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일반 국민이 잊기 쉬운 7가지 경제상식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0.24 14:44 의견 0


세상 만물의 지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때 솔로몬이 얘기했다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모두 삶의 과정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기 마련이다. 유대인들은 그 이유로 “신(神)은 만민이 평등하게 선과 악,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경험하도록 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만큼 어떤 일이 닥쳐도 평정을 잃지 않고 견디는 힘이 세상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인간, 동물, 식물 등 생명체라고 불리는 존재는 생존(生存)이 가장 큰 문제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 문제’라는 얘기다.

경제의 지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을 꼽는다.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로서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건은 공짜로 받는 물건이다”라는 말도 있다.

현실 세계, 대한민국 상황을 보면 이러한 ‘경제의 지혜’가 왜곡되고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왜곡은 대체로 정치 때문에 일어난다. 정치는 ‘표를 먹고 사는 세상’인지라 사람들을 현혹해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경제의 원리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인은 늘 공짜(포퓰리즘)를 남발할 동기(인센티브)를 지닌다. 세금이든 빚이든 펑펑 써서 인기를 얻으면 권력을 계속 잡을 수 있고, 만약 권력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빚을 갚는 것은 새로 권력을 잡는 정치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정치인들은 늘 포퓰리즘을 남발하며, 큰 정부일수록 큰 포퓰리즘을 추구한다. 특히 세금 걷기에 주저함이 없고 재분배를 강조하는 좌파 성향의 정부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경제 상식을 무시하고 포퓰리즘을 추구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한 추리소설에 나오는 정치인은 근본적으로 정치가 지닌 못된 속성과 관련해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일을 하고 싶어도 권력을 잡지 못하면 불가능하지요. 표가 없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고, 민심을 외면하면 표를 얻을 수 없어요. 그래서 대중을 달래기 위해 선의를 희생해야 할 때도 있지요. 정치는 재미있는 게임이에요.”

한국 사회에서는 ‘경제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들여다보면 정치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다. 뉴스를 보는 빈도나 뉴스에 달린 댓글도 압도적으로 ‘정치 우위’다. 그러다 보니 경제에 대한 고민은 그리 깊지 않다. 경제학을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경제 상식이 사람들의 판단 기준에서 왜곡되고 변질되기 일쑤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 엉뚱하게 적용하는 경제 상식은 어떤 게 있을까.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

첫째, 경제에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진실은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가격이 높으면 소비자(수요자)가 구매를 꺼리므로 자연히 물건이 남아돌아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중국 고전인 <사기, 화식열전>에도 “물건값이 싸면 (공급이 줄어) 가격이 오를 징조이고, 비싸면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내릴 징조”라는 대목이 나온다. 학생들도 경제학 시험을 보면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답을 쉽게 고른다.

사람들은 이렇게 배웠는데도 현실 세계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무시하고 가격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많은 사람이 물건의 가격은 ‘원가+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고기가 정육점에서는 1kg에 1만 원인데 여기는 3만 원이 넘게 받으니 너무 한 거 아니야’라고 묻는다. 원가(재료비, 인건비 등의 합계)가 5천 원인 물건이 품귀 현상으로 2만 원에 팔았다면 폭리를 취했다고 비난한다. 작황이 좋지 않은 배춧값이 뛰면 ‘금(金)배추’라고 이름을 붙이고, 갈치 가격이 뛰면 ‘금(金)갈치’라고 표현한다. 정의감이 충만한 정치인과 교수 출신 관료들이 이런 주장에 앞장서고, 언론들도 여기에 가세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 웃기는 것은 자신들이 경제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면서도 ‘나는 경제를 잘 안다’고 우긴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분양가 상한제이다. 아파트 분양가를 ‘원가+이익’으로 정해 3.3㎡당 3천만 원이라고 정해 놓는 식이다. 주변 아파트는 3.3㎡(평)당 5천만 원이라면 누가 이렇게 싼 시세에 아파트를 짓겠는가. 혹시 이런 아파트가 분양되면 수요자가 급증한다. 당첨만 되면 평당 2천만 원의 공돈이 생기니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당연히 공급이 줄고 아파트값은 올라간다. 도심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주택 공급이 줄면 돈이 약간 있는 사람들도 주변부로 밀려난다. 주변부에 살던 더 가난한 사람들은 집값과 전세금이 오르니 더 바깥으로 나가야 하며, 아직 사회생활이 짧은 젊은이들은 방 한 칸 얻기 힘들어진다. 결국 분양가 상한제가 젊은이들의 방 구하기를 힘들게 만들 수 있다. 그게 시장에서 작동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그런데도 분양가 상한제를 고집하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심리를 활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과와 관계없이 “강남 집값 잡겠다”고 해야 강남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건값은 소비자가 정하고 소비자가 지불한다

