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담론>의 허구13 – 민주당은 왜 대한민국 국민소득이 일본을 추월한 사실을 애써 외면할까?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12 19:07 | 최종 수정 2024.06.13 18:48 의견 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고사는 문제’는 가장 중요합니다. 정치의 본질이자 경제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념에 따라 경제발전을 보는 시각이 매우 다르다는 겁니다. 우파 보수는 경제발전의 밝은 면 즉 영광을 봅니다. ‘부의 증가와 생산성 향상’이 가져오는 삶의 질 향상을 바라봅니다. 좌파는 저임금, 아동노동 등 악마와 같은 공장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니 좌파는 경제발전의 긍정적인 측면을 잘 언급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우리나라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2023년 기준 3만 6194달러로 나타나며 일본(3만 5793달러)을 추월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국민소득이 일본을 앞선 건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진 덕을 봤고, 일본 대만 등 경쟁국들이 반도체 등 미래산업 투자에서 우리를 앞지르고 있어 수치상 호전에 마냥 기뻐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즐거운 뉴스’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엔저 덕분에 많은 국민이 저렴하게 일본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민주당은 ‘국민소득, 일본 추월’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커졌다는 걸 인정하면, ‘한강의 기적을 쓴 주인공들, 즉 산업화의 주역’들이 했던 역할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박정희,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등이 상대적으로 더욱 빛나게 되니까요. 그들의 반(反)기업 정서에 이들 기업인이 설 자리는 없을 겁니다.

좌파 이념에 물든 신영복도 경제에 대해서는 매우 비뚤어진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신영복은 담론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장자가 전개하는 반기계론은 그 기사(機事) 때문에 기심(機心)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좀 더 (일을) 쉽게 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이러한 기심이 생기면 순수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일을 쉽게 하려고 하고, 힘들이지 않고 그리고 빨리하려고 하는 이런 기심이 생기면 순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일의 효율성을 경시하는 묘한 시각입니다)

<장자>에서 이 ‘반기계론’을 선택한 이유가 물론 있습니다. 기계, 기술, 속도, 효율성에 대한 우리 시대의 신화를 반성하자는 것입니다. 교재에는 1810년대에 일어났던 영국의 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소개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기계 파괴 운동입니다. 기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일수록 자동화, 기계화, 인공지능화 때문에 생기는 실업 문제가 갈수록 더 심각합니다. 실업하거나 비정규직화합니다. 노동조건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습니다....(중략)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환상을 보여주면서 꿈의 신기술이 예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구조라면 한 사람만 고용되고 10만 명이 해고됩니다. 그 한 사람의 노동을 로봇이 수행한다면 그리고 그 로봇이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정지됩니다....(중략)

기계가 도입되면 6시간 걸리던 필요노동시간이 3시간으로 줄어듭니다. 기계가 갖는 효율로 말미암아 6시간 걸리던 것이 이제 3시간밖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것은 그 생산물의 가치가 6에서 3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치량이란 그 속에 담긴 노동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효율성이 높은 기계를 사용해서 만들었거나 효율성이 낮은 기계를 사용해서 만들었거나 시장에서 동일한 가격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가치와 가격을 같은 뜻으로 이해합니다만 기계는 가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신영복의 주장은 정확한 사실과 너무나 다릅니다.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일수록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그가 인도나 방글라데시 혹은 이집트와 이라크, 아프리카 국가들을 가봤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헛소리’입니다.

경제 역사가인 토머스 애쉬턴은 1948년 산업화되지 않은 극동에서의 삶과 산업혁명기 잉글랜드에서의 삶에 대한 이러한 비교를 제시했습니다. “오늘날 인도와 중국의 평원들에는 역병과 배고픔에 찌든 남자와 여자들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의 생활은 낮에는 그들과 함께 일하고 밤에는 그들과 잠자리를 나누는 가축들의 생활보다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아시아적 기준 그러한 기계화되지 않은 공포가 산업혁명을 거치지 않은 채 수가 증가하는 사람들의 운명이다.”

신영복은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환상(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주장)’을 보여주면서 꿈의 신기술이 예찬되고 있습니다.”라고 비판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반도체와 전자제품으로 먹고 산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런 신영복은 대한민국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까요?

신영복은 ‘가치량이란 그 속에 담긴 노동시간’이라고 하는데, 이건 정말 엉터리로 판명이 난 ‘마르크스의 죽은 이론’에 불과합니다. ‘가치=노동시간’의 편견으로는 ‘생산성 증가=경제발전’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이 ‘복지는 생산성에서 나옵니다’고 주장하는데, 신영복이나 그를 따르는 좌파 이념의 민주당 사람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마르크스와 함께 사회주의 이론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24세인 1845년에 쓴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소개합니다. 그는 산업화 이전의 영국이 목가적인 모습이라고 하면서 맨체스터의 모습을 다음처럼 소개합니다. “후드스필드 도심의 모든 거리와 많은 뒷골목은 판석이 깔리거나 포장되지 않았고, 하수도는 물론 심지어 배수구도 설치되지 않았으며, 쓰레기와 온갖 종류의 더러운 것이 노천에 그대로 드러나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거의 언제나 고인 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고, 인근 주택들 역시 열악하고 더러운 상태였으며 .질병 발생과 도심 전체의 위태로운 건강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렇지만 빈곤 문제가 극심하던 맨체스터는 1846년 영국 곡물법이 폐지되면서 노동자들이 더 저렴한 가격에 식료품을 구할 수 있게 되고, 영국 면직물이 중국과 호주 등으로 수출되면서 커다란 호황을 누립니다. 신흥 중산층들이 성장하는 단계가 되었고 오물로 뒤덮여있던 도로가 새로 포장됩니다. 빈민가가 있던 자리에는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엥겔스는 자신이 맨체스터를 바탕으로 저술했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가 몇 년 만에 구닥다리 책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아연실색했다고 합니다.

엥겔스가 묘사했던 슬럼가의 모습은 오늘날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이집트, 나이지리아. 포퓰리즘에 찌든 베네수엘라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모두 (신영복이 매우 싫어하는) 자본주의가 잘 발달하지 않은 국가들입니다. 신영복을 따르는 우리나라 좌파 정치인이나 좌파 지식인은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코라시아(필명),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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