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대책은] ③ 금리 인하 막는 인플레이션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소비둔화, 그리고 생산 둔화로 악순환 우려

이주연 기자 승인 2024.06.05 07:00 의견 0
마트의 정육코너. 사진=수도시민경제

한국은행은 4월 생산자물가지수가 119.12로 전월 대비 0.3% 상승했다고 지난달 말 밝혔다.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12월(0.1%) 상승 전환한 이후 올해 1월(0.5%), 2월(0.3%), 3월(0.2%)에 이어 5개월 연속으로 올랐다.

생산자물가는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기 전 기업(생산자) 간에 거래되는 가격으로 소비자물가를 선행하는 지표다. 농림수산품에서 축산물(1.6%)은 올랐으나, 농산물(-4.9%), 수산물(-4.2%)이 내려 전월 대비 3.0% 하락했다.

반면 공산품은 0.7% 상승했다. 석탄 및 석유제품(1.7%), 1차 금속제품(1.5%),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1.8%) 등이 일제히 올랐다. 서비스도 0.2% 올랐다. 금융 및 보험서비스(-0.3%)는 내렸지만 음식점 및 숙박 서비스(0.3%), 운송 서비스(0.2%) 등이 오른 영향이다.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고물가로 기준금리는 2023년 1월 이후 1년5개월째 3.50%에 묶여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말 기준금리를 11차례 연속 동결하면서 역대 최장기간 동결을 기록 중이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지난 2023년 7월 기준금리를 0.25%p 인상 한 후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으로 동결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현재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는 2%p 차가 나는 바람에 더 이상의 금리차가 날 경우 달러 유출을 비롯 환율 불안까지 우려된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올해 수정 경제전망에서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월 전망치와 같은 2.6%로 예상하면서도 하반기 물가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그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난 4월에 비해 훨씬 커졌다”며 “하반기 중 금리 인하 기대가 있는데 물가 상방 압력을 받고 있어서 시점이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한은이 이번에도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불확실성을 강조하면서 언제 어떤 조건들이 갖춰져야 이뤄질 지가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으로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미국의 경제 상황과 중동 정세 변화 등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도 고물가 상황은 상당기간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금융연구원은 미국의 근원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올 1분기 약 4%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경기 호조가 전쟁, 미·중 갈등, 기후 변화 등의 글로벌 공급측면에서의 생산 교란 요인과 맞물릴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경우, 미국 물가상승률의 둔화 속도가 지연되면서 이와 연관된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뒤로 밀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그동안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해 온 달러화 강세, 고물가, 고금리 현상이 당초 예상보다 긴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3.4%)이 둔화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지만 연준 위원들이 여전히 금리 인하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선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도 물가 불안요소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해석된다.

중동 정세 악화 가능성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다. 전문가들은 중동정세 불확실성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중동 전체의 전면전 확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 19일(현지시각) 이란 라이시 대통령이 탄 헬기가 추락해 사망하면서 사고 관련 음모론이 확대되는 등 이란-이스라엘간 전쟁 발발로 인한 중동 정세 악화 우려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만약 중동 지역 정세가 악화될 경우, 고환율·고유가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국내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고물가에 따른 고금리 현상이 오래 지속될 경우 1880조원을 넘는 가계부채에도 비상이 걸린다. 금융권 가계대출도 4월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4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4조1000억원 늘었다. 가계대출은 지난해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은행권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조치 등으로 올해 1월 9000억원에서 2월과 3월에 각각 1조9000억원, 4조9000억원씩 줄어들며 2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4월 들어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

가계부채는 양날의 검으로 고금리 하에서는 이자부담으로 가계 살림이 어려워지지만, 한편 금리를 낮출 경우 안그래도 경고등이 켜진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어 인플레이션이 일정 기준 이하로 내려온다고 해도 쉽게 금리를 인하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금리를 인하할 경우 부동산 시장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 금융 불균형이 누적돼 시장 구조가 부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 한은의 판단이다.

인플레이션은 산업 구의 비효율을 가져오지만, 가장 큰 문제는 생활물가 상승으로 가계의 건전성이 훼손됨은 물론 소비가 둔화되면서 생산 부문의 부진을 가져오면서 산업 전반의 불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월급 빼고 다 오르네”란 말이 일상화 됐다. 특히 국제유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공산품 물가 상승 추세가 강해지고 있고 외식물가를 비롯해 소비자물가 모두가 생활에 부담 수준을 넘어섰다.

수입품까지 포함해 가격 변동을 측정한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0% 상승했다. 원재료(2.6%)와 중간재(1.0%), 최종재(0.5%)가 모두 올랐다. 국내 출하에 수출품까지 더한 총산출물가지수는 1.2% 상승했다. 공산품(2.0%)과 서비스(0.2%)는 상승했고 농림수산품(2.9%)은 하락했다.

미국 금리 수준, 유가, 국제 정세 등 우리가 자체적으로 관리 할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물가 상승요인을 관리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중간 유통 관리나 생산자 물가 관리 등 정부 차원에서 선제적인 물가 관리에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이주연 기자

저작권자 ⓒ 수도시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