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담론>의 허구11 – 대안 없는 비난자들, 인류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이를 부정하는 이중성을 보자!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12 19:13 | 최종 수정 2024.06.13 18:48 의견 0

신영복은 평생 좌파적 사고를 간직하면서 살다 보니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만들어낸 문명과 문화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흔히 ‘현대 문명은 모순덩어리다. 현대 문명의 종착지는 멸망뿐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미국의 좌파학자인 노엄 촘스키가 대표적입니다. 노엄 촘스키는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며,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2006년)>를 비롯해 수많은 책에서 ‘미국 자본주의는 곧 망할거야’라고 외치는데 역설적으로 미국 경제는 계속 강해지고 있습니다. (1928년생인 노엄 촘스키는 아마 미국이 망하기 전에 먼저 세상을 하직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집니다. 몽상에 사로잡혀 수십 년 동안 허튼소를 해온 노엄 촘스키를 좌파 지식인들은 참 좋아합니다.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신영복이나 노엄 촘스키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자리매김하면서 현대 문명에 칼날을 들이댑니다.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대부분 ‘마땅한 대안(代案)’이 없습니다. 그저 무대책으로 일관하면서 목소리만 높인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건전한 비판자(批判者)가 아니라, 세상을 어지럽히는 불건전한 비난자(非難者)’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신영복은 <담론>에서 다음처럼 이야기합니다.

“노자 철학을 압축하여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지인의 법칙인 도(道)를 본받는 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도법자연(道法自然)입니다. 최고의 궁극적 질서가 자연입니다. 노자 철학의 근본은 궁극적 질서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그것에 발 딛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층 건물에서 내려와 땅 위에 발 딛고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강물이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나뉘어 흘러오다가 두물머리에서 합강(合江)하고 다시 서울을 환포(環抱)하면서 서해로 흘러갑니다. 이러한 강물의 곡류는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가장 안정적인 질서입니다. 곳곳에 댐을 막아 강물을 돌려놓지만, 홍수가 한 차례 지나가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이 영위하는 수많은 인위적 규제와 문화도 결국은 자연이라는 궁극적 질서로 복귀합니다. 그것이 도 법자연입니다. 가장 안정적인 시스템이 자연입니다. 노자는 분명히 4대강 사업을 반대할 것입니다.(참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자연의 질서에 가하는 일체의 인위(人爲)는 자연이라는 질서로 보면 거짓입니다. 인(人)과 위(爲)를 합하면 거짓 위(僞)가 됩니다. 인위는 참다운 것이 아니고 최고가 아닙니다.”

신영복의 말은 왠지 그럴듯해 보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쳐댔던 장 자크 루소를 연상시킵니다. 그는 "자연은 인간을 선량·자유·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사회가 인간을 사악·노예·불행으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류의 문명은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재해를 극복’하면서 발전했습니다. 인류의 4대 문명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문명은 모두 거대한 강변에서 발생했습니다. 인류는 지혜를 발휘해 자연을 적절히 활용했고, 그 결과 지금 전 세계에 약 80억 명의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인류가 오랜 세월 이룩한 문명을 깡그리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연에 손끝 하나 대지 않는다면 수렵채집의 시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인류는 대략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에 농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농경 활동을 시작하고 도시를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학자들은 농경을 시작할 당시의 세계 인구는 약 500만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농업혁명 이전, 원시 자연으로 돌아가면 80억 명 가운데 500만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아마 굶주림으로 생명을 잃어야 할 겁니다.

인류의 인구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현대 문명의 모습을 만들었는데, 현대 문명을 깡그리 무시하고 산업혁명 이전으로 돌아가면 80억 인류 가운데 70억 명이 살길이 없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1750년 당시 세계 인구는 약 10억 명이었습니다.

신영복은 ‘노자는 분명히 4대강 사업을 반대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댐과 보를 건설하는 것에도 부정적입니다. 그러한 신영복도 현대 문명의 핵심인 전깃불 밑에서 글을 썼을 테고, 한강의 댐에서 끌어온 물로 음식을 조리하고 몸을 씻고 목마르면 마셨을 것입니다. 강연하러 집을 나서거나 이동할 때는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나 전철을 이용했을 겁니다. 그 이전에 지금의 선진 대한민국이 없었다면 신영복 같은 ‘현대 문명의 비판자로’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순전히 강의만 해서 먹고살기가 참 힘들었을 겁니다. (일제시대 당시 지식의 비참한 삶은 현진건의 <빈처>에 잘 나와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빈곤국가에서는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어 제 식구 하나도 건사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최고 대학을 나온 빈곤국 인재가 한국의 공장에 취직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들은 사실이 이러함에도 대안 없이 현대 문명 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쌓아올린 업적에 대해 그저 ‘반대, 반대, 또 반대...’로 일관합니다. 이는 그들의 발이 땅이 아니라 허공을 딛고 있으며, 그들의 두뇌가 사실이 아니라 허상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즉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와는 담을 쌓은 ‘거짓과 위선의 지식인, 대안 없는 거짓말 전파자’들의 목소리에 현 세대는 물론 우리 미래 세대가 절대 속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코라시아(필명),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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