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담론>의 허구15 – 교도소는 사회적 약자가 가는 곳? ‘서민의 현실 삶’을 몰랐던 책상머리 ‘헛똑똑 지식인’의 자기합리화인 듯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17 07:22 의견 0

좌파 지식인을 대표한다는 신영복의 이미지는 소리장도(笑裏藏刀)입니다. 좋은 인상을 보이면서도 내심은 악의를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 당나라 시절 간신으로 유명했던 이의부(李義府)라는 사람의 이야기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신영복은 ‘세계 인식 혹은 인간 이해의 공부’를 말하면서도, 좌파 이념이나 사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감옥 예찬’을 일삼는데, 이는 신영복이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없었던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려는 뜻으로 보입니다.

신영복은 ‘감옥은 사회적 약자가 가는 곳’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경찰서나 검찰청을 드나들지 않고 감옥의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은 ‘사회적 강자’라는 말이 되나요? ‘교도소 가지 않는 사람은 사회적 강자’라는 표현이 지나친 비약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 대부분은 교도소에 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교도소에 간 사람이 사회적 약자라는 논리가 맞다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엉망이라는 얘기이고 대한민국이 지금 3만달러 시대를 맞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며칠 전 사진을 보니 중미 국가인 엘살바도르의 교도소에 죄수들이 가득하던 데, 머리 빡빡 깎은 그 사람들도 사회적 약자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영복은 <담론>에서 다음처럼 말합니다.

“적어도 인간 이해에 있어서 감옥은 대학이었습니다. 20년 세월은 사회학 교실, 역사학 교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학’의 교실이었습니다.” ...(중략)

“인간적 신뢰나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용 관계가 인간관계의 보편적 형식입니다. 고용관계란 금전적 보상 체계입니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인간관계에 신뢰나 애정이 담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교도소의 인간관계란 금전적 관계도 아니고 명령과 복종의 권력 관계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인간적 바탕 위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일종의 예술입니다. 너무 잘나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못 나서도 안 됩니다. 그 사람의 인간성이 일상생활을 통해 검증되어야 합니다.”

교도소에 가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며, 현실 세계에서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신영복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보지 않다 보니,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교도소라는 좁은 공간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감옥=인간학의 교실’이라고 하겠지요.

신영복이 감옥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사례로 든 경우도 매우 이상합니다. 반미(反美) 빨치산이나 공산당 출신을 예찬합니다. 묘합니다. 신영복은 감옥에서 석방 직후 월간지 <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통혁당 가담은 양심의 명령 때문이었다. 난 사상을 바꾼다거나 동지를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사실상 전향 사실을 부인한 것입니다. 신영복의 민낯을 잘 모르는 분들이 꼭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신영복의 <담론>에 나은 글을 다시 소개합니다.

“어느 교도소든 그 도시의 조직폭력배들이 교도소를 장악합니다. 출소 3년 전에 전주교도소로 이송되었습니다. 전주교도소 역시 전주 조폭들이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조폭들속에 북에서 내려온 젊은 공작원 친구가 하나 끼어 있었습니다.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124군부대 같은 특수부대 출신이었습니다. 징역 초년에 전주 조폭들과 맞짱 뜬 이야기가 신화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자기가 북한 출신 마이너리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세 명을 상대로 맞짱 뜨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대도 맞지 않았습니다. 전주 조폭들이 그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야밤에 임진강을 도강할 때 미군 경비정이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수색했습니다. 과연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표현을 쓰는 걸가요?) 지금은 출소해서 전주에서 살고 있습니다....(중략)

지리산 이야기 하나만 소개합니다. 1960년경 아마 최후의 빨치산이었을 것입니다. 토벌에 쫓기다 캄캄한 야밤에 작은 동굴로 스며듭니다. 새벽에 날이 밝아오면서 옆에 죽은 시신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죽은 지 몇 년이나 되었던지 시신은 거의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총상을 입고 동굴이랄 것도 없는 바위틈새로 숨어 들어와서 숨을 거둔 시체였습니다. 그런데 저만큼 벗어놓은 베낭이 있었습니다.

혹시 챙길 것이라도 없을까 하고 뒤졌습니다. 양말 쪽 하나 없는데 그 속에서 <공산주의 ABC>라는 조그마한 책자 하나가 나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지리산에서 죽은 빨치산의 배낭에서 나온 <공산주의 ABC>. 감동이었습니다. 자기도 사실은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고 산에 들어와서 지금껏 쫓기고 있었습니다. 죽기 전에 이걸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책을 챙겼습니다.

<공산주의 ABC>는 니콜라이 부하린이 쓴 책입니다. 러시아의 최고 이론가였습니다. 레닌의 모든 저작에 부하린이 관여했다고 전합니다. 아마 스탈린에게 처형당했을 것입니다. 스탈린과는 경제정책을 놓고 대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해방 직후에 서울에서 번역본이 출판되었습니다. 김삼룡(金三龍) 번역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물론 보지 못했습니다. 최후의 빨치산이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죽더라도 왜 죽는지 알아야겠다고 끝까지 그 책을 가지고 다닙니다. 나중에 체포되면서 책이 사라집니다.

<공산주의 ABC>는 참으로 역사적인 책입니다. 그 책을 그가 대전교도소까지 가지고 왔더라면 내가 물려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요. 역사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그처럼 생동적입니다. 역사책 속의 역사와는 사뭇 다릅니다. 화석화된 역사가 아니라 피가 돌고 숨결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역사가 됩니다. (김삼룡은 남조선노동당의 서울지도부 책임자로 활동한 인물)”

신영복의 글은 줄곧 ‘감옥 예찬’입니다.

“감옥은 최고의 변방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교실입니다. ...(중략) 교도소는 변방의 땅이며, 각성의 영토입니다. 수많은 비극의 주인공들이 있고, 성찰의 얼굴이 있고, 환상을 갖지 않은 냉정한 눈빛이 있습니다. 대학(大學)입니다. ...(중략)”

“‘임꺽정’은 결코 강자가 아닙니다. 약자입니다. 기름진 벌판에서 살아갈 수 없는 약자입니다. 신동엽의 시 <진달래 산천>에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화전민과 산사람을 비롯하여 천주학 하는 사람도 산으로 갔습니다. 동학군, 빨치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은 약한 사람들이 쫓겨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나는 교도소를 산(山)이라고 정의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쫓겨 들어온 산이 교도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신영복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람들에게 신영복은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것같고, 유시민 김제동(신영복이 교수를 지낸 성공회대 출신) 문재인(“신영복은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함) 등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영복을 존경한다는 분들은 감옥 가기를 참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범법 혐의로 구설에 오르면 변명과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적극적으로 방어하니까요.

코라시아,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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