둘째, 물건(사람)값은 소비자가 정하고 소비자가 지불한다. 높은 가격을 설정해도 소비자가 찾으면 팔리는 것이고, 아무리 낮은 가격이더라도 소비자가 외면하면 안 팔린다. 치킨 프랜차이즈업체가 통닭 한 마리에 2만 원에 팔고 있는데 그 옆의 전통시장에서는 닭 3마리를 1만 원에 판다. 그렇다고 치킨 2만 원짜리를 파는 업체가 나쁜 업체라고 할 수 있을까. 소비자들은 ‘통닭 가격의 차이’를 ‘품질과 양념, 서비스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정보로 인식한다. 소비자가 좋다고 사면 그걸 인정하는 게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이다. 실제로 이러한 가격에 개입하면 정보가 왜곡되며 소비자의 선택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정치적인 촉’이 발달한 사람들은 가격개입이 방법론적으로 단순하고 선전효과도 뛰어나므로 지극히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무상보육, 무상의료’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세상에 무상(공짜)은 없다고 그렇게 강조하는 데도 사람들은 ‘무상 혹은 공짜’라는 말에 현혹된다.

대표적인 가격개입으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를 들 수 있다. 최저임금을 높인 주역들은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인데 그들은 결정만 하고 뒤로 빠졌다. 그들의 엉터리 결정에 임금을 주는 주체인 기업만 죽어 나갔다. 기업은 한 시간 일해서 8천원 가치를 창출하는 직원을 시간당 1만 원에 고용하지 않는다. 손해를 볼 짓을 할 기업은 없다. 기업은 당연히 비용을 절감하고자 직원 숫자를 줄인다.

주 52시간제의 경우 능력 있는 직원은 상대적으로 야근의 필요성을 덜 느낀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직원, 혹은 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직원의 경우 야근을 피하기 어렵다. (공부의 철칙 ‘머리가 나쁘면 공부 시간을 늘려라’는 것처럼). 주 52시간제는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할 권리’를 박탈했고, 기업들은 성과가 나지 않으니 고용을 줄였다. 그게 ‘일자리 참사’를 불러 일으켰다. (국회의원으로서 주 52시간제를 강력히 주장했던 한 장관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없어지나?)

정책의 최우선은 소비자 이익이다

셋째, 정책의 최우선 기준은 소비자 이익이다.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제품과 서비스는 잘 팔리고 해당 기업은 돈을 번다. 그래서 시장의 권력은 소비자에게 있고 그래서 ‘소비자는 왕’이라는 표현을 쓴다.

문제는 소비자의 경우 단결력이 매우 약하다는 것. ‘정치적인 촉’이 발달한 사람들은 단결력이 약한 전체 소비자를 겨냥하는 게 아니라 특정 이익단체를 겨냥한다. 민노총의 얘기만 들어주고 정작 ‘노동의 소비자(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 목소리는 외면한다거나, 환경단체의 말을 듣고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못하게 막았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없으면 다리 아픈 노년층과 시간이 많지 않은 외국 관광객은 멋진 설악산을 볼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그렇게 선호하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없애면 결과는 어떻게 되나. 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은 이제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영재로 커나갈 기회를 잃게 된다. 흔히 ‘규제 완화’의 걸림돌은 이익단체들이다. 이익단체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는 한 규제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착한 정부, 착한 공무원은 없다

넷째,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착한 정부와 착한 공무원은 없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는 동서고금 이래 존재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 존재할 수 없다. 국민의 삶은 5천만 명 개개인마다 모두 내용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은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며 국가는 사회안전망 등을 통해 보완적으로 도와주는 데 그쳐야 한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맞다.

