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이 지난 1995년 국제 행사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적장이었던 미국의 전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와 보응우옌잡.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병력의 양과 질, 무기 수준 등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자의 승리를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손자는 승리의 조건을 한마디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로 표현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승리라고도 했고, 이것 저것 안되면 도망이라도 가서 훗날을 도모하라고도 했다.
얼핏 들으면 쉬운 얘기 같지만 참으로 어려운 말들이다. 나 자신을 알기도 어려운데 남을 알아야 하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어려운 과제다. 거기다 도망가는 것 역시 얼마나 어려운가. 도망가는 것이야말로 공격하는 것 못지않은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잘 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역사에 늘 등장하는 전쟁영웅에 대해 우리는 현재 베트남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호치민 장군을 거론하지만 베트남 역사에 가장 존경 받는 승리의 신은 보응우옌잡 장군이다.
호치민과 함께 전쟁터를 누빈 그는 당초 군인 출신이 아닌, 교사와 언론인 경력의 소유자였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인도차이나공산당에 가입한 연유로 프랑스 정부에 체포된 후 옥살이 하다가 중국으로 도피했는데, 프랑스군이 연좌제를 적용 그의 아내와 처제 등 가족 모두를 사형시키면서 프랑스와 철천지원수가 되고, 서방 세계에 대한 적개심으로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붉은 나폴레옹’이란 별명의 그는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에서 프랑스를 패퇴시켰고, 1970년대 초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에게 패배의 불명예를 안겼다. 미국 전쟁 역사상 유일한 패배로 기록된 전쟁이다. 미국은 당시 베트남에 50만명 이상의 병력을 주둔시킬 정도로 미국 군력을 모두 쏟았다.
전쟁의 신 보응우옌잡의 백전백승 비결은 3불(三不)전략이었다.
3불전략은 세가지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첫째 적들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 ‘회피전략’, 둘째 적들이 싸우고 싶어 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는 ‘우회전략’, 셋째 적들이 예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 ‘혁파전략’이었다.
지피지기보다는 확실히 쉽지만, 그 시기와 방법을 찾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인내와 흔들리지 않는 중심 유지가 필요한 지 두말하면 잔소리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을 상대로 상호관세 협의를 진행중이다. 지난 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미국 베센트 재무장관과 그리어 USTR 장관 등과 2+2 협의를 진행하고 27일 귀국했다.
그는 미국과의 협의 성과에 대해 “협의 과제를 명확히 했고, 논의 일정에 공감대를 형성해 향후 협의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러면서 협의의 핵심으로 관심이 모아졌던 환율 문제와 관련, “재무당국 간 환율정책과 관련해 직접적이고 상시적인 소통 채널이 있어서 오히려 더 건설적인 논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역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일본과의 협상에서 방위비 문제를 거론한 것과 달리 우리와의 협의 과정에서 방위비 압박은 없었다고도 했다. 일본과의 협상 시 갑자기 등장한 트럼프도 한국과의 협의장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굳이 희망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트럼프는 다른 나라 정상들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었고, 한국 방위비 분담금 관련해서 트럼프는 별도의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최 부총리의 긍정적인 멘트는 성급한 판단이었음을 하루 만에 드러나게 됐다.
거대 강국인 미국 그것에 더해 미친 전략으로 상대국의 혼을 빼는 트럼프를 상대로 최 부총리나 우리 대표단이 너무 트럼프가 원하는 시간, 장소, 방식으로 대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우리의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의 전략을 모른 채 한번의 만남에 지나치게 낙관적 모습을 보인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앞선다.
당장의 성과를 냈다는 보여주기에 급급한 모습을 바라보는 미국이 더 많은 수단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한 그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왜 협상의 원칙을 모르는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웃는 모습과 낙관은 협상이 모두 끝났을 때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당장의 칭찬을 바라는 애완견 모습으로 미국 트럼프를 상대하고 있다니 참으로 답답하다.
베트남 전쟁영웅 보응우옌잡이 미국을 상대로 미국이 아닌 본인이 원하는 시간, 장소, 방법을 선택해 세계 최강 미국을 꺾은 사례를 반드시 기억하고 흉내라도 낼 필요가 있다.
미국 프로야구 구단 뉴욕양키스의 영구결번 포수로 유명한 ‘로렌스 피터 요기 베라’가 한 말로 스포츠경기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란 말이 있다.
그가 1973년 뉴욕 메츠 감독 시절 내셔널리그 동부 디비전에서 선두 시카고 컵스와 9.5게임차로 꼴찌에 머물러있을 때 기자들이 “메츠는 이제 끝났다”란 표현을 하자 한 말이다.
요기 베라 감독은 결국 그 해 기적적으로 동부 디비전 1위를 차지했고, 신시내티를 쓰러트리고 월드시리즈까지 진출을 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결국 월드시리즈에서는 7차전 접전 끝에 오클랜드에게 졌지만 지금까지도 야구사의 신화로 거론된다.
미국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방법이 아닌 우리의 시간과 장소와 방법이 필요하고, 끝날 때까지 신중하고 인내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말기를 바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