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거울이다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07 06:00 | 최종 수정 2024.06.07 12:11 의견 0
당태종의 거울이 된(人鏡) 위징

이백과 두보, 과거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두사람이다. 이들 모두 당나라 인물이다. 특히 당나라는 문화가 발달해 후에 송나라 시절 정한 당송8대가에 한유와 유종원 등 2명이 포함될 정도로 문화적 인정을 받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자랑한다.

당나라 시절뿐만이 아닌 중국 역사에서 명군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 바로 당나라 2대 황제인 태종이었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를 침공하다가 안시성 싸움에서 안시성 성주인 양만춘 장군의 화살에 눈이 맞아 후퇴한 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이 당 태종 이세민은 ‘정관의 치’로 유명하다. 그는 대부분의 정치 현안을 신하들과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방식을 택한 대화정치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다. 후에 당 오긍이 당태종의 언행록을 정리한 것이 ‘정관정요’다. 제왕학의 교과서로 불린다. 정관은 당태종 이세민의 연호다.

태종이 늘 옆에 두고 의지를 했던 신하는 위징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바른 말을 거침없이 하는 위징을 멀리 하지 않고 곁에 두고 그의 의견을 늘 경청했다.

위징은 사사건건 태종의 언행과 판단에 시비를 걸기로 유명했다. 태종이 내린 결정을 위징이 반대해 무산된 정책이 수두룩할 정도였다. 반역으로 죄를 묻는 대신 태종은 위징의 해명을 듣고는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당나라 부흥의 배경에는 위징을 인정하는 태종의 혜안이 있었던 것이다.

643년 자신의 결정에 늘 반대만 하던 위징이 중병에 걸렸다. 태종은 매일 위징에게 사람을 보내 병문안을 했지만, 위징은 세상을 떠났다.

위징이 죽자 태종은 위징의 묘비에 이런 비문을 남겼다. “사람이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 의관이 바른지를 알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성쇠의 원리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잘잘못을 알 수 있는 법이오. 위징이 죽었으니 나는 거울을 잃어버린 것이오”라고.

여기서 태종의 3경(鏡), 즉 세개의 거울이 등장한다. 첫번째는 동경(銅鏡)으로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현재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경(史鏡)으로 과거 역사 속의 제왕들의 행동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나를 돌아보는 것이고, 세번째는 인경(人鏡)으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생각으로 대하는 지를 돌아보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태종에게는 당시 대표적인 인경이 바로 위징이었던 것이다. 사사건건 쓴소리를 하는 거슬리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말이 본인에게 약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고, 그에게 크게 의지했다는 것이다. 아첨으로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멀리 하고 쓴소리를 일삼는 신하를 가까이 가까이 두고 본인의 모습을 돌아보는 당 태종에게 누가 감히 엉터리 거짓의 제언을 할 수 있었을까.

세상에 3개의 거울이 있지만, 우리는 현실 속에서 유리거울 이외에는 관심이 없이 살고있다. 역사 속의 인물을 거울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변에 사람들을 거울로 생각하는 지혜가 있다면 실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라를 경영하거나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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