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윤 대통령의 거친 드레스코드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0.23 07:00 | 최종 수정 2024.10.23 10:18 의견 0
70년대 초 중국 총리인 주은래와 미국 국무장관인 키신저는 세계 외교무대의 중심인물로서 미중 수교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미중 수교는 주은래가 사망한 지 3년이 지난 1979년 이뤄졌다.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의 만남은 개운치 못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대화의 내용에서 알맹이가 없는 것은 이미 예상 했지만, 대통령이 여당 대표인 한동훈 대표를 대하는 프로토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구내식당 같은 테이블에 한쪽에는 대통령이 다른 한편에는 한 대표와 정진석 비서실장이 앉아 사진상으로 보면 대화가 아닌 무슨 지시를 주고 받는 자리로 보인다.

잠깐의 산책 장면에서도 양복 외투 단추도 잠그지 않은 대통령의 걸음걸이는 북한 김정은의 보스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부하들을 거느리고 과시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잠시 서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속에서 대통령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것도 아주 의아해 보였다.

드레스코드라는 것이 있다. 장소에 맞게 상대에 맞게 옷과 코디네이션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겉 모습인 의상에 맞는 행동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 행동을 프로토콜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의전이고 예의를 말하는 것이다.

과거 자신의 오랜 세월 부하였고,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그러니 편하게 했을 수도 있겠지만, 사석에서라면 몰라도 그 자리는 현직 대통령과 여당대표가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다. 그에 맞는 드레스코드와 프로토콜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건희 여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윤 대통령 당선 당시 김 여사는 내조에 전념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대통령의 의상이나 태도 말씨 이런 것에 대해 감히 주변에서 직언하기 어려운 부분을 지적하고 고쳐주는 것이 내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그런 장면을 국민에게 보여주려고 했을 수도 있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건 정치인으로서 너무나 미숙한 판단이다. 정치판 고수들이 염두에 두고 실천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 “친구는 가까이, 그러나 적은 더 가까이”란 말이다.

대통령의 그날 태도로 봐서는 한 대표는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닌 그냥 맘에 안드는 부하로 보였다. 그 장면을 본 국민들은 과연 대통령을 멋있다고 하고 한대표를 시원찮다고 할까?

지난 하루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통령의 어른답지 못한 처신에 그래도 한 대표가 넉넉함을 보였다는 의견이 많다. 한 대표가 그런 대통령의 의도를 몰랐을 리 없지 않겠는가.

중국 역사에서 외교와 처신의 신으로 불리는 주은래(저우언라이)가 생각 난다. 아무리 사소한 손님이라도 최선을 다한 것으로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많은 존경을 받은, 모택동 시절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그의 손님맞이 철칙은 “손님에게 최선을, 그리고 그 좋은 기회를 통해 나의 목적을 이루자”였다.

주은래는 자주 손님을 모셔 만찬을 했는데, 만찬 시작 전에 항상 주방에 나타나서는 주방장에게 국수 한그릇 말아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곧 좋은 음식을 먹게 되는데 그 전에 부실한 국수를 먹는 것을 이상히 여겨 한 번은 주방장이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주은래가 말하길 “손님을 모셔놓고 내가 음식 먹는데 집중하면 손님 불편한 것을 챙길 수가 없지 않겠나. 그리고 내 배가 불러 있어야 느긋하고 편한 분위기를 이끌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는 것은 지금도 디테일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주은래 시절 미국과 중국은 냉전중이었지만, 미국의 국무장관인 키신저와 중국의 외교 총괄 주은래가 있어서 정상적인 평화외교가 있었다.

1923년생인 헨리 키신저에 비해 1898년생인 주은래는 스믈다섯살 많은 삼촌뻘이었지만, 그러나 주은래는 한 번도 키신저를 자기보다 젊은이 취급을 하지 않고 동등한 상대로 여겼다고 한다.

훗날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키신저는 모택동을 비롯해 등소평, 강택민 그리고 주은래를 평가했다고 하는데, 주은래에게 최고 점수를 줬다..

그는 주은래에 대해 “60여년 공직 생활에서 주은래보다도 더 강열한 인상을 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키는 작지만 우아한 자태며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번득이는 눈빛으로 탁월한 지성과 품성으로 좌중을 압도했으며 읽을 수 없는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어 보았다”

자칫 꼰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이 많은 주은래가 외교의 제갈공명으로 불리는 키신저의 마음을 사로잡고 적국의 인물이지만 존경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검소하지만 항상 단정한 옷차림과 행동 그리고 말씨 모든 것에서 상대방이 항상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드레스코드와 프로토콜로 인해 주은래가 있는 자리는 항상 좋은 대화가 오갔고 모두가 좋은 성과를 가져갔다고 한다.

생각은 말을 지배하고, 말은 행동을 지배한다. 드레스코드나 프로토콜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생각의 표현이다.

대통령도 취임 초기 도어스태핑 중단 이유는 한 매체 기자가 슬리퍼 복장으로 거친 질문을 한 것이 화근이 됐던 걸로 기억한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드레스코드와 프로토콜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이제 입장이 바뀐 처지가 된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문 정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내로남불을 지적하지 않는가.

그것까지도 반복돼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대통령과 당 대표가 만나는 자리는 무대위의 배우들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는 김 여사가 좀 더 챙겨줬으면 한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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