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대통령이 두려워할 만한 미래의 의료대란
수도시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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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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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정협의체가 예상대로 좌초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무의미한 협의체였는데, 거기에 참여한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KAMC)만 우습게 되고 말았다. 야당도 참여를 거부한 협의체에 두 단체가 왜 참여했는지, 사실 그것이 미스테리였다. 민주당은 지난 가을 어느 순간부터 2025년 정원도 협의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조용히 입장을 바꾸었음에도 한동훈은 2026년 정원을 조정해서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협의체를 발족시켰으니 우습게 되고 말았다. 문제의 핵심이 2025년 정원임을 알아차린 민주당은 협의체가 무의미할 것으로 보고 아예 불참해서 한동훈을 물에 빠뜨렸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내년 3월 의대는 극심한 혼란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휴학 중인 재학생들이 복학할 명분이 없기 때문에 결국에 한해 더 휴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대생 전체가 2년 동안 학업을 쉰다니 그 자체로서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재학생들이 복학을 거부하면 4500명 신입생들도 결국 휴학 행렬에 동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의대를 5년제 또는 5.5년제로 한다거나 24학번과 25학번을 함께 4학기로 나누어서 주야간반으로 수업을 한다거나 하는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발상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의대가 2년 계속 공전(空轉)하게 되면 각 의대는 2년 동안 계속해서 등록금 수입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의사 공급이 단절되고 전문의 배출도 중단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며 정상화가 될지도 의문이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회복에는 최소한 10년이 소요될 것이다. 4~5년 후에는 우리 군에는 군의관이 사라져버리는 재앙이 발생할 것이며, 공보의도 역시 사라질 것이다. 의대 예과 2년~본과 남학생들이 사병으로 대거 입대해서 우리 군에는 의학에 소양이 있는 병사가 별안간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전문성이 뛰어난 의대휴학 중인 의무병들이 국군장병들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2026년 3월이 다가오면 2년 동안 휴학을 한 의대생들은 복학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동안 군 복무를 마친 남학생들은 별로 손해 본 것도 없는 기분일 것이다. 병역 의무가 없는 여학생들은 군대에 간 남학생 동료들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생각으로 2년 동안 다른 공부도 하고 넓은 세상을 구경하는 등 견문을 넓혔을 것이다. 후진을 양성한다는 자존심을 상실한 의대 교수들, 특히 지방의대의 교수들이 대학을 사직하고 수도권 대학병원/종합병원의 전문의로 전직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서 지방 소재 대학병원은 경영난에 빠질 것이다.
2026년 3월 새 학기에는 2024년 입학생과 2025년 입학생이 동시에 복학하기 때문에 예과 1학년 학생 수가 대략 6000명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2026년에 의대 입시는 불가능하고 2027년도 신입생도 3000명 이하로 대폭 줄여서 뽑아야 할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2025년 입시를 강행한 후폭풍은 이처럼 거세게 불 것이다. 필수의료를 할 전공의가 사라져 버린다는 우려도 현실이 될 것인데, 사실 이런 문제는 의대 증원으로 야기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이런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이번 증원 사태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이런 파국은 지난 6월을 넘기면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파국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그대로 밀고 나가는 현 정부는 도대체 어떤 정부인지 알 수가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지난 1995년~97년 사이에 의료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방에 소규모 의대 9곳을 새로 허가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5년 세월이 지나서 그때 생긴 의대도 폐교된 한 곳을 제외하고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보다 더 큰 폭탄이 터진 것이다. 1995~97년 의대 신설을 기획한 청와대 수석 박세일은 서울법대를 나오고 코넬 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하고 서울법대 교수를 지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은 연대 정외과를 나오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행정학박사를 하고 연세대 교수를 지낸 안병영이었다. 이번 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이주호 교육부장관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교수 출신은 아니지만 모두 서울대를 나오고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를 했다.
교육부 관료와 복지부 관료는 원래 교수와 의사를 질시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장관이라는 사람들이 교수 출신이고 미국에서 박사를 할 정도로 대학 물을 먹었음에도 의대 문제를 이렇게 다룬다는 사실은 정말로 이해하기 곤란하다. 이 사람들은 대학 다닐 때 의대 다니는 친구도 없었고, 교수를 할 때 의대 교수를 만나 본 적도 없는지, 또 미국에서 공부할 때 미국의 메디컬 스쿨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는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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