권선거를 조장한 측면이 있었다. 1967년 6.8 총선에서 그 같은 관권선거 논란이 크게 일었다. 하지만 1971년 대선과 총선은 김대중 후보와 신민당의 선전(善戰)으로 인해 더 이상 이런 선거로도 정권을 이어갈 수 없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1972년 ‘10월 유신’이었고, 선거다운 선거가 없었던 15년 세월이 시작됐다.

1987년 민주화 시위에 힘입어 드디어 직선제 개헌을 하게 됐다. 대통령은 직선 5년 단임이고 국회의원 임기는 4년으로 합의를 보았다. 당시 국회는 개헌안을 통과시켰고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됐다. 그해 12월 대선에선 노태우가 당선이 됐다. 이듬해 총선에서 민정당은 1당 지위를 확보했으나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다르기 때문에 대선과 총선이 1987년처럼 연이어 이루어지는 데는 20년이 걸렸다. 2007년 12월 대선에선 이명박이 당선됐고, 이듬해인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압승을 거두었다. 총선을 넉 달 앞두고 열린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출마 지망생들은 이명박 후보 승리를 위해 총력을 경주했다. 공천권을 이명박 대통령이 행사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치열한 ‘충성 경쟁’이 발생한 것이다.

2012년은 4월에 총선이 있었고 12월에 대선이 있었다. 4월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그해 12월 대선에서 2007년 12월 대선처럼 치열한 ‘충성 경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열의는 별로였다. 박근혜와 윤석열이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서 대선 사이클은 혼란스럽게 되어 버렸다.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는 대통령이 유고(有故)가 생기는 경우 승계자가 잔여임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대통령 임기를 단임으로 하던 연임으로 하던 간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4년으로 맞출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대통령 유고시에 후임자는 잔여임기를 채우도록 해야 한다. 또한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에 함께 치르도록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4년으로 같이 하더라도 대선을 앞서 하고 1~2 개월 후에 총선을 하면 국회의원들과 국회의원 지망자들이 대선 후보한테 충성경쟁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 치러야만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선거에 앞장서는 괴상한 현상을 타파할 수 있다. 대선과 총선을 하루에 치르면 대선은 대통령 후보와 그의 선거 참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국회의원들이 자기 선거에 바빠서 대선에 직접 나서는 꼴사나운 모습은 사라지지 않겠나 한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