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시작된 삼성전자 위기, 10년 전 올드보이들로 해결될까

-한종희, 전영현, 정현호 부회장단 그대로 유지한 채 사장 3명 중 2명만 교체
-오히려 부회장들 권한 더 세졌고, 사장단도 부회장 사람들로 채워…쇄신 대신 수구

이주연 기자 승인 2024.11.28 11:07 | 최종 수정 2024.11.28 11:08 의견 0
삼성전자가 지난 27일 사장단 인사를 했지만, 부회장단 3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재용 회장의 쇄신 목소리는 허언이 됐다. 오히려 부회장단의 권한을 더 키워주면서 삼성전자는 쇄신 대신 수구를 택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수도시민경제

지난 27일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삼성전자의 인사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올드보이들의 회전문 인사”였다. 유례 없는 위기에 빠진 삼성전자의 이번 인사에 앞서 시장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대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선택은 이변을 만들지 못했다.

증권시장에서도 실망감을 주가에 그대로 반영시켰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사장단 인사가 나오자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6만전자의 기대에서 멀어졌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3.43% 떨어져 5만6300원으로 내려앉았다. 전날 91만 여주를 매수했던 외국인이 이 날은 499만 여주를 매도해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 28일 역시 1% 이상 하락하는 등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사장 승진 2명, 업무변경 7명 등 9명의 승진 및 이동 인사를 단행하면서 반도체 사업 쇄신에 초점을 맞췄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그밥에 그반찬’으로 평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전영현 반도체(DS) 부문장, 정현호 사업지원태스크포스장 등 부회장 3인방이 자리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부분이다.

문책성 있는 인사를 단행했다고 하지만, 반도체 부문 3개 사업부 중에서 2곳의 사장이 물러나고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자리는 전영현 부회장이 겸직하기로 하면서 전 부회장의 힘이 오히려 더 세졌다.

물러난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자리는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한 한진만 미주 총괄부사장이 맡았다.

사실상 삼성전자 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 부회장단의 자리가 더 확고해지면서 쇄신 없는 인사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룹 2인자로 거론되는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사령탑으로 알려진 정현호 사업지원태스크포스장에대한 책임론이 회사 안팎에서 끊임없이 나왔지만 오히려 더욱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2명의 사장 승진자 중 1명이 정현호 부회장 사람이고, 미래전략실 출신의박학규 사장이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합류해 힘이 더 세졌다.

블루투스 이어폰 ‘버즈3’ 품질논란과 지난달 출시한 스마트폰 ‘갤럭시Z폴드 슬림 에디션’의 품질 문제로 인한 출시 지연 등 시장의 신뢰를 잃은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인 노태문 사장도 유임됐고, 한종희 부회장에게는 신설된 품질혁신위원회도 맡겨 힘을 더 키워줬다.

이와 같이 관료화된 삼성전자의 인사를 보고 시장에서는 “모건스탠리가 경고한 반도체 겨울을 가장 먼저 세게 맞고 있는 삼성전자가 장기적인 플랜은 고사하고 발등의 불마저 끄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당연히 나오고 있다.

저조한 실적은 고사하고 엔비디아 향 AI칩 용 반도체인 HBM의 기술 결함, 3나노의 수율 문제, 파운드리 사업의 부진, 스마트폰인 갤럭시 AP(스마트폰용 반도체 CPU)의 불량 등등 산적한 문제로 인해 비상사태가 발생한 삼성전자가 쇄신 대신 수구(守舊)를 택하면서 삼성전자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이미 이재용 회장이 관료주의에 빠져 새로운 것을 시도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9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024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서 현재 위기에 빠진 삼성에 대해 “최근 삼성이 위기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지난 10년 동안 축적된 위기가 이제 터져나온 것일 수 있다”면서 “삼성 문제에 대해 들어왔는데 삼성이 그동안 우리가 최고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관료화 됐다는 평가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의 현재 위기론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박 전 장관의 발언은 시기적으로 계산을 하면 거의 맞는 지적으로 들린다.

10여 년 전이라는 것은 고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시점과 맞물린다. 고 이 회장은 2014년 5월 쓰러진 이후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를 이재용 회장이 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러니까 고 이 회장이 쓰러진 지 딱 10년 만에 그동안 누적된 리스크들이 터져나와 삼성그룹의전부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로부터 시작된 위기가 삼성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인사에서 전영현 부회장이 10년 전 3년 간의 메모리 사업을 담당했다는 이유로 이번에 메모리 부문까지 겸하게 됐지만, 사실 10년 전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을 이끈 인물은 2011년 이건희 회장이 영입한 대만 출신의 미국 반도체 전문가 량멍쑹이었다.

량멍쑹은 당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를 이끌면서 14나노 반도체 공정을 성공해 삼성전자의 위상을 세계 1위 자리에 올린 인물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삼성의 주요 임원들이 량멍쑹을 몰아내는 바람에 량멍쑹은 중국의 SMIC로 자리를 옮겨 스마트폰 세계 3위인 화웨이와 호흡을 함께하면서 삼성전자의 모바일 경쟁자로 부상했다.

바로 당시 량멍쑹을 몰아낸 인물들이 현재 삼성전자를 이끌게 된 결과가 된 것이다.

이번에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의 임원 438명 중 100명 정도를 내보냈다고 하지만, 부회장단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정말 능력에 맞게 했는지, 아니면 내사람 챙기기 인사를 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재용 회장이 진정으로 삼성전자를 쇄신하려고 했다면, 부회장단 교체부터 했어야 했고, 아버지 회장처럼 량멍쑹 같은 글로벌 인재를 모셔와서 조직을 모두 맡겼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산업계 관계자는 “오늘날 대만 경제를 이끌고 있는 TSMC 역사는 1980년대 말 대만의 총통을 지낸 옌자간이 대만출신 미국 반도체 전문가인 모리스 창을 모셔와 전권을 주면서 시작했듯이, 삼성전자도 핵심적인 인물을 모셔와 그에게 쇄신을 맡겨야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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