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방어논리가 농산물 수입 논쟁으로…한은, 농산물 수입확대 주장

-식량전쟁 및 식량안보 시대에 역행하는 한은의 발언에 발끈한 농업계
-물가지수 품목 중 3.8% 비중인 농산물에 대한 가중치 계산해야 지적

이주연 기자 승인 2024.06.21 06:25 의견 0
한국은행. 사진=수도시민경제

한국은행이 당초 대통령실의 금리인하 주장에 대한 대항논리로 내놓은 한국의 높은 생활물가 통계가 농산물 수입논쟁으로 번졌다.

지난 18일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그 이틀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금리인하 환경이 조성됐다고주장한 데 대해 우리나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둔화하고 있지만 의식주 비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크게 높은 탓에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통계수치를 내놓으면서, 금리인하에 대한 판단은 한국은행 고유의 영역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통계가 나오면서 불똥이 엉뚱하게 농산물 수입 논쟁으로 번졌고, 농업계는 농산물 수입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발끈하고 나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8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 간담회’에서 “한은의 목표는 물가안정이며, 물가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통화정책만으로 할 수 있는 것에는 여러 제약이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를 정부에서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줬으면 좋겠다”면서 농산물 수입 확대 등 대안을 거론 했다.

한은은 ‘우리나라 물가 수준의 특징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전체 물가 수준은 주요 선진국의 평균 수준이지만 필수 소비재인 의식주 물가는 OECD 평균인 100보다 55%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의식주 가운데 식료품과 의류·신발은 OECD 평균보다 약 1.6배, 주거비는 약 1.3배 높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농산물 가격이 높아지는 이유로 낮은 생산성과 개방도, 비효율적인 유통구조를 지목했다. 임웅지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차장은 “국내 농업은 농경지 부족, 영농 규모 영세성 등으로 생산성이 낮아 생산 단가가 높고, 일부 과일·채소의 경우 수입을 통한 공급이 주요국에 비해 제한적인 데다 농산물의 유통비용도 상승하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고 평가했다.

임 차장은 “만약 이를 통해 우리나라 식료품 가격이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아진다고 가정할 경우 가계의 평균 소비 여력은 평균적으로 약 7%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은의 분석에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농산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낮은 현실을 배제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물가지수를 구성하는 품목 중 농산물 가중치를 고려하면 수입으로 농산물 가격을 조정하는 것은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농산물의 소비자물가 내 가중치는 3.8%로 다른 품목에 비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를 조사할 때 각 품목이 가구의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가중치를 둔다. 섬유제품·내구재 등을 포함한 공업제품의 가중치는 34%, 집세, 공공·개인 서비스 등으로 구성된 서비스는 55% 수준이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농산물 가격은 소비자의 관심도가 높기 때문에 통화당국이 주목하는 것”이라면서도 “단순히 가격을 이유로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은 국내 식량 공급 기반을 무너트릴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고용 악화 등 사회적 비용을 더 키우는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농민단체들은 한은의 의견에 반발하며 농업 생산기반을 튼튼하게 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은 19일 논평을 통해 “작금의 농산물 가격 상승은 기후재난이 근본 원인”이라며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이러한 현실은 외면한 채 정부의 근시안적 (수입의존) 정책에 편승하는 작태가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농협의 한 간부는 “세계는 이미 식량전쟁에 돌입해있는 상황이어서 식량안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세계의 블록화에 더해 기후변화로 각국이 식량안보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축수산물 자급률이 떨어질 경우 언제라도 식량식민지가 될 수도 있는데, 한은이 단순히 생활물가 수준을 비교하면서 농산물 수입을 서두른다면 국내 식량자급 기반이 무너져 중장기적으로 식량재앙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미국이나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식량 자급률을 높게 유지하고 있고, 심지어 일본의 경우에는 자국의 쌀을 비롯해 농산물 보호를 위한 별도의 물가체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농산물 자급자족에 힘쓰고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은이 대통령실의 금리인하 압박을 막기 위해 꺼내든 농산물 등 생활물가 수치가 농산물 수입 논쟁으로 번지면서 식량자급으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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