정부는 넓게 봐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구성원들은 정치인과 관료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인과 관료를 ‘착한 존재’라고 하지 않는데, 그들이 구성원인 정부가 착해질 수 있을까. 과거 사회주의 국가는 ‘큰 정부, 국가 주도, 계획경제’를 추구했고, 여기서 관료들은 큰 국가의 전위부대 역할을 했다. 공무원의 ‘정치 권력은 곧 경제 권력’이 되고 관(官)의 입김이 커질수록 민(民)의 목소리는 줄어들었다.

극단적인 관(官) 주도사회가 바로 소련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였으며, 이들 사회에서는 ‘부패한 특권 공무원층’이 모든 것을 거머쥐었고 뇌물과 비리가 만연했다. 경제는 엉망이 되고 국민들은 공포와 억압, 빈곤 속에서 신음했다.

적자를 내는 가정 기업 국가는 망한다

다섯째, 적자를 계속 내는 가정이나 기업은 망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재정 집행을 통해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 돈이 대통령이나 장관 지갑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국민 지갑에서 나왔는지 생각해보자. 자신의 지갑에서 나온 돈이면 아껴 쓰지만,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펑펑 쓰는 게 인간의 심리다. 정치인과 관료의 예산 집행은 그런 측면에서 개개인들의 소비보다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가정이나 적자가 계속되면 파산하고 가족은 신용불량자가 된다. 기업이 계속 적자를 내면 결국 파산하고 문을 닫으며 종업원들은 직장을 잃고 협력업체는 대금을 떼인다. 재정도 적자가 계속되면 나라가 망하고 젊은 세대는 빚더미에 눌려 신음하게 된다. 남미의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유럽의 그리스 등이 모두 그렇게 망국의 길을 걸었다. 볼리비아와 좌파 사회주의자인 모랄레스는 나라를 말아먹고 국민들의 분노에 직면해 멕시코로 도망쳤다.

이탈리아 말에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라는 표현이 있다.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종교 표현인데 정치와 경제에서도 이 말이 적용되는 두 직군이 있다. 공무원과 기업인이 그들이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공무원에게는 예산을 낭비하는 죄이고, 기업인들에게는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죄이다. 과연 대한민국에서는 누가 ‘페카토 모르탈레’를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

경쟁이 곧 휴머니즘이다

여섯째, 경쟁이 궁극적으로 휴머니즘이다. 일부 학자나 교수들이 ‘자유경쟁은 자기파괴적 경향’ 즉 독점을 초래하는 경향을 지니므로 국가가 경쟁을 활성화하거나 독점을 규제해야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엉터리 경제 상식을 일반 시민이나 학생들에게 전파하는 악당이 아닐 수 없다.

자유경쟁을 없애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발전이 없게 된다. 과거 소련은 우주선을 쏘아 올렸어도 삶에 필요한 전자제품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상부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세상에서 새로운 소비제품을 만들어야 할 인센티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었다가는 ‘명령 불복종과 자원 낭비’의 혐의로 처형당하기 쉽다.

우리는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를 통해 ‘농단(壟斷)’이란 단어의 유래를 알게 됐다. 농단은 ‘옛날 어느 남자가 시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두루 살핀 후 좋은 자리를 잡아 물건을 모두 팔아치웠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으며, 그로부터 농단은 거래를 좌지우지해 이익을 독차지한다는 의미가 됐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농단’이란 바로 ‘상부 지시’를 의미한다. ‘상부 지시’는 곧 모든 거래에 대한 독점을 뜻한다. 좌파들이 경쟁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다는 것은 곧 ‘독점 허용’을 뜻하고, 실제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그게 국가나 국영기업의 독점으로 나타났다.

