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사철, 하위 20%라고 내보내지 마라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0.26 10:51 | 최종 수정 2024.10.26 13:37 의견 0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낙엽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은 기업에게도 인사의 계절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는 삼성의 위기로 인해 전반적으로 인사가 빨라지게 됐다. 빠르면 11월 들어서면서부터 대기업 인사가 시작되고 늦어도12월 초까지는 인사가 마무리될 분위기다.

언제부턴지 인사철이 되면 승진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해고에 대한 불안이 앞서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성장세가 약해지고, 사람이 덜 필요한 형태로 산업이나 사회 구조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는 만사란 말이 있다. 누구를 어디에다 쓰는 지가 결과를 좌지우지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사철에 경영자의 가장 큰 고민은 장기판에 말 놓듯 누구를 어디로 보내고 누구를 내보낼까에 모아진다.

옷자고 하는 소리가 있다. 사람을 내보낼 때 우선 권씨하고 고씨를 내보내면 권고사직이라고 한다. 권씨하고 고씨가 우리나라 인구의 약 2.5%정도 차지하니까 소폭 내보내는 것이다. 좀 더 내보내려면 구씨하고 조씨를 내보낸다. 그걸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두 성씨를 합하면 역시 2.5%정도 된다. 다 합해서 5%정도를 내보내는 것이다.

지금의 삼성전자처럼 회사 사정이 아주 안좋아 좀 많이 내보내려면 정씨하고 이씨를 내보내면 된다. 두 성씨를 합하면 약 20%가 된다. 그걸 정리해고라고 한다.

권고사직, 구조조정, 정리해고를 하고 나면 인원 25%를 줄일 수 있다는 농담이지만 그럴듯한 계산이다. 최근 임원을 대거 정리한 SK에코플랜트의 해고 비율의 경우에 해당된다

그만큼 사람 내보내는 기준 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자칫 인재를 놓칠 수 있고, 정말 문제가 있는 인물이 남아 회사를 망가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생각없이 단추를 눌러 선택한 종목이 사람이 고민 끝에 정한 종목보다 주가가 더 올랐다는 보고서처럼 어쩌면 농담이 담긴 정리해고를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사는 과학이다. 검증과 증거와 지속적인 평가와 관리 속에서 나와야 한다.

파레토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80대 20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전체의 20%가 80%를 차지한다는 법칙이다. 국민 20%가 전체 재산 80%를, 조직 내 20%가 조직의 일 80%를 한다는 법칙이다.

마케팅에서는 매장 손님의 20%가 80%의 매출을 올려준다는 것으로, 백화점이나 서점 등에서는 이들 20% 손님 잡기에 안간힘을 쓴다.

파레토 법칙의 반대로 쓰이는 말이 롱테일 법칙이다. 파레토 법칙에서 20%를 뺀 80%에 해당하는, 성과는 내지 못하면서 상당수를 차지하는 그래프 상 긴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말한다.

조직에서는 성과는 적게 내면서 이익을 갉아먹는 부류를 말한다. 조직과 인사관리의 상당부분은 바로 이 긴 꼬리부분에 대한 역량강화가 된다.

이 두 법칙은 항상 함께 움직인다. 파레토 법칙을 뒤집어 해석하면 하위 20%가 전체 손실의 80%를 만들어낸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직은 하위 20%에 해당하는 임직원을 내보내는 것을 반복적으로 한다.

그러나 하위 20%를 내보내면 자격미달 20%가 또 나타나는 현상이 반복된다. 멀쩡하게 일 잘하던 직원들이 하위 20%를 내보내고 나니 또다시 하위 20%인 썩은 가지가 생겨나 조직을 갉아먹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의 핵심은 이 긴 꼬리, 그리고 파레토 법칙의 하위 20%를 어떻게 관리해서 역량을 키우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위 20%로 평가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역량을 찾아낸다면 조직의 역량은 생각 밖으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고, 그런 리더십을 가진 사람을 써야 계속 썩은 가지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Good to Great(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5단계의 리더십을 얘기한다. 그 중 가장 높은 레벨5리더십은 기업의 오너나 CEO가 가져야 할 리더십이다. 이들은 본인보다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 버스에 태우는 역할을 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그 버스를 가장 좋은 곳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최고 리더의 역할은 이들 우수한 인재를 알아보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이라는 덕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나하고 친하냐 아니냐, 누구 편이냐 같은 사적인 편견은 조직을 망치는 독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위기에 빠진 삼성그룹의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의 용병술은 지금도 경구처럼 회자된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쓰지를 말고, 썼으면 믿고 맡겨라 (疑人不用, 用人不疑)”

삼성이 지금까지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창업주의 인재철학이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인사는 실력보다 요령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든다. 일에 대한 최선 보다는 아부와 편법 그리고 자리노략질이 난무하고 그 여파로 결국 기업은 망한다.

사람을 몇 명 내보냈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사람을 얼마나 확보 했는지가 중요하다.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이들을 어떻게 써먹을 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위 20%라고 생각해서 내보내봐야 또 하위 20%는 생겨난다는 파레토 법칙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량이 뛰어나야 하겠지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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