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발표한 SK이노베이션의 올 3분기 실적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SK이노베이션이 적자폭을 늘리면서 두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암울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룹의 첫째 아픈 손가락인 배터리 전문기업 SK온이 창사 이래 처음 흑자로 돌아서 전체 표정은 밝게 만들었다.
이날 발표한 SK이노베이션의 3분기 매출은 17조657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4233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5631억원에서 크게 후퇴했다. 순이익 역시 -5881억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석유사업 수익성의 기반이 되는 정제마진 하락의 영향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국제유가 하락의 여파를 고스란히 안았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온이 12분기만에 흑자로 돌아서 예상보다 흑자실현 시점을 크게 앞당기면서 SK 입장에서는 한시름 놓게 됐다.
현재 캐즘(전기차 판매 일시 정체)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실적개선이어서 시장에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SK온의 3분기 매출은 1조4308억원, 영업이익은 240억원으로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해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첫 분기 흑자를 달성했다. SK온은 2021년 4분기 첫 분기실적에서 3102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2분기까지 11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누적적자 2조원을 넘겨 그룹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됐었다. 특히 지난 2분기는 4601억원의 영업손실을 봐 SK이노베이션은 물론 그룹의 리스크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SK온의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호재다.
특히 이번 분기 흑자는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세액공제 수혜금이 줄어든 상태에서 거둔 흑자여서 더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3분기에 SK온이 받은 세액공제는 전 분기 1118억원 대비 510억원 줄어든 608억원이었다. 1분기 385억원까지 모두 합하면 총 2111억원이다.
이날 SK온 관계자는 “올 4분기에는 북미 신규 완성차 공장이 가동되고 고객사 신차출시의 영향으로 판매량은 더 늘어날 것이다”고 밝은 전망을 내놨다.
‘SK온 일병살리기’란 별명이 붙은 SK E&S와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도 마무리 돼 지난 1일 부로 새롭게 출범한 것도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강력한 우군을 확보한 셈이다.
■더욱 강력해진 엔비디아와의 신뢰관계
같은 날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은 현재 AI반도체 시장을 끌고가고 있는 엔비디아와 SK의 강력한 결속과 협력 관계를 증명하는 자리가 됐다.
현재 SK하이닉스는 AI용 반도체인 GPU(Graphic Processing Unit)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를 엔비디아에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이번 ‘SK AI 서밋’을 통해 엔비디아 젠슨황 CEO와 최태원 SK그룹 회장 간의 깊은 신뢰관계를 보여줬다.
이날 행사에서 최태원 회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지난번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났을 때 (그가) ‘고대역폭메모리(HBM)4의 공급 일정을 6개월 당겨달라’고 요청했다”며 “이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젠슨 황에 대해 “우리 한국사람처럼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젠슨 황은 우리 한국사람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것 같다”라면서 인간적인 친밀감까지 드러냈다.
SK하이닉스도 최근 해당 제품의 공급 일정을 2026년에서 내년 하반기로 앞당기기로 했다.
젠슨 황도 행사에 영상 대담으로 참석해 HBM 공급사로서 SK하이닉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HBM 기술 개발과 제품 출시 속도는 매우 훌륭하지만 여전히 AI는 더 높은 성능의 메모리가 필요하다”며 “SK하이닉스의 공격적인 제품 출시 계획이 빠르게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 CEO는 “양사 협업으로 더 적은 메모리로 더 정확한 연산을 수행하고 동시에 더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달성했다”며 “컴퓨팅 처리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됐고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의 '큰손' 고객인 엔비디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HBM3·HBM3E에 이어 맞춤형(커스텀) 제품인 HBM4(6세대)까지 SK하이닉스가 공급하기로 하면서 양사의 협력 관계가 더욱 끈끈해졌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지난 3월 HBM 5세대인 HBM3E 8단을 업계 최초로 납품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달 HBM3E 12단 제품을 세계 최초로 양산을 시작해 4분기 출하할 계획이다.
이미 2026년 수요 제품에 맞는 HBM4 16단 제품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단히 말해 반도체를 16단까지 쌓는 것인데, 그만큼 속도는 빨리지고 전기소모량은 적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최첨단 AI칩에 탑재되는 제품이다.
엔비디아와의 협력관계에 SK텔레콤도 가세했다. SK텔레콤은 다음달 AI 기업이 모여있는 판교에 엔비디아 최신 칩을 탑재한 AI 데이터센터 테스트베드(시범시설)을 구축한다.
이를 시작으로 국내 지역 거점에 100메가와트(MW)급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향후 10배 이상인 기가와트(GW)급으로 키워나갈 방침이다.
SK텔레콤은 AI 데이터센터를 활용한 서비스도 다음달 출시한다. 고객사가 사스(SaaS)처럼 클라우드 구독 서비스 형태로 GPU를 쓸 수 있도록 하는 ‘GPUaaS’다. 이 역시 미국 협력사 람다를 통해 엔비디아 칩을 공급받는다.
SK하이닉스 주가는 4일 6.48% 오른 데 이어 5일 오전 현재 1% 이상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20만원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섬성전자가 기술 결함 등 이유로 주춤하면서 대한민국 반도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뻔 했는데, SK하이닉스가 그 자리를 대신해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살려주는 것 같다”면서 “SK그룹의 리스크로 거론됐던 SK온이 정상화되고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자리를 확보하는 등 SK그룹의 밝은 미래가 그려진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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