독점이 얼마나 나쁜지는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잘 설명했다. 그는 “독점가격은 소비자를 쥐어짜는 가장 높은 가격이며, 소비자들이 그 돈을 주고 사겠다고 어쩔 수 없이 동의한 꼴이 된다. 반면 경쟁을 통해 이뤄진 가격은 판매자들이 일반적으로 택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가격인 동시에, 기업이나 상인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격이다”고 설명했다.

경쟁이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나쁜 적이라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순대국 거리, 떡볶이 거리, 족발 거리의 형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들 거리를 가보면 가게마다 경쟁이 치열한데, 그게 오히려 해당 거리를 키운다. 그러한 경쟁을 영어로 ‘선의의 경쟁(emulation)’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주변 경쟁자의 장점을 받아들여 자기 가게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과정의 연속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쟁은 손님들로 하여금 더 좋은 음식을 맛보게 하고, 가게들을 더욱 번창하게 만든다.

사회주의 국가처럼 이러한 경쟁이 싫다고 없애면 결국 가게는 한 군데만 남을 것이고, 손님들은 서비스와 맛의 개선이 전혀 없고 불친절한 가게만 이용하게 될 것이다. 독점을 누리는 가게는 수요에 맞춰 제대로 공급하지 않게 되고, 그러한 공급부족은 줄서기 현상을 초래한다. ‘경쟁을 없앤 이상사회’가 바로 사회주의 국가였고 거기에서는 예외없이 ‘줄서기 낙원(Queuetopia)’이 펼쳐졌다. 줄서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권력자에게 뒷돈을 줘야 했는데, 줄을 감독하는 경찰이나 공무원들은 뒷돈을 받아 호화롭게 살 수 있었다.

기업이 경제를 굴리는 에너지다

일곱째, 경제가 잘 굴러가게 하려면 기업인이 마음껏 경영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인을 옥죄는 나라는 예외 없이 경제가 망가졌다. 사회주의나 독재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기 전에 열심히 구애작전을 벌였다. 마오쩌둥은 모든 불만 세력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약속함으로써 정권을 잡았다. 농민에게는 땅을, 소수민족에게는 독립을, 지식인에게는 자유를, 사업자에게는 사유재산의 보호를, 노동자에게는 과거보다 높은 생활 수준을 약속했다. 중국 공산당은 ‘新(신)민주주의’라는 기치 아래, 즉 가장 강력한 적들을 제외한 모든 세력에게 협력을 약속함으로써 다수를 규합했다. 통일전선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당 같은 수많은 비공산주의 조직들이 공산당의 지배를 받으며 정권에 동조했다.

이러한 약속들은 하나씩 파기되었다. 마오쩌둥은 ‘다수의 지지를 얻고 소수를 반대하여 모든 적을 각개 격파하라’는 전략으로 모든 분야의 반대자들을 차례로 제거해 나갔다. 예컨대 기업가들은 ‘노동계급의 착취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자아비판을 강요했으며, 근로자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 1952년 당시 단 2개월 동안 상하이에서만 600명이 넘는 기업가와 사업가, 소상인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기업인을 적대시한 중국에서 경제는 발전할 수 없었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은 이후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면서 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 대략 7가지 경제 상식을 얘기했는데, 한국 사회에는 과연 이러한 경제상식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을까? 이러한 경제상식이 무너진다면 경제 발전은 이뤄지기 어렵고 국민의 삶은 개선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대한민국은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이른 것 같다.

자유시장경제의 옹호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세상 이치와 사람들의 못된 인성에 대해 명언을 남겼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표현들이다.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남들의 이익을 빙자해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정부를 좌우하게 되면 일반 시민의 경제적 복지는 줄어든다."

“평등이 자유보다 우선인 사회는 평등과 자유 둘 다 얻지 못한다. 자유가 평등보다 우선인 사회는 둘 다 얻는다.”

코라시아, 필명

저작권자 ⓒ 수도시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