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담론>의 허구3 – 계몽주의는 진짜 무용(無用)?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12 21:48 | 최종 수정 2024.06.13 18:45 의견 0

신영복은 계몽주의(啓蒙主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계몽주의의 프레임을 허물어야 합니다. 계몽주의는 상상력을 봉쇄하는 노인 권력입니다. 생생 불식(生生不息),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온고(溫故)보다 창신(創新)이 여러분의 본령(本領)입니다. ...(중략) 계몽주의의 모범과 강의 프레임은 이 모든 자유와 가능성을 봉쇄합니다.”

신영복이 ‘상상력을 봉쇄하는 노인 권력’이라고 부르는 계몽주의는 뭘까요? 계몽주의는 프랑스어로 뤼미에르( Lumières)인데 ‘빛’이란 뜻입니다. 17~18세기에 프랑스를 기점으로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문화적, 철학적, 문학적, 지적 사조입니다. 대표적인 학자로 합리주의 철학자인 바뤼흐 스피노자, 자유민주주의 정치사상가인 존 로크, 만유인력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 등이 있습니다.

계몽주의는 이성을 통해 사회의 무지를 타파하고 현실을 개혁하자는 일종의 사상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이 깨부수고 싶어한 전근대적인 어둠이란 전근대적이며 봉건적 권력, 종교적인 권위, 특권, 부정, 압제(壓制), 인습(因習), 전통, 편견, 미신(迷信) 등이었습니다. 전근대적인 어둠을 물리치고, 밝은 이성을 비추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사회 형태와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냉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한 민주주의, 그들이 중시한 자연법 중심의 법치 사상, 그들이 확립한 과학적 세계관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통째로 바꿨습니다. ‘종교와 전제의 압박’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오랜 무지에서 깨어났고,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며 산업혁명이 생겼습니다. 인류는 ‘자유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시장경제(자본주의)’의 장점을 깨달았고, 19세기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류는 길고긴 '가난과 배고픔의 고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서유럽과 달리 동양에서는 계몽주의가 없었습니다. 17~18세기 조선의 실상을 보면 주자학의 굴레, 왕이라는 전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중국과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7세기까지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동양권은 ‘계몽주의로 무장한 서양세력’에 밀려 온갖 수모를 겪었습니다.

신영복이 ‘노인 권력’이라고 부르는 계몽주의를 부정하는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계몽주의에 머물지 말고 그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신영복의 표현을 보면 왠지 계몽주의를 깎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서양권에서 계몽주의를 부정하고 나타난 게 19세기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입니다. (신영복의 계몽주의 폄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미화가 목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몽주의는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매우 중요한 사조(思潮)’입니다. 인류는 과거 – 현재 – 미래로 이어지는 존재입니다. 과거를 부정하고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수도, 만들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전통과 유산(legacy)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특히 보수는 리거시(legacy)를 매우 중시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코라시아(필명), 블로거

<오피니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전혀 관계 없음을 밝힙니다>

저작권자 ⓒ 수도시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