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사업계획을 짜야 하는데 올해 상황을 보면 내년에 무슨 사업을 해야 하는지 경영층에서 방향조차 나오지 않고 있어서 내년 사업계획 준비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현재 대표이사부터 주요 임원들이 올 연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담당임원들조차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 건설사의 한 임원이 한 얘기로 현재 건설업계의 현실을 한마디로 정리한 내용이다.
올 3분기 건설사 실적 발표가 시작되면서 건설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 속에 연말 인사태풍을 예상하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 22일 발표한 현대건설의 잠정실적이 예상보다 크게 나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현대건설의 올 3분기 실적은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1% 늘어난 8조2569억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이 53.1% 감소한 1143억원을 기록했고, 순이익은 401억원으로 77.9%나 감소했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로는 늘었지만 전분기 대비로는 4.2% 하락하는 등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어 전반적으로 어닝쇼크 실적을 내놨다
4분기 실적은 수익성 측면에서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분기기준으로 순손실 발생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현대건설이 발표하는 실적에는 현대엔지니어링 실적까지 포함된 것으로 두 회사를 구분할 경우 현대건설은 이미 적자로 돌아섰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실적 추이는 현대건설 만의 문제가 아닌 건설업계 전반에 걸친 공통된 현상으로 건설업계 ‘어닝쇼크시즌’에 따른 연말 인사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일단 주택사업에서부터 실적이 꺾인 현대건설은 주택 관련 분야의 인사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특히 올해로 4년째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윤영준 사장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윤 사장은 지난해 3년 임기를 마치고 1년 더 연장된 상황이다.
문제는 과거 윤 사장이 수주한 대형 재건축 프로젝트들의 매출이 가시화되면서 손실이 반영된 것이 실적악화로 이어졌다는 면에서 책임론과 함께 연말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우건설은 이미 2분기분터 어닝쇼크를 겪었는데 3분기 역시 어닝쇼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분기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은 -13%, -51.9%, -52.7% 각각 감소한 데 이어 이번 3분기 영업이익은 1000억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백정완 사장의 거취도 변동성이 높아졌다. 일단 올해로 3년 만기를 채우는 상황에서 실적과 주가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는 가운데, 최근 부회장으로 영입한 정진행 전 현대건설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거나 정 부회장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인물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올해로 중흥 인수 3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임원 물갈이 가능성이 회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벌써부터 후임 사장이 거론되는 등 뒤숭숭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 역시 오세철 현 대표이사 임기가 올해로 끝나 연임여부가 관심사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위기론에 따른 11월 조기 임원인사가 예정돼있는 만큼, 삼성물산에도 그 여파가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건설 중단에 이은 평택 반도체 공장 셧다운으로 인해 삼성물산 공사물량이 줄어드는 등 경영악화 요소가 점차 커지고 있어 그룹 인사 태풍 분위기 속에 삼성물산 역시 변동폭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GS건설은 매를 먼저 맞은 상황이어서 큰 폭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 전망이다. 지난해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이후 올 초에 허윤홍 오너체제로 전환하면서 조직 정비를 한 상황이고 지난해 사고로 인한 손실을 어느 정도 털어낸 상황이어서 현재는 허 대표 중심의 조직 구축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다.
GS건설은 이미 지난해 말에 17명의 임원을 내보냈고, 신규로 15명의 임원을 새로 선임해 허 대표 중심의 임원 물갈이가 이뤄진 상황이다.
이 외 DL이앤씨는 올 7월 새 대표로 박상신 주택사업본부장 겸 DL건설 대표를 선임한 이후 이번달 초 서둘러 임원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이미 지난 3월 마창민 대표가 물러나는 시점에 임원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비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18명의 임원을 내보냈다. 전체 57명의 임원 중 3분의 1을 내보낸 것이다. 이번 10월 초 인사에서는 6명의 임원이 신규로 선임됐다. 결과적으로 올해 12명의 임원이 줄어든 셈이다.
환경플랜트 등 환경 관련 신사업 추진에 몰두하면서 회사명도 바꾼 SK에코플랜트는 이달 대대적인 임원 정리에 나섰다. 임원 66명 중 17명을 내보냈다. 이유는 실적악화에 따른 책임론이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1월 그룹 내 재무통으로 알려진 장동현 SK 부회장을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로 선임한 이후 지난 5월에는 역시 재무통인 김형근 SK E&S 재무부문장을 신임 사장으로 내정하면서 신사업 등 투자보다는 재무적 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은 악화된 실적과 함께 IPO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업계에서는 분석한다.
지난 8월 신동빈 회장이 비상경영을 선포한 롯데그룹의 롯데건설 역시 그룹 위기의 단초가 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임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에서 가장 어려운 계열사가 롯데케미칼인데, 본업의 어려움과 함께 44.02% 지분을 가진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롯데케미칼 유동성위기로 전이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롯데건설은 그동안 공격적으로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PF리스크의 중심에 서있는 상황이다.
올 상반기 기준 롯데건설의 PF보증규모는 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기 도래하는 3조원 이상의 PF를 해결하기 위해 5대시중은행을 포함해 KDB산은, 증권사 등을 통해 2조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PF 매입펀드를 조성했지만 역부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CEO는 그룹 재무전문가 출신인 박현철 부회장으로 아직 임기가 1년 남아있어서 대표 교체 가능성은 낮지만, 주택사업 관련 임원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그룹 회장이 올 3월 교체된 데 따라 같은 시점에 전중선 사장이 취임한 관계로 대표 교체 가능성은 낮지만, 실적 악화로 이미 임금 15% 삭감을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말 임원 구조조정 역시 예상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 2~3년 간 공사원가 상승에다 부동산 경기 악화가 겹치면서 지방 주택현장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올해 그러한 실적들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2분기부터 실적이 꺾이고 연말로 가면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문제는 내년 사업계획에 대해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는 실정이어서 내년에 대한 불안이 더 큰 상황이다”고 우려했다.
이주연 기자
저작권자 ⓒ 수도시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