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강행, 로스쿨 실패 데자뷔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1.08 07:09 의견 0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병원.
사진=수도시민경제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결정한 것에 대해 언론들도 동참해 밀어붙인 현실은, 15년 전 로스쿨 제도 도입때의 무지의 결과가 오늘날 로스쿨 실패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로스쿨 실패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말하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법학전문대학원 15년을 평가하면서 한국에서의 로스쿨은 실패했다는 진단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법률신문>은 로스쿨 원장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로스쿨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 서강대 왕상한 원장이 “전혀 맞지 않는 美 로스쿨 이식 자체가 잘못”이며, 교육 정상화 등 출범 당시 취지-명분 사라졌고 학생-학교-변호사-소비자 모두에 도움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왕상한 원장은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를 했다.)

로스쿨 원장들은 주로 로스쿨과 변시가 과거의 법대 학부와 사법시험이 갖고 있던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고 더욱 심화시켰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법연수원이다.

사법시험 시절에는 합격자들이 사법연수원 2년 과정을 거쳤다. 대법원이 관장한 연수원의 교육은 엄격했으며 성적순대로 판검사 임용이 되는 'merit system'이었다. 지역을 고려해서 생긴 지방 로스쿨을 나와서 변시에 합격하는 경우도 수도권 중상위 대학출신이 대부분인 것도 지역균형을 도모한다던 로스쿨의 어두운 면이다.

많은 로스쿨 원장들이 언론에 로스쿨 제도 실패를 밝히고 있다. 이황 고려대 로스쿨 원장은 “입시 자율성 보장해야 다양한 인재들 확보 가능”, 왕상한 서강대 로스쿨 원장은 “로스쿨 제도는 실패… 개혁 못하면 폐지해야”, 장석천 충북대 로스쿨 원장은 “로스쿨에 지역인재 양성 의무만 … 정부는 외면”, 김일환 성균관대 로스쿨 원장은 "시대에 안 맞는 로스쿨 제도가 학생들 정신과로 내몰아"라는 칼럼들을 내놨다.

로스쿨 도입은 김영삼 정부 청와대에서 박세일 정책기획수석이 처음 시도했으나 YS 정부의 법조인들이 반대해서 실패했다. 그 대신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기존의 300명에서 500명으로 늘리고 매년 100명씩 증가시키도록 했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에 드디어 1000명을 뽑게 됐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1974년에 60명을 뽑았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사법시험을 매년 1000명이나 뽑으니까 법대생이 아닌 다른 학과생들이 대거 사시에 응시했다. 서울대의 비(非)법대 졸업생이 사시 합격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렇게 되자 ‘법대 무용론(無用論)’이 나오고 다른 학과가 황폐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박세일 교수를 따르던 ‘개혁성향’의 법학교수들이 로스쿨을 도입해서 법학교육을 정상화하자고 주장해서 드디어 2007년에 로스쿨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로스쿨 도입을 열렬하게 주장했던 법학교수들 중에 정작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한 사람은 없었다. 또한 당시 모든 신문이 로스쿨 도입을 주장하거나 찬성하는 사설을 썼다. 당시 로스쿨 도입에 문제가 많다는 신문칼럼을 쓴 교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동아일보 6월 15일자에 기고한 칼럼이 거의 유일했다. 로스쿨은 미국에 특유한 경험이기 때문에 쉽게 배워 올 수 있는 교육제도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견해였다. 그러더니 15년이 지나서 드디어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로스쿨을 개혁과제로 추진하자 모든 신문이 사설로 로스쿨 도입을 지지했다. 나는 그 때 도대체 이런 사설을 쓴 논설위원 중 미국 로스쿨을 구경이라도 해 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자기가 무엇을 쓰는 줄도 모르고 바람에 휩쓸려서 그런 사설을 쓴 것이다. 금년 초에 모든 신문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찬성하는 사설을 쓴 것도 똑같은 현상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써대니까 이런 지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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