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지방 의대 이원화 하자는 위험한 법안발의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1.18 08:48
의견
0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평가 기준에 대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의과대학 사이 차등을 두는 조항을 담은 법률안이 12일 입법예고 됐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발의한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비수도권 대학의 인정기관 평가와 인증 방법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금년에 정부가 의료계와 의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원을 대폭 늘린 수도권 이외의 의대가 의평원 평가를 통과하도록 하는 법안인 것이다.
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기 때문에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하다. 민주당은 2025년 정원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는 이유로 여당과 정부가 발족시킨 여야의정협의체 참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여당의 의평원 무력화 시도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관건이다.
윤한홍 의원은 이 법안이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 및 지방 의료 인력 부족 상황을 완화”한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수도권 밖의 지역에는 수도권 기준에 미달하는 의대에서 교육을 받은 의사가 배출되어야 지방 의료 인력 부족 상황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윤 의원의 이 같은 주장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또 다른 조건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수도권 기준에 미달하는 의대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의사가 해당 지역에서 실제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법안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렇게 기준이 완화된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그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방의대에 대한 기준 심사를 완화하고 그 의대를 나온 의사는 10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의대를 나온 지역에서 근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 있는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지역 의대를 나온 의사들이 일하는 병원과 의원이 유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다른 입법을 필요로 하게 된다, 즉, 김대중 정부에서 폐지한 권역별 진료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지역의대를 졸업한 의사가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한다고 해도 웬만한 환자들이 KTX타고 수도권 병원을 다닌다면 ‘지역의대’니 ‘지역의사’니 하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는가?
나는 윤한홍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윤 의원이 말하는 ‘지역’의 유권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는지가 궁금하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모욕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윤한홍 의원이 말하는 지방의대를 졸업하고 지역의 의료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의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전공의들이 이탈한 수도권의 큰 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바꾼다고 하니까 이번에 아예 수도권 병원으로 대거 이직을 할 가능성은 없는가?
매년 3000명을 교육하는 의대에 대해 별안간 2000명을 더 가르치라고 하는 이 정부, 그리고 그런 폭거(暴擧)를 찬양한 멍청한 신문들, 그러한 증원이 무모함이 드러났음에도 이제 와서는 증원한대로 입시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 신문과 정치인들 때문에 5년제 의대, 5.5년제 의대, 4학기제 의대, 그리고 지역의대의 기준 하향화 등 기가 막힌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진정으로 지역의료를 생각한다면 의대 정원을 무턱대고 늘리거나 인구도 별로 없는 지역에 의대를 새로 만들기 보다는 거점 의대와 거점 병원의 의료 수준을 향상시켜서 그런 의대와 그런 병원을 축(軸, hub)으로 지역 병의원을 연계해야 함이 상식이 아닌가. 우리 사회는 상식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수도시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