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플레이션 시대, 7000원짜리 냉면이 준 만족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07 07:00 의견 0
서울 강동구 재래시장 안에 있는 송월냉면집의 열무 물냉면과 비빔냉면. 사진=수도시민경제

냉면이 땡기는 계절이 왔는데, 선뜻 “냉면 한그릇 합시다” 말하기가 무섭다. 웬만하면 냉면 한그릇에 1만5000원이고, 1만6000원 냉면도 등장했다.

을지로에 이북5도민 모임 장소로도 유명했던 을지면옥이 재개발로 문을 닫은 후 약 2년 만에 종로에 새로 냉면집을 오픈하면서 냉면값을 1만5000원으로 기존 1만3000원에서 2000원 올렸다. 육수의 주요 재료인 소고기와 닭 값 그리고 메밀값이 내렸는데 냉면값은 더 올린 것이다. 물론 그동안 인건비가 올랐고, 제반 부대비용이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냉면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평균적인 중산층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비단 여름에만 먹는 음식이 아닌 사계절 먹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여름이 되면 뙤약볕에서 30분 이상씩 줄을 서서 먹는 음식이다. 옛날에는 예약을 받아줬는데, 요즘은 예약을 안 받는다. 일단 줄을 서고 일행이 모두 와야 입장이 가능하다. 손님 하나라도 받기 위한 상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편육 몇점에 소주 한잔 하고 슴슴한 냉면 육수에 메밀의 덤덤한 맛을 느끼려고 사람들은 줄을 선다.

몇 년 전부터는 냉면집의 고자세가 극을 달하고 있다. 두사람이 가서 돼지고기 편육을 시켜서 안주로 먹다가 좀 부족할 경우 반접시 짜리 메뉴가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반접시가 사라졌다. 남길 것을 각오하고 새로 한접시를 시켜야 한다. 그러고 나면 배가 불러 냉면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요즘 이름 있다는 장안의 냉면집 풍경이다.

그런 가운데 7000원짜리 나름대로 모양을 갖춘 냉면이 장안에서 유명세를 날리고 있다. 서울 강동구 한 재래시장 안에 있는 송월냉면이다. 일단 아무 부대 메뉴가 없고 오로지 물냉면과 비빔냉면 두가지다. 거기에 열무를 넣느냐 마느냐의 선택지가 있다. 특별한 반찬도 없다. 무김치와 열무김치가 필요한 사람은 주방이나 카운터에 가서 얘기하면 별도로 챙겨준다.

특이한 점은 매운맛, 단맛, 신맛 조절 가능하다고 안내 벽보가 붙어있다. 그리고 ‘열무김치, 무김치, 육수추가는 주방으로 오세요’란 안내 벽보도 붙어있다.

양은 을지면옥의 1.5배쯤 된다. 술은 파는데, 냉면 외의 별도의 안주거리는 전혀 없다.

냉면 맛은 옛날 맛 냉면인데, 육수가 옛날 인스턴트 스프식 맛이 아닌 사골 베이스에 야채 육수를 섞은 맛이다. 면발은 고구마 전분 성분이 느껴지면서 질기지 않아 밀가루 비중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시원함과 달착지근한 맛, 그리고 열무의 맛이 어우러져 서민인 듯 아닌 듯한 맛을 느낄 수 있다.필동면옥이나 을지면옥 같은 슴슴한 육향과는 완전히 다르고, 우래옥의 약간 간장베이스 맛에 단맛과 식초 맛이 좀 강하게 작용하는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 입구부터 분위기가 편안한 것이 마음에 든다. 튀김 전문점이 있고, 고구마 감자 등 야채가게가 근처에 있고, 방앗간도 있다. 이 정도 가격이면 누구에게나 “오늘 냉면 한그릇 합시다”고 할만 하다. 그러고도 맛과 가격에 대해 얘기하면서 부담 갖지 않을 수 있다.

냉면은 이북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여름 음식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북에서는 겨울에 즐겨먹었던 음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북에 메밀 재배가 많이 되면서 메밀을 바탕으로 하는 냉면을 많이 먹게 됐던 것이다. 추운 겨울 배달 된 냉면을 온돌방의 웃목에 두고, 편육과 함께 술을 먹다가 냉면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냉면 애호가들은 편육을 시키면서 냉면을 함께 주문해 편육과 함께 소주 한잔을 하면서 냉면을 불린다. 그것이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이런 식의 호사를 누릴려면 요즘 냉면집 가격으로 두명이서 인당 4만원은 내야 할 것이다. 두명이서 8만원이라는 것이다. 낭만에도 이젠 만만치 않은 돈이 드는 세상이 됐다.

거침없이 오르는 물가가 만든 세태다. 냉면, 이젠 맘먹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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