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시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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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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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까지만 해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조세제도의 거의 대부분이 뚜렷한 역진성을 띠었다. 가난할 수록 상대적으로 부담이 더 커지는 소비세 등 간접세에 주로 의존했다는 의미다(p176).
20세기초 누진세가 세계 곳곳에서 도입되었고,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미국에서는 1918년에는 소득세 최고율이 77%, 1944년에는 94%에 이르게 된다. 1932~1980년 즉 반세기동안 최상위 소득에 적용된 세율의 평균이 81%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볼셰비키 혁명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p177)
자본주의 엘리트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의해 전 재산을 몰수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리리 강력한 누진세를 수용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도 이미 누진세 도입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이 힘을 얻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단지 그 움직임에 불을 댕긴 것 뿐이다(p182)
물론 1929년 대공황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는 이 경제위기가 1차대전이나 러시아혁명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대공황으로 인해 미국인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할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루스벨트는 1930~1940년대에 누진세율을 역사상 전례없는 수준으로 인상하게 된다(p183)
이토록 강력했던 누진세제는 여러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 불평등이 감소하고 소득과 자산이 사회 상층부에 집중되는 현상이 완화됐다. 둘째, 사회계약 전반에 영향을 미쳐 세금 부담 증가와 부의 사회화 필요성에 대한 집단적 수용성이 높아졌다. 1914~1980년 동안에는 하위 납세자와 중위 납세자들이 부유한 경제 주체들에게 자신들 보다 훨씬 높은 세율이 적용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p186)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역진적으로 바뀌진 않았지만, 조세 제도의 실질적인 누진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상위 부자들이 중위 계급과 민중계급(하위계급)보다 더 낮은 실효세율을 부담하기도 하고, 대기업의 실효세율이 중소기업보다 더 낮은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세금에 대한 정치적 수용성과 사회적 연대 시스템의 정당성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p186)
일단 지난 세기에 일어난 평등을 향한 여정이 제한적 규모였다는 사실부터 상기하자. 극심한 소유의 집중이 여전히 존속한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물론 유럽의 경우 장기적으로 '중위자산계급'의 부상이 관찰된다. 가난한 하위 50%와 부유한 상위 10%사이에 있는 40%의 중간계급이 1913년에는 고작 10%를 조금 넘었으나 2020년에는 40%에 이른다(p204)
미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하위 50%가 전체 사적소유의 고작 2%를 차지하는 반면, 상위 10%는 72%를, 중위 자산계급은 26%를 차지한다(p204)
※ 위 글은 「평등의 짧은 역사」로 2024년 번역 출간된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Une brève histoire de l'égalité」의 내용을 인용해서 작성했습니다.
※ 참고로 토마 피케티는 지난 20년 동안 불평등의 역사를 주제로 각각 1,000쪽에 달하는 세권의 책들['20세기 프랑스 상위소득(2001)', '21세기 자본(2013)',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이 너무 방대해 독자들이 읽기 어렵다는 말에 요약해서 이 책을 발간했다고 적고 있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기회경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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