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파월. 2017년 11월 트럼프 1기때 파월 연준 의장 임명 당시 장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연준 의장 간의 싸움이 본격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밤 뉴욕 증시는 트럼프의 파월 때리기 모습에 맞춰 크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파월이 금리를 내리지 않고 버티는 것을 트럼프가 공격하면서 고래 싸움에 “당분간 금리를 내리지 않겠구나” 하는 시장의 실망감으로 약세장이 이어진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시장이 이러한 동네싸움에 그렇게까지 크게 움직일까? 그 이면에는 이미 시장은 트럼프 정책의 한계를 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트럼프의 파월 공격은 트럼프 출구전략으로 보인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증시 3대 주가지수는 모두 2% 넘게 동반 급락했다. 다우와 나스닥은 모두 4거래일 연속 하락행진을 이어갔고, 국채 가격도 하락했고, 달러 인덱스도 역대급으로 내려갔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이 나쁘면 그 이탈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국채시장이나 달러로 움직이는데, 주식시장, 국채시장, 달러인덱스 모두 동반해 바닥을 찍고 있다. 결국 셀USA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트럼프가 취임과 동시에 관세폭탄을 때리면서 미국의 고질적 부채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상황이 연출되자 트럼프가 출구전략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금시장은 귀신처럼 이것을 알아차리고 미국을 탈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가 파월에게 금리인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임 운운하며 공격하는 속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근거는 지난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다. 지난 3월 미국 CPI는 전년 동월 대비 2.4% 올랐고, 전월 대비로는 0.1% 하락했다. 안정적인 2.0%에 접근하고 있는 수치가 나온 것이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CPI 역시 전년 대비 2.8% 올라 본격적인 2%대로 들어서면서 2021년 3월 이후 4년 만에 자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트럼프가 파월을 향해 "많은 사람이 '선제적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이자, 중대한 실패자(major loser)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경기 둔화가 있을 수 있다"라고 공격한 배경은 바로 지난 3월 CPI였다.
그러나 만일 파월이 금리인하를 단행할 경우 현재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지난 3월 CPI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실행되기 훨씬 이전의 지표이기 때문이고, 트럼프 관세 부과는 지난 4월 2일부터 시작됐고, 국가별 상호관세는 현재 협상을 위해 90일 간 유예된 상황에, 품목별 관세 역시 일부만 결정된 상황이다. 현재는 10%의 보편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 10% 보편관세가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시점도 빨라야 두 달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세를 올렸다고 소비자물가를 바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은 재고물량 등으로 견디고 그 이후에나 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실제 관세 상승분의 소비자물가 반영효과는 6월에나 가야 나타난다. 그때가 되면 자동차 등 25%의 품목별 관세를 맞은 제품은 가격 상승 폭이 훨씬 크게 나타날 것이다.
금리를 내릴 경우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피게 되는 상황을 모를 리 없는 트럼프가 바보가 아닌 이상 파월에게 금리인하를 강하게 요구할 수 있을까? 분명 저의가 있다고 해석해야 하는 대목이다.
트럼프도 이미 본인의 관세라는 폭탄을 장착한 무기가 발사 될 경우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터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미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은 상당히 나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의 경제분야 국정수행에 대해 지지하지 않는다 55%로 역대 최저수준을 보였다. 지지한다는 43%였다. 특히 관세정책에 대해 반대 49%, 찬성 35%이고, 물가대응에 대해서는 부정평가 60%에 긍정 37%로 국민들의 물가불안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폭탄 후유증인 미국 물가상승에 대한 불안감은 이미 소비자심리조사 결과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시건대 소비자심리조사에 따르면, 4월 미국 소비자들의 1년 후 기대인플레이션은 6.7%로 나와 1981년 이래 4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5년 후 기대인플레이션은 4.4%로 1991년 6월 이래 3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적인 인플레이션이 관세폭탄 자폭으로 불붙을 경우 앞으로 2년도 남지 않은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르는 중간신임 격인 총선은 2026년 11월 열리는데, 이 때 하원의원 435석 전체와 상원의원 100명 중 34명 그리고 주지사 50명 중 36명을 선출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경우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크게 패배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여소야대가 될 경우에는 1기 트럼프 시절처럼 의회의 반대로 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 없게 될 것이고, 트럼프는 벌써부터 이를 두려워할 것으로 보인다.
관세효과는커녕, 물가폭탄과 미국 경제에 대한 불안과 불경기로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벌써부터 희생양을 내세워서 출구전략을 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 아닐까 하는 분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찾은 희생양이 바로 과거 대선 기간에 바이든 편에서 큰 폭으로 금리를 내려준 파월일 것이다.
결국 트럼프에게는 파월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파월을 교체하겠다고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엄포만 하고 교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진짜 파월이 금리를 서둘러 인하하거나, 파월 대신에 앉힌 연준 의장이 금리를 인하할 경우 미국은 빠른 속도로 인플레이션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관세폭탄을 때린 트럼프가 져야하기 때문이다.
미국 엑소더스(셀 USA)는 단순히 트럼프가 파월을 공격해서가 아니라, 바로 트럼프의 관세정책의 한계가 미국 물가상승과 불경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달러도 믿을 수 없게 되면서 지난 밤 달러인덱스는 장중 97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취임한 지 백일도 안돼 트럼프가 출구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이것은 글로벌 경제에 최대 악재다. 좌충우돌 트럼프로 인한 글로벌 불확실성이 과연 어디까지 갈 지 참으로 걱정이다.
미국과 상호관세 협상을 위해 출국한 최상목, 안덕근이 어떤 모습으로 귀국할 지도 궁금하다.
출구전략을 고민하는 트럼프에게 덤터기나 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