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서는 부모형제도 75년의 우정도 소용없는 장면들이 자꾸 반복되고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 유력 재벌기업들이 골육상쟁의 모습을 보이면서, 과연 돈 앞에서는 부모형제도 깊은 우정도 의미가 없는 것인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2020년 8월 한미그룹의 임성기 회장이 사망한 이후 한미그룹은 오너일가가 모녀 대 형제의 싸움으로 멍들고 있다. 고 임 회장이 사망하면서 경영권 교통정리를 못하는 바람에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 30년 고향 선후배 사이인 한양정밀 신동국 회장까지 경영권 싸움판에 등장하면서 골육상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신 회장이 올해 1월에는 형제 편에 섰다가 두 달만에 다시 모녀 편으로 돌아서면서 이사회 구성부터 모든 것이 꼬이면서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내일인 2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사진 확대 건을 표결에 부쳐진다. 9명의 이사진을 11명으로 늘리는 것인데, 현재는 9명 중 5명이 형제측 인사이고 부녀 및 신 회장 측이 4명이어서 이사회를 형제측이 끌고가고 있는 상황이다. 부녀 측이 2명을 추가시켜서 우호 이사 6명을 확보해 이사회를 지배하겠다는 의도다. 정관 변경의 경우는 출석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텨 측이 48.19%의 지분으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현재 부녀측과 형제측은 서로 고소·고발로 얼룩져있는 상황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26일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하면서업무방해금지 가처분도 함께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서 지난 18일에는 한미사이언스가 전문경영인인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 외 3인의 그룹사 고위임원,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 김남규 대표 등 5인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이어서 형제 측 인사로 분류되는 한성준 코리그룹 대표가 지난 13일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박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이 정도면 부녀 대 형제의 싸움이 가히 골육상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도 경영권 분쟁이 진행중이고 늦어도 내년 초에 열릴 임시주총에서 이사회 재 구성이 될 경우 경영권 향배가 갈릴 영풍 장씨집안과 고려아연 최씨 집안 싸움도 부녀 대 형제 간 싸움 못지 않다.
이 두 집안은 형제 이상의 관계를 지난 75년 간 이어온 동반경영의 대표 기업으로서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아온 모범 기업이었다.
75년 전 해방과 함께 북한 땅에 들어선 공산정권을 피해 형제처럼 지냈던 장씨 최씨 두 집안이 황해도 봉산 땅을 처분하고 남한으로 월남해 1949년 ‘영풍해운’을 공동창업하면서 75년 간 잡음 없이 모범적인 협력경영의 역사를 이어왔지만 이제는 완전히 원수가 됐다.
두 집안의 경영권 분쟁으로 50만원 하던 주가는 무려 두 달도 안돼서 150만원까지 상승했다가 지금은 100만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양 쪽 집안의 지분 차이가 5% 정도 밖에 안돼,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영풍·MBK 측 즉 장씨 집안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두 집안도 서로 고소·고발로 막장드라마를 쓰고 있다.
현재 위기에 빠진 롯데그룹 역시 형제간의 전쟁으로 힘이 빠져있다. 현재 그룹 회장인 신동빈 회장이 동생이고 그의 형은 신동주 전 롯데그룹 부회장인데,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최상위인 일본 광윤사의 1대 주주가 신동주 전 부회장이다.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1대 주주지만, 지분이 28% 정도이고, 종업원지주가 27%, 그리고 임원지주가 약 6%를 가지고 있다. 광윤사는 신동주 전 부회장을 밀고 있지만, 종업원지주와 임원지주 지분 총 33% 정도가 신동빈 회장을 지지하면서 신동빈 회장이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근래 롯데그룹이 위기에 빠지면서 임원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자칫 롯데홀딩스 지분 33%를 가진 종업원지주 및 임원지주가 돌아설 우려를 배제하지 못해 인적쇄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 회장에게는 현재 인적쇄신이 절실하지만, 경영권 유지를 위해서는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이 언제 어떤 식으로 들어올 지도 잠재 리스크가 되면서 그룹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여기 역시 형제 간의 골육상쟁을 치르고 있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은 뼈와 살이 서로 전쟁을 한다는 의미다. 인체에서 뼈와 살은 불가분의 관계인데 서로 싸운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역사 속에서는 국가 권력을 놓고 여러 골육상쟁이 일어났다.
중국 당태종 이세민은 형과 동생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둘째 아들인 이세민은 아버지가 장남인 형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하는 것을 눈치채고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태자가 되고 28세 젊은 나이에 황제에 올랐다.
조선에도 태종이란 묘호를 가진 골육상쟁으로 유명한 인물이 있다. 조선의 3대 왕인 태종 이방원 역시 아버지 이성계가 배다른 막내에게 왕위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배다른 형제 방번과 방석 모두를 죽이고 결국 3대 왕에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태종 모두 왕위에 오른 이후에는 선정을 펴 나라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당 태종은 훗날 권신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무능한 아들을 후계자로 삼아 당나라를 망하게 한 데 반해, 조선 태종은 조선 역사 최고의 성군인 세종을 후계자로 골라 조선 500년 역사의 틀을 만들었다는 차이가 있다.
골육상쟁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돼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그 싸움을 통해 더 큰 것을 얻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야 그 대가가 값지게 된다. 자신의 안위와 영달과 주머니 속의 돈만을 생각하고 벌이는 싸움은 자신의 고통도 크지만, 주변의 고통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당과 조선의 두 태종은 골육상쟁 이후에 성공했기 때문에 역사에 남아있지만, 대부분의 골육상쟁은 소리없이 사라져서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의 골육상쟁은 큰 틀에서 명분이 부족해 보인다. 단지 경영권 뺏기 위한 부모와 자식 간, 형제간, 형제보다 더한 형제 같은 사람들 간의 지분싸움 그리고 고소·고발이다.
그런 것을 보고 자란 그들의 후손들이 그 기업을 잘 이끌고 갈 지가 더 걱정이다.
이